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수행에서의 계율은 / 숭산 큰스님
대승불교 수행에서의 계율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을 위한 것,
즉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계율을 깨는 것이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일 때가 있다.
마음만 맑고 순수하다면
계율을 지키는 것도 올바른 수행이며
계율을 깨는 것도 올바른 수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나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중생을 위해서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갔다.
갑자기 언덕 위에서 토끼 한 마리가 겁에 질려 뛰어내려온다.
잠시 후
사낭꾼이 뒤 쫓아와 나무꾼에게 묻는다.
"토끼가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자,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만약 이 계율에 충실하고자
나무꾼이 토끼가 뛰어간 방향을 사냥꾼에게 가르쳐주면
사냥꾼은 뒤 쫓아가 토끼를 죽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토끼와 사냥꾼 사이에
아주 나쁜 업이 만들어지게 된다.
비록 나무꾼은 정직한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계율을 지킨 셈이 된다.
아주 좁은 의미의 계율 수행이다.
그러나 만일 나무꾼이
토끼가 달아난 방향의 반대 방향을 가르쳐준다면
비록 거짓말을 한 것이 될지라도
그는 중생을 위한 아주 넓은 수행을 한 것이다.
계율이란 바로 이처럼
다른 중생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계율을 깸으로써
토끼를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냥꾼과 토끼가 나쁜 업을
쌓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순간순간 계율로써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떤 마음을 만들 경우, 계율을 세워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수행이 된다.
하지만 모든 생각을 완벽히 끊고
어떤 마음도 갖지 않으면
계율은 필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선과 악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자유롭게 사용하면 이미 보살행이다.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