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이라고 쓰고 오빠라고 부른다
아는 맛은 역시 무섭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부로 선우예권님은 제 오빠입니다(
원래도 교회오빠삘 나는 예권님이었지만
오늘 그의 베피협 <황제>를 비롯
앵콜곡 리스트 <사랑의 꿈>,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까지
다정한 오빠
든든한 오빠
카리스마작렬 오빠
세심한 오빠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인 진짜 우리오빠같은 예권님의 연주에
에스토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아니라
선우예권님 리사이틀에 온 듯 했어요
그의 <황제>는 1악장 초반에서는 좀 갸우뚱했습니다
어 이게 울 오빠 스타일이 아닌데 하고 말이죠
이유는 나중에 2부를 보고 다 이해가 되었죠
오케를 너무 빠른 템포로 끌고가는 지휘자님 덕분에
초반부 오케와 합이 딱 떨어지지않고 좀 불안정한 출발에
내심 간절한 기도와 응원이 마음에서 솟아오릅니다(절대 못마땅 아니고)
역시 곧 페이스를 찾은 선우예권님은 길고 긴 1악장을
때론 곰같이, 때론 여우같이 그리고 떄론 나를 뒤에서 백허그해주며 지지해주는 연인같이
우리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2악장은 정말 스윗하고 섬세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예권님의 타건과 스케일에 홀릭되어
마음에 바다를 그리고 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꿈과 희망을 켜켜이 넣어 하나하나 쌓아올린 성처럼
음과 음이 예권님 손가락에 닿으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여운을 남기고 슬며시 사라지는 썰물같은 2악장
그리고 3악장이 되니 선우예권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모든 예술인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그의 페이스로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 예권님
그의 피아니시모가 그저 명징한 심을 속에 넣은 여린 소리가 아닌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결을 다 살리면서도 도드라지는 선명함을 추구하지는 않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피아니시모였다면
그의 강강강 포르테 타건은 짧게 끊어내는 리듬의 절묘함과 합해져서 귀에 각인되는
그리고 이어지는 극강의 피아니시모를 더욱 주연으로 만들어주는 카리스마타건이었습니다
이런 3악장을 듣다보니 아티스트 선우예꿘에게 더 다가가고
우리의 인생역시 강약의 반복이라는 메세지를 소환시켜주면서
피아노앞에 앞머리 흣날리고 엉덩이까지 들썩이는 열연을 보여주는 주연배우 선우예꿘님의 드라마가
제 인생에 한 페이지에도 기록되어서 진정 행복했습니다
피아노 건반 앞의 예권님은 눈빛으로 노래하는 시인같았는데
연주를 끝내고 관객의 커튼콜에 깊숙이 허리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그는
이제 예술의 의미를 내재화한 성숙한 현자같았습니다
관객이 없다면 예술도 없다는 깨달음을 통찰한
그런 아티스트를 만난 관객은 행복합니다
끝없는 커튼콜에 본공연 같은 앵콜곡,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는 각각 더없이
선우예권님의 음악세계를 정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리스트 <사랑의 꿈>같은 역시 잘 아는 맛인 곡을 예권님은 아는 맛 이상의 벅찬 감동을 넣어서
제 눈시울을 울컥하게 했고 앵콜로는 긴 곡이라 이곡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갈채에 다시 등장해서 이곡만 하고 갈게요~ 합니다 꺄악
그런데 그곡이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
거친 듯 외로운 듯 철저히 고독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강렬한 고백같은 연주에
선우예권님의 또 다른 우주를 하나 던져주시고 고개깊이 숙이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꽤 오랫동안 제 마음에 어떤 상을 남길 것 같습니다
음악은 그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여주는 관객은 존재의 이유이다
P. S. 에스토니아 오케스트라 <운명> 교향곡은 불호였어서 패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