이순재·최불암 등 원로 연극인, 명동예술극장 개관 1주년 기념 토크쇼
"내가 젊었을 때 공연장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었어요. 1958년에 이진순 연출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단역으로 드디어 이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1961년 왜 KBS로 갔느냐? 연극 하면서 돈을 받은 적이 없어요. 탕수육에 배갈(고량주) 먹고 끝이었지요. 허허."(이순재)"저는 이순재 선배님이 이 무대에서 대사하는 게 부러웠어요. '시라노 드 베르주락'의 마지막 장면이 말할 수 없는 유혹을 줬습니다. '인생은 허풍선이'라는 대사였습니다."(최불암)
배우 이순재와 최불암이 1950년대 명동극장을 추억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쇼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가 열렸다. 원로배우 백성희는 "1947년 연극 '군도'로 이 무대에 데뷔했는데 6·25 전쟁 때 월북한 김선영 선생을 졸졸 따라다니는 시녀 역이었다"며 "그 시절 명동은 내게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명동'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됐다"고 했다.
- ▲ 배우 최불암, 연출가 임영웅, 배우 백성희₩이순재, 음향전문가 김벌래(왼쪽부터)가 명동에 대한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소리의 제왕' 김벌래(본명 김평호)는 "저는 '깜깜한 배우'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100% 수공업으로 음향효과를 낸 것은 물론 궤짝 같은 곳에 숨어 배우에게 대사를 일러주는 프롬프터 역할까지 했다는 것이다. 조명을 맡았던 연극 '햄릿'에서 소주를 홀짝이다 까무룩 잠들어버린 일, 라디오드라마 '삼국지'에서 진짜 식칼로 음향효과를 내다가 이순재를 찌를 뻔한 일 등을 회고할 땐 폭소가 터졌다.
명동은 1970년대까지 '한국 공연의 1번지'였다.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은 1934년 명치좌(明治座)로 출발, 광복 후 1961년까지는 시공관(市公館),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국립극장이었다. 유치진·이해랑 등 연출가, 김동원·장민호·강계식·백성희·김진규·최무룡·허장강·도금봉·최은희·황정순 같은 배우들이 이 무대에 청춘을 바쳤다.
이날 토크쇼에는 이상만 전 고양문화재단 총감독과 '한국 연예기자 1호'인 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이 모윤숙·박인환·이봉구·전혜린 등 명동 멋쟁이들의 삶과 사랑·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개그맨 전유성의 사회와 가수 김도향의 노래로 1960~70년대를 돌아보는 시간도 있었다. 김도향이 부른 맛동산·아카시아껌 같은 CM송도 반응이 좋았다.
이화여중 1학년 때부터 58세가 된 지금까지 이 극장 관객이라는 한 중년 여성이 백성희에게 명대사 한 토막을 청했다. 백성희는 "배우는 어제 공연하고 오늘 잊어버려요. 그래야 내일 새것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임영웅은 "아무리 오래 연극을 해도 '진짜 관객'은 알 수가 없다"면서 "극장 앞에 서서 공연 보고 나가는 관객의 얼굴을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 그 얼굴들을 만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