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5회
화장을 하느라 반지를 화장대 위에 빼 놓고 화장을 하다가 전화가 와서 한 참 통화를 한 후
반지 생각을 잊어버리고 화장을 마치고 그의 셔츠를 사러 백화점에 잠시 다녀온 후 반지 생
각이 나서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는 애를 쓰면서 반지를 찾는 아내에게
‘어디엔가 숨어 있겠지. 나중에 나올 거니 걱정 말아! 정 안 나오면 내가 다시 사 줄게’ 라고
했으며 아내는 ‘그래도 그 반지가 어떤 반진데, 당신이 그 반지보다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주어도 그 반지와는 비교할 수 없잖아?’라고 하며 밤늦게까지 찾았던 반지였다. 그런데 그 반
지가 이제야 그의 손에 돌아온 것이다.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난 지 삼 년 만에.
아내가 동창회를 가던 날 아침, 아내는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 ‘나 다녀올
게’ 하고 나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놓고 반지 생각이 떠올라 다시 집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여보! 반지. 화장대 위에 봐!’ 라고 했었고 그는 ‘반지 잃어버린 지가 언젠데’
라고 타박을 했고 ‘아! 맞다. 오늘 동창횐데’ ‘그럼 미리 말하지 어제라도 반지 하나 살걸 그랬나?’
‘아니 됐어!’ 그것이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아내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고 다시 버튼을
누르고 아래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기계 오작동으로 엘리베이터가 지하
이층까지 곤두박질 친 것이다. 병원 의사는 아내가 깊은 내상을 입어서 병원으로 왔지만 손 쓸 수
가 없었다고 했다. 만일 반지 생각이 나지 않았더라면 아내 대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장인과 장모는 팔자타령을 하면서 차라리 그 정도면 죽는 것이 낳다. 고 위로 아닌 위로로
서로의 마음을 달랬을 뿐이다. 그런데 그 반지가 농 밑에서 나오다니. 아마 아내가 화장을 하기위해
빼 놓은 반지가 전화 벨 소리에 놀라 일어서는 아내의 행동으로 굴러서 농 밑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왜 농 밑에서 찾지 못했을까? 아내는 작은 막대기로 농 밑을 다 훑었었다. 그럼에도 나타나지
않던 반지가 이제야 그의 손위에 얹힌 것이다.
그는 반지를 건네주는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차라리 반지가 그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그의 마음에서 아내를 보내 주리라 결심을 했고 그래서
아내의 흔적이 묻어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그보다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인데, 그가 이런 생각
에 잠겨 있을 때 부동산 여사장이 그에게 왔다.
“저쪽 207동 청소 끝나고 짐 올라가는데 가셔서 농하고 놓을 자리를 보아 주셔야지요.”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든다. 이쪽은 아직 청소 중인지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식사를 하러 갔는지 아무도
없다. 그는 부동산 여사장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207동으로 걸음을 옮긴다.
4
늦은 저녁. 그는 밖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오다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집으로 걸음
을 옮기는 자신에게 놀란다. 습관적이라는 것, 참으로 습관은 무서운 병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은
모든 일생에 습관이 간섭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5분만 더. 하는 것이라든지 밥상을 받으면 국 먼저 떠먹는 것, 어떤 차를 마시겠냐는 물음에는 전혀 아무
생각 없이 커피! 라고 하는 것이든지, 지하철을 타면 꼭 경로석 앞에 서는 것이라던가, 뭘 먹지? 하고 물
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자장면이라던가 하는 그런 습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