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신사
- 여강 최재효
일주일 이상 해님은 물론 지금쯤 약간 이지러졌을 달님조차 뵙지 못했다.
물론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땅에 살다보니 해마다 이때쯤이면 전국이 물과
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제는 경기도 C시 일대에 400mm가 넘는 집중호우
로 도심기능이 마비되어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나처럼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물난리는 그저 남의 이야기 같아 송구스러워
비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장마 기간 중 나와 가장 친한 벗은 아마 빈대떡이 아닐까 싶다. 내가 자주
가는 부천역 근처 ‘J빈대떡‘ 집이 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나 혹은 눈이 내리는
날 나는 습관처럼 이 집을 떠올린다.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 오후가 되면
오늘은 누구를 꾀어 술좌석에 앉힐까 고민을 한다.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많지만
몇 가지 꼽는다면 우선 주인 아주머니의 미소다. 시골장터에서 볼 수 있는
순박한 얼굴에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 무시무시한 화장(化粧)으로 손님에게
두려움을 주는 갓 신장개업한 선술집의 여주인 보다 신뢰가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다. 상호가 똑같은 다른 곳의 ‘J빈대떡‘집을 가보아도
이 곳 만큼 맛을 내지 못한다. 나는 항상 이 곳을 가면 녹두로 만든 해물빈대
떡을 시킨다. 노릿노릿하게 구운 빈대떡 속에 굴이 먹기 좋게 익어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침이 돈다. 식기 전에 얼음이 약간 떠 있는
조껍데기 동동주 한 사발 단숨에 들이켜고 빈대떡을 고추가루가 솔솔 뿌려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으면 빈대떡이 살살 녹는다. 약간 뜨겁다 싶으면
깍두기 한 입 베어 물면 하루의 고단함과 번뇌는 종적을 감춘다.
또한 이곳에 오는 손님들과 분위기다. 10평 남짓한, 약간은 허술해 보이는 실내
는 최근에 개업한 깨끗하고 으리으리한 빈대떡 집이 아니라 대학생부터 30대
, 나 같은 40대 그리고 초로(初老)의 어르신들 까지 한데 어울려 빈대떡을 맛
보는 정겨운 모습들이 있다. 담뱃불 자국이 새겨진 나무탁자나 흔한 철제의자
그리고 약간 세월의 때가 낀 실내가 지갑이 얇은 이웃들 가슴을 안심 시킨다.
주점이다 보니 어린 아이들이 없어서 애연가들은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고,
박장대소(拍掌大笑) 하여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 좋다.
나는 이곳에 오면 내 전후좌우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인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못 된 버릇이 있다. 물론 빈대떡 집이라고 해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지갑
속이 넉넉하지 않거나 후줄근한 모습을 골라내어 손님들의 인격을 격하시켜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투피스차림의 여사원,
막 공사장에서 일을 끝내고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고단함을 잊어보려는
아버지들, 향수를 회상해 보려고 찾은 듯한 중년의 신사와 숙녀 커플, 머리에
먹물이 좀 들어 있을 법한 기인(奇人)풍의 문인(文人), 나처럼 홀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온 중생 등 하나같이 귀한 이웃들의 얼굴을 훔쳐보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스케치 해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날은 소주(燒酒)보다 약간 시큼하면서도 텁텁한 탁주(濁酒)가 더 잘
어울린다. 습한 기운과 비로 인한 체온의 저하는 입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몸의
상태를 보완 시켜 줄 수 있는 음식물을 요하기 때문에 금방 반응이 오는 소주
보다 은근히 속을 덥혀주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동동주나 막걸 리가 제격
이다. 얼음이 둥둥 뜬 동동주에 뜨끈한 빈대떡 한입이면 음식궁합도 그만이고
영양도 만점이다. 주인아주머니는 혼자 오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무언(無言)의
질문을 하는 눈치다.
‘혼자 올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얼른 주인아주머니의 질문에 미소로 답변한다.
‘술은 혼자 마셔야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다음엔 기회가 된다면 주당(酒黨)
벗을 만들어 함께 오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
손님이 많을 때 나 혼자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으면 주인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는다. 나의 묵시적 답변을 이해하였는지 여주인은 깍두기가
반 쯤 남았는 데도 새로 한 접시를 가져와 내가 앉은 테이블에 말없이 올려
놓는다. 물론 사람 사귀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자신하는 나로서는 나와
분위기가 맞는 술 친구를 꼬셔오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동주 한 동이가 비어 갈 때면 빈대떡 집에 들어 올 때 무거웠던 머리는 방금
머리를 감은 것처럼 가벼워 졌고 마음은 넉넉해져 세상이 모두 내 것처럼
보인다. 가수 한 복남은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를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떵떵거리며 살던 어느 부잣집 아들이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한
푼 없는 거지 신세가 된 뒤 예전에 자주 가던 요릿집에 갔다가 한 상 잘 차려
먹고 돈이 없어 매를 맞고 쫓겨나는 우울한 상상을 하면서 10년 IMF와 경기
침체로 빈대떡 신사가 된 분들을 생각해 본다. 그 빈대떡 신사중에 작년에
유명을 달리 한 큰 형님도 계시니 투박한 막걸리잔이 반갑지만은 않다.
1670년 안동 장씨(張氏)가 저술한 조리서인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이나,
1869년 에 간행 된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빈대
떡은 녹두를 가루내어 되직하게 반죽해 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그 위에
꿀로 반죽한 소를 얹어 놓고 다시 그 위에 녹두반죽을 덮고 지져 만드는데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놓아 꽃전모양으로 호화롭게 만든다고 했다. 빈대
떡은 결코 돈 없는 서민들이나 맛보는 싸구려 음식이 아니다. 멋을 알고 풍류를
아는 멋쟁이들이 즐겨 찾던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빈대떡의 원료인 녹두는
인체의 독소를 해독시키고 열을 내리게 하며 피부병을 낳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
거친 세파에 난파선을 타게 된 많은 선원들에게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녹두로 부친 빈대떡을 권하고 싶다. 빈대떡을 많이 들고 기운을 차려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부정(不淨)을 말끔히 씻어 내었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찾아와 맑은 얼굴을 되찾은 빈대떡
신사들을 보고 싶다. 창 밖에 아직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데 휴대폰은 잠을
자는지 아무 기별이 없다.
2006. 7. 13. 17:10
첫댓글 비올때 맛난 빈대떡에다 션~한 막걸리 한사발...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