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4.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신앙고백 (3)
찬송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대표기도 이정숙 사모 (549)
성경 말씀 로마서 4:1~1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쌀쌀합니다.
찬송 1113 눈으로 사랑을 말하지 말아요
광고 추수감사절 예배 겸 박이순, 박영숙 권사 임직 예배(직원총회) 인권지킴이 방문
가족 방문 윤순희 권사 큰아들, 황막례 권사 서울 딸, 김정수 권사 서울 막내아들,
박기순 성도 큰아들,
미용 봉사 이옥녀, 박문식 집사 자부(원장)께 감사
찬송 1137 사랑은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1절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오
2절,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절,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절,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절,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절,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절,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 시냐 할례 시가 아니요 무할례 시니라
11절,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절,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쌀쌀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외지에서 밤샘하는 가을 나무는
얼마나 춥겠습니까?
그래서 나뭇잎을 한 잎 두 잎씩 떨구는가 봅니다.
목사님도 가끔은 가을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쓸쓸할지라도
가을 나무처럼 한 잎 두 잎씩 떨구어 내고 싶습니다.
그러면 홀가분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도 단조로워지겠거니 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각이 더 많아 집니다.
1절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오
2절,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사랑에 무슨 조건들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로 유일신론자 monotheist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환웅과 유사한 전설입니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믿음과 순종을 강요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할례라는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선택받았습니다.
그리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율법 아닌 율법의 할례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선택받은 후 14년 후의 사건입니다.
할례는 단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증거일 뿐입니다.
당시 할례는 종족 번식 fertility cult에 대한 풍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을 때가 99세였습니다.
아내 사라는 90세였습니다.
그러니 야훼께서 사라가 잉태하리라는 말씀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가 웃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사라의 죽은 자궁이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인 할례 때문에 사라가 잉태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은 복종입니다.
믿음은 신실함입니다.
11절입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주시대, 우리 인간의 무능을 대신할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시대에
할례라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자니
목사님조차도
무당 굿하듯 설교하는 것 같아 참 괴롭습니다.
12절입니다.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신실함입니다.
목사님도 아브라함처럼 신실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우리 아들도
우리 딸, 사위도 신실한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을 나무를 우러러봅니다.
우리 요양원 400평 넓은 잔디밭 둘레에
느티나무 소나무 백일홍 살구나무 석류, 감나무 벚나무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30여 년 전에 심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요양원 3층 높이만큼 키도 자라고 우람합니다.
석류나무에는 주렁주렁 석류가 매달려 있습니다.
석류를 따 먹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싶습니다.
감나무에도 주렁주렁 감이 익어 갑니다.
느티나무에는 잎사귀들마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듯 물들어 갑니다.
참 아름답고 경의롭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곧 입동입니다.
겨울입니다.
이제 올해도 두 달여 남짓합니다.
어느 선생님이 달력을 보면서 한 살 또 먹겠네~
이렇듯 우리네 인생이 아쉽습니다.
목사님은 가을 잎이 곱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무는 하루 24시간 365일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10년 100년이 되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눈보라 내리칠지라도 전혀 피하지 않습니다.
우르르 꽝꽝 천둥 번개 소스라칠지라도 그냥 그 자리에 꿋꿋이 있습니다.
올여름처럼 4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더위에도 헉헉 땀을 흘리면서
그냥 그 자리에서 참아 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고 신실함입니다.
바로 이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목사님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가을이 무르익습니다.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 참입니다.
인애하신 주님, 우리는 쭉정이입니까? 알곡입니까?
잠시 뒤돌아보니 눈물이 납니다.
벌써 1년이 지나가고
벌써 50을 넘기고 60을 넘겼고 70,80100세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은 끊이지가 않습니다.
먹고 싶은 욕심, 돈에 대한 집착, 좋은 옷 입고 싶은 사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픈 역마살.
이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죽으면 얼마나 후회막급하겠습니까?
정신 차려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가을이지 않습니까?
가을을 닮고 살라고.
겸손하라고.
인애하신 주님, 옷깃을 여밉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기도, 주님, 우리 인생,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하지 않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정신 차려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참 좋으신 주님, 황금 들녘을 봅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게 하옵소서.
가을인데도 열매가 없는 허망한 인생이라면
얼마나 슬프고 쓸쓸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생명이게 하옵소서.
주일, 주정, 감사, 십일조를 드립니다.
드린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믿음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본이 되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그리고 새 가족이 된 최삼희 선생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