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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還元)
이 범 선
통역장교 김소위(金少尉)는 바위 잔등에 앉아서 저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늦가을 해는 짧았다. 벌써 꽤 많이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햇빛을 한 쪽 옆에서 받은 산줄기는 뚜렷히 그늘진 골짜기르 해서 마치 입체지도모양 선명했다. 김소위는 머리 위 소나무 가지 사이로 새삼스레 해를 한 번 쳐다보았다. 동서남북은 짐작이 갔다. 그런데 아침부터 종일 이 바위 잔등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형을 따져보았지만 그지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만으로는 지금 자기가 앉아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전연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그더 사방의 모든 산들이 훨씬 밑에 저렇게 지도처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지금 그가 앉아있는 곳이 이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김소위는 아직 덜 나은 왼편 다리를 두 손으로 들어 조심스레 옮겨놓으며 두 무릎 사이에 펴놓은 지도를 또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다리를 벌려 앞으로 쭉 뻗고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열심히 지도를 읽고 있는 김소위의 등 뒤에 언제 왔는지 거의 나체에 가까운 여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키가 훨씬 큰 그녀는 마대 같은 삼베 헝겊을 허리에 둘러서 겨우 앞을 가리웠을 뿐이었다. 그녀는 맨발로 소리도 없이 한 걸음 더 김소위의 등 뒤로 다가서더니 무릎에 손을 짚고 허리를 구부려 김소위의 어깨 너머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두 어깨 앞으로 치렁치렁 드리워, 흙빛으로 타기는 했어도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탐스러운 젖을 가리웠다. 그녀는 김소위의 머리 위에서 약간 눈살을 찌프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김소위는 슬그머니 허리를 펴며 한숨과 함께 지도를 집어올려 반을 접었다. 그반 접은 지도를 또 한번 가운데를 접으려 할 때였다. 뒤에 섰던 여인이 손을 내밀어 지도를 툭 채어버렸다.
김소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지도를 쥔 손을 뒤로 돌리고 서있는 여인의 눈―항상 어딘가 아득히 먼 데를 바라보는 듯한 꿈을 꾸는 것 같은 크고 검은 두 눈이 김소위의 얼굴에 따감게 박혔고, 갸름한 얼굴에 오똑 솟은 코 밑에 도톰한 입술이 노여움에 뾰족히 나왔다.
김소위는 한 손으로 바위 잔등을 짚고 아직 발목이 아픈 왼쪽 다리를 애끼며 비칠 일어섰다.
“돌아오셨어?”
김소위는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김소위는 한 걸음 걸으려다 말고 그제서야 지팡이 생각이 났다. 그는 발 밑에 가로놓인 참나무 가지를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그러자 여인이 얼른 먼지 들어올렸다. 김소위는 다시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장난스레 바시시 웃고 있었다. 김소위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인은 김소위에게 지팡이를 건네주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김소위의 한 팔을 잡아 쳐들어올리고 그 밑에 자기의 어깨를 들이밀었다. 김소위는 안심하고 기대고 걸을 수 있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등 뒤로 해서 김소위의 겨드랑 밑을 받친 그녀의 한쪽 손에 쥔 지도가 펄럭거렸다.
바위 잔등을 돌아 내려오면 거기는 산꼭대기 같지 않게 제법 평평하고 넓은 잔디밭이었다. 그들은 주춤추춤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잔디밭 지쪽 끝에 커다란 바위를 지고 비스듬히 서있는 조그마한 나무 토막집 이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잔디밭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그 집 앞에 엎드려있던 개가 주루루 달려왔다. 개는 그들 앞에서 서며 쓱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소위는 벌써 한 달이나 넘도록 보아오는 개였지만 언제나 그 개가 겁이 났다. 그것은 개라기보다 승냥이었다. 그 생긴 모양으로 해서만 승냥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 노인의 말에 의하면 처음이 재래종 한국 개였을 뿐이고 거의 스무 대나 승냥이와 사이에 나온 것이고 보면 그것은 혈통으로도 승냥이에 틀림없었다. 그래 김소위는 그 개가 자기에게 가까이 걸어올 때마다 개에 대한 친근감은 조금도 느낄 수 없고 그지 겁이 앞서는 경계심만을 느끼곤 하논 것이었다.
지금도 김소위는 멈칫 섰다. 여인은 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가! 가!”
개는 슬그머니 돌아섰다. 어슬렁어슬렁 다시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여인은 김소위의 겨드랑 밑을 손가락으로 간지르며 웃었다. 김소위도 따라 웃었다. 그들은 그렇게 걸어서 잔디밭 한가운데 있는 무덤에까지 왔다.
“응, 응”
여인이 무덤 앞에서 발을 멈추고 김소위의 팔을 아래로 내리끌었다. 앉자는 것이었다. 김소위는 여인을 바라보머 눈으로 집을 가리컸다.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리고 김소위의 두 손을 붙든 채 털썩 풀 위에 주저앉았다. 넌지시 김소위의 팔을 끌어당겼다.
김소위는 여인이 왜 그러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 헛간 같은 집이지만 집을 가리켰던 것이다. 그런데 벌써 여러 번 그래 오는 그 짓을 언제나 여인은 이렇게 널따란 잔디밭 한복판에서 태양을 쳐다보며 그러기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소위로서는, 노인의 말대로 아무리 삼십 년 동안에 한 번도 딴 사람의 얼굴을 본 일이 없었다는 이 무섭도록 험하고 깊은 산중이라 해도 쨍쨍한 햇볕 아래 나뭇가지 하나 가림이 없이 그러기란 좀 안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김소위는 그녀에게 지고 말았다.
김소위가 자기의 주인을 해치는 것으로나 알았던지 그 무서운 개가 또 주루루 달려왔다. 한 덩어리가 된 둘의 주위를 으르렁거리며 빙빙 돌았다. 여인은 한 팔로는 김소위를 그리안은 채 또 한 손은 옆으로 내밀어 개를 달래고 있었다. 개는 시뻘건 혓바닥으로 여인의 손바닥을 철레철레 핥고 있었다. 만족한 여인의 두 눈은 햇빛을 받아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일어나 앉은 김소위는 런닝셔츠마저 벗어버리고 여인처럼 반 나체가 되어버렸다. 여인은 일어서 긴 머리를 흔들며 집쪽으로 달려갔다. 곧 이상스레 생긴 나무 그룻에 찐 감자를 담아들고 왔다. 여인은 감자를 김소위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그 크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김소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김소위는 감자를 하나 집어다 비어물었다.
그는 또 멀리 벋어나간 산줄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헬리콥터를 탔던 죽은 미군 중령(中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 같이 살아있더라면 이 산중에서도 어떻게든가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헬리콥터를 타고 이 산 위를 날아다녔으니까 지도에서 정확히 지금 있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김소위였다.
그러나 그 미군 중령은 저 밑에 지금도 구겨박혀 있는 헬리콥터와 함께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일선에 다녀오던 길에 고장으로 이 산중에 헬리컵가 추락한 것은 약 한 달 전이었다.
김소위가 정신을 돌린 것은 어느 어두컴컴한 방 안이었다. 방이라야 지붕으로 하늘을 가렸다 뿐이지 그대로 헛간 같은 통나무집이었다. 김소위는 머리를 이리지리 굴려 방 안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일어나려고 팔을 짚었다. 그러나 곧 단념하고 도로 누워버렸다. 온 몸이 쑤셨던 것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머리맡에 있는 문으로 들어왔다. 김소위는 머리를 젖혔다. 거기 들어선 것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것으로 보아 분명히 여자였다. 김소위는 그 타잔 모양 겨우 앞만 가리고 있는 여인이 왈칵 겁이 났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또 쑤셨다. 김소위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여인은 얼른 김소위의 웃도리를 등 뒤로 안아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딥니까.”
김소위는 여인에게 물었다.
“산.”
여인은 어린애 같은 소리로 그저 산이라고만 했다. 김소위는 다시 누웠다.
“무슨 산입니까?”
그러나 이번엔 그지 웃어보였을 뿐 여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인은 또 웃기만 했다.
“죽었습니까?”
그 때야 알아들은 듯 여인은 고개를 두 번 세로 흔들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김소위는 그 여인이 귀머거리도 아니고 벙어리도 아니면서 조금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소위는 그만 묻기를 그만두고 누운 채 그지 옆에 앉은 여인의 얼굴만 멍히 쳐다보고 있었다. 원시인 그대로의 몸차림이었다. 구리색으로 탄 온몸에서는 반지르르 광채가 나고 허리에 헝겊을 하나 두르기는 했으나 한 다리를 세우고 앉은 자세로서는 보여서는 안 될 데까지 다 들여다보였다. 그러면서도 여인의 얼굴에는 이상스레 요기를 띤 야성적인 아름다움이 그늘 밑의 샘물처럼 솟아 소리 없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더욱이 그 살눈섭이 유난히 긴 눈. 어찌 보면 매서운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한없이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한 그 크고 새까만 눈은 얼굴의 딴 부분 표정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도 환히 밝게 웃어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다시 잠이 들었던 김소위가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정신이 들었소?”
김소위가 미처 자기의 위치를 정신차려 알기도 전에 머리맡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소위는 그리로 얼굴을 돌렸다. 관솔불을 켜놓고, 아까 그 여인과 또 하나 흰 수염이 길게 목을 가리운 노인이 마주 앉아서 김소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노인장. 이거 안됐습니다.”
김소위는 몸을 모으로 틀어 일어나려고 했다.
“그냥 누우시오.”
노인은 김소위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런데 예가 어딥니까? ”
“산이오.”
“산이란 건 압니다만.’
김소위는 노인 앞에 마주 앉은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까 여인이 하던 대답과 꼭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또 사람을 이상스레 지그시 끌어당기는 눈으로 환히 웃었다.
“산 이름은 모르오.”
“저 또 한 사람 미군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소.”
노인은 자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까 과연 노인은 미군이 입고 있던 군복을 깃에 US라는 표가 달린 채로 입고 있었다.
“그.래요?”
김소위는 마치 토인 부락에 혼자 붙들려온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골짜기에 잘 묻었소.”
김소위는 관솔불에 반짝하니 반사하는 노인의 수염 밑 US라는 표를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한참이나 잠잠했다. 밖에서 이상스러운 새 소리가 끽끽 하고 몇 번 들려왔다. 다음은 또 고요했다. 김소위는 이게 꿈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낮에 한 번 본 일이 있는 그 통나무집 안이었다.
“여기서 큰 길이 있는 데까지 얼마나 됩니까?”
김소위는 다시 노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나도 모르오. 어디로 가든지 백 리도 더 될 거요.
“…….”
“길도 없소.”
김소위는 정말 정신이 아뜩했다.
“노인은……?”
“나는 이십팔 년 간 여기서 살았소. 아무 것도 모르오.”
“그저 이렇게 단 두 분이?”
“처음은 셋이서. 다음은 둘이서. 다음은 또 셋이서. 앞으로는 넷이 살면 좋겠소.”
김소위는 노인의 말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김소위는 또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불빛이 빨갛게 비친 여인의 얼굴은 낮에 볼 때보다도 더욱 더 강한 육향(肉香)을 발산하고 있었다.
김소위는 왼쪽 발목을 삐었을 뿐 다행히도 멀 다친 데는 없었다. 며칠이 안 되어서 거의 다 나았다. 노인도 또 여인도 거의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말 없는 가운데서도 노인이나 여인의 김소위에 대한 친절은 대단했다.
“나는 골짜기에 가오. 가만히 누워 있으시오.”
노인은 아침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저쪽으로 산을 내려가곤 했다. 그러면 뒤에는 김소위와 여인과 그리고 첫날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한 반 년 되어보이는 사내 어린애와 셋이 남는 것이었다. 그러면 김소위는 참나무 가지를 지팡이로 짚고 주춤주춤 잔디밭 끝에 있는 바위로 나가 앉아서 종일 밭 밑에 보이는 산줄기들을 굽어보며 지내곤 하였다.
산은 말할 수 없이 험했다. 어쩌다 그 통나무집이 있는 꼭대기만이 뱐반할 뿐이고, 그 뱐뱐한 잔디밭에서 한 발만 내려가면 그대로 죽죽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들이 들어선 데다 다래넝쿨 칡넝쿨이 마구 얽혀서 정글 그대로였다. 반듯한 그 위에서는 햇볕이 따가운 한낮에도 그 원시림 속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풍겨 올라오는 것이었다. 정말 헬리콥터가 아니고는 도저히 올라올 수도 또 내려갈 수도 없는 그런 험한 곳이었다.
차츰 나아가자 김소위는 그지 어떻게 하면 이 산을 내려가 원대(原隊)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골몰했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 이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완전히 외계와 절연된 산 속에 살고 있는 노인과 젊은 여인과 어린 젖먹이와 승냥이 같은 개의 한 식구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저건 누구의 무덤이지요?”
언젠가 김소위는 여인에게 잔디밭 한복판에 있는 무덤을 가리킨 일이 있었다.
“엄마 무덤.”
여인은 이렇게 대답하고 한참이나 그 무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의 여인의 눈은 더욱 더 초점이 멀어지며 무언가 먼 옛날을 더듬는 듯하였다.
김소위는 소나무 그루에 기대 앉아서 무료한 대로 또 물었다.
“어린앤?”
“내 애기.”
여인은 만족한 웃음을 띠우며 집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어린애는 별로 우는 법도 없이 흙바닥인 방 안 한구석에서 언제나 강아지처럼 혼자 놀다 자다 하는 것이었다.
“애기 아버지는?”
“골짜기에 갔지.”
“오 참. 그럼 도라지 아버지는?”
그녀의 이름은 도라지였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이 산중에서 제일 곱고 맵시 있는 꽃은 도라지 꽃이고 그래 그녀의 이름이 도라지라고 했다.
“골짜기에 갔지 .”
“뭐? 그건 애기 아버지지.”
“애기 아버지지.”
“그러니까 도라지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 말이요? ”
“골짜기에 갔지.”
“그럼 애기 아버지와 도라지 아버지가 같게 ?”
“그럼 같지 뭐.”
김소위는 여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 팔을 땅에 짚고 비스듬히 모으로 몸을 던지고 그와 마주 앉은 그녀는 풀잎을 뜯어다 잘근잘근 씹으며 또 그 눈만이 환히 웃고 있었다.
“그런게 어디 있어?”
“그럼 같지 뭐.”
김소위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여인은 좀 지능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김소위는 들고 있던 솔잎으로 여인의 젖가슴을 스르르 간지러주며 피식 웃었다. 여인은 손으로 젖가슴을 가리었다.
“흐흐흐. 하하.”
갑자기 여인은 소리 내어 웃으며 김소위의 무릎에 누워왔다.
“아― .”
여인은 김소위의 무릎에 누운 채 그의 목에다 두 팔을 감고 고개를 젖히며 김소위의 팔뚝을 꽉 물었다.
그것은 정말 거짓말 같은 생활이었다.
아침이면 노인은 날마다 골짜기로 내려가곤 하였다. 감자를 심은 화전 (火田)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라지가 구유 같은 나무 그릇에 펴다놓는 감자를 몇 개 먹고 나면 노인은
“그럼 도라지와 맘대로 노시오. 실컷 좀 놀게 해주오.”
하고 김소위에게만 한 마디 하고는 여인에게는 별로 말도 없이 산을 내려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말이지 김소위가 온 뒤에 벌써 꽤 오래 되었지만 노인과 여인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렇게 살아온 여인이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또 말귀를 잘 새겨듣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했다.
노인이 산을 내려가고 나면 온 천하에 김소위와 여인과 젖먹이 어린애와 승냥이 같은 개만이 적막 속에 남아 묻히는 것이었다.
여인은 김소위의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풍만한 육체를 김소위 앞에 내던지고 앉아서 그지 만족한 미소를 입에 가득히 머금고 무슨 진귀하고 알뜰한 보물이나 바라보듯이 고개를 요리조리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가만히 손을 가져다 김소위의 팔뚝도 쓸어보고 귀도 만져보고 볼도 어루만져보곤 하였다. 그럴 때의 그녀는 꿈 속을 헤매는 것처럼 그 커다랗고 새까만 두 눈이 몽롱해졌다. 김소위는 김소위대로 그녀의 그 아무런 가식도 부끄러움도 없는 애무가 처음에는 무슨 요귀에게 희롱이나 당하고 있는 것처럼 몸이 오싹하다가도, 자기 자신의 미―—지금 마악 뽑아놓은 파처럼 싱싱하고 날 내가 나는 그 어떤 강한 향기를 독하게 내뿜는 아ㄹᅟᅳᆷ다움―—조차 자각하고 있지 않은 그녀의 강한 육향(肉香)엔 확 얼굴이 달아오르게 취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왈칵 김소위의 가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소위의 볼을 두 손으로 싸쥐고 마구 입술을 빨았다. 목을 끌어안고 어깨를 꽉꽉 물었다. 목덜미를 핥았다.
“흐흥 응흐흐흐. 난 난.”
여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떨며 뒤틀었다. 그녀의 온 몸뚱아리가 그대로 불덩어리로 화해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그대로 미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김소위는 차라리 눈을 꾹 감곤 하였다. 여인이 하는 대로 자기의 몸을 내맡겨 버리곤 했다. 그러면 김소위마저 한덩어리가 되어 활활 타버리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나면 김소위는 타고 남은 재[灰] 처럼 복닥하게 기운이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김소위는 도저히 그녀의 정열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겁이 나곤 했다. 그리나 여인은 표범처럼 날뛰었다.
“아! 아! 좋아. 난, 난 좋아.”
여인은 죽은 듯이 번듯이 잔디밭에 늘어져 누운 김소위의 옆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자기의 두 팔을 비틀어 꼬으며 단 한 조각의 삼베헝겊마자 풀어 던져버린 알몸뚱이로 어린애처럼 궁덩이를 들먹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안에서 애기라도 울면 달려가서 어린애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오며 두 팔을 번쩍 위로 올려 높이 어린애를 들어올리고 또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아가. 내 아가. 엄마 좋아. 좋아. 좋아.”
그러기를 하루에도 서너 번씩 여인의 몸에서는 불이 일곤 했다.
저녁때가 되면 노인이 돌아왔다. 그러면 셋이 밖에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또 감자를 먹었다. 아침에는 그래도 김소위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는 노인도 저녁때는 돌아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별로 피곤한 기색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세월을 이야기를 해버릇하지 않은 사람의 습성이거니와 그렇게 감자 식사가 끝나면 김소위는 방 안으로 들어가고 노인은 자리에 그대로 잔디밭에 누워 다들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인만은 밤이 새도록 거의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김소위는 어쩌다 소변이 마려워 밤중에 잠이 깨는 수가 있었다. 그는 가만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캄캄한 가운데 문을 더듬었다. 그럴 때면 거의 매번 여인이 잠을 깨었다.
“어디 가, 응? 어디 가? 가지 마, 응.”
여인은 김소위의 무릎을 두 팔로 꼭 껴안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아니야. 소변 볼려고.”
“나도 가. 같이 가.”
여인은 기어이 김소위를 따라 밖에까지 나와서는 소변을 보고 섰는 김소위의 등 뒤에 지키고 서있는 것이었다.
이제 발목이 다 나은 김소위는 어느 날 노인과 함께 골짜기로 내려가 보았다. 종일을 멀리 산줄기만 내려다보며 지내기가 지루하고 갑갑하기도 하려니와 그렇게 함으로써 여인에게서 피해보자는 것과 또 하나는 넌지시 산을 내려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논 속셈에서였다.
화전(火田)이라야 그것은 어쩌다 좀 펀펀해진 곳을 군데군데 파헤치고 거기에 감자를 심어놓은 것에 불과하였다. 농구라고 호미 하나 없었다. 날이 선 돌이 그대로 호미 구실을 했다. 석기시대 그대로였다. 그나마 무슨 도구를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지 흰 꽃이 달린 순을 손톱으로 찍어주는 것이 그 즈음의 일이었다.
노인과 김소위는 그 화전 밑을 흐르고 있는 적은 물줄기 옆 바위 잔등에 가 앉았다.
“이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큰 강으로 갈 수 있겠지요?”
김소위는 바위 밑을 흐르는 파란 물 위에 나뭇잎을 훑어뿌리며 물었다.
“가고 싶소?”
“…….”
“그럴 거요. 나도 많이 울었소. 나도 이 물줄기를 따라 가보았소. 열 번도 더. 길이 없소. 못 나갔소.”
“…….”
“그런데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지금도 모르오.”
“들어와요?”
“들어왔소. 아내와 단 둘이서.”
김소위는 옆에 앉은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백발이 목덜미를 덮었고 긴 흰 수염에 눈썹까지 셌다. 거기에다 미군 중령의 군복을 입은 것이 통 어울리지를 않았다.
“도라지가 스물여덟 이니까 이십팔 년 전이오.”
노인은 이야기를 끊었다.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을 묵묵히 굽어보고 있었다. 김소위도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청년!”
“…….”
김소위는 새삼스레 부르는 노인의 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노인은 애걸하듯 가는 눈으로 김소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 나가지 마시오. 나가지 못할 거요. 길이 없소. 또 길이 있대도 이젠 못 나갈거요. 도라지를 보시오. 청년. 나가지 마시오.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오.”
노인은 김소위의 두 손목을 꽉 붙들었다. 김소위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이제 다 말하겠소, 근 삼십 년에 딴 사람을 보기는 청년이 처음이오. 또 마지막일 거요. 내 이제 다 말하겠소.”
노인은 김소위의 손목을 놓고 한참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 고아원에서 자라난 노인은 본시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했다. 한창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 서른다섯 여섯 때였단다. 그때 노인은 결혼을 했단다. 어느 여학교의 음악선생이었단다. 퍽도 행복했단다. 그런데 그 행복하던 신혼의 꿈은 한 해가 채 못 되어서 너무나 큰 소리로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이었다. 장(張)과 이(李). 엄연히 그 성이 다른 그들 부부가 이복(異腹)도 아니요, 바로 동복(同腹) 남매일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것이었다. 가세가 가난하던 데다 딸을 낳고 산후병으로 아내가 죽자 아무도 모르게 그 어린애를 자식없는 친구 부처에게 맡기고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난 것이 바로 노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 아버지도 곧 죽고 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한 지 근 일 년이 되던 어느 날 단 하나의 유물로 노인이 꼭 간직해가지고 오던 그의 아버지의 조그마한 사진을 그들 신혼부부의 방에서 본 사람이 아내의 고모였다는 것이었다. 비밀은 더욱 빨리 펴져나가더라고 했다.
노인은 지금도 신을 저주한다고 하였다. 사회는 그들 부부를 살인범(殺人犯)보다도 더 꺼리고 또 비웃더라고 한다. 그들 부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에 한해서만은 자신들의 죄를 털끝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드디어 인간 사회에 항거했다고 한다. 신에게 희롱을 당한 그들은 신의 면상에다 침을 뱉고 돌아섰단다. 까닭도 없이 인간대열에서 몰려난 그들은 쓴웃음으로 돌아서 동물의 편에 옮겨섰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죽어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죽은 뒤에 극히 만족해할 신과 인간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길도 없는 이 원시림 속으로 단둘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과도 또 인간들과도 절연된 여기에 그들의 우주를 건설했다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아내는 딸을 낳았단다. 그 이름을 이 산중에서 가장 고운 꽃 도라지라고 했단다. 도라지가 네 살 나던 해에 아내는 죽었단다. 집 앞 잔디밭에 묻었단다. 그날부터 노인은 거의 말을 할 필요없이 살아왔다고 하였다. 그래 지금 도라지가 하는 말은 그 거의가 네 살 때에 자기 어머니한테서 배운 말이라고 했다. 도라지는 그야말로 바위 잔등의 이끼처럼 혼자 자랐다는 것 이었다.
“그런데 청년!”
노인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더니 다시 한번 김소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딸 도라지가 열다섯, 스물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자라자 노인에게는 또 하나 큰 고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바위는 죽었어도 그 등에서 자란 이끼는 파랗게 살았더라는 것이었다. 사슴처럼 팔팔한 딸 도라지의 본능의 괴로움은 볼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동물의 편에 옮겨서기는 했어도 채 동물이 되지는 못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차츰 노인 자신의 기력에 자신을 잃게 되면서부터 노인은 딸의 앞날이 격정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청년! 이 산중에서 내가 죽은 날 그날 그애 혼자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소? ……. 지금 어린애는 내 아들이오. 내 손자요. 청년! 이것만은 알아주오. 난 그 무엇에 진 것은 아니오, 목숨을 걸고. 끝까지 이기기 위해서 였소. 살기 위해서였소. 딸을 위해서였소.”
김소위는 멍하니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왈칵 달려들어 김소위의 양 어깨를 쥐었다.
“청년! 내가 나쁘오? 그럼 어떡하면 좋았소? 말하시오. 어떡하면 좋았소?”
노인은 슬며시 김소위의 어깨를 쥐었던 손을 떨구었다.
“그러니 청년, 나가지 마오. 우리들을 구해주오. 부탁하오. 나가지 못하게 할 거요, 도라지가. 또 나갈 수도 없을 거요.”
노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김소위는 또 어깨 위에 늘어진 나뭇가지에서 나뭇잎을 주루루 훑어서 물 위에 뿌렸다. 나뭇잎은 천천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그날은 여느 날보다 일찍이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김소위는 오래간 만에 집 안에서 총을 들고 나와 언제나 나와 앉는 바위 위에 가 앉았다. 부서진 헬리콥터에서 찾아내온 칼빈과 권총이었다. 김소위는 총을 분해하여 벌려놓고 손질을 하고 있었다. 김소위는 심심할 때면 노인들이 화투패를 맞추듯이 총을 분해했다 맞추었다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김소위 옆에 앉아서 신기한 듯이 김소위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집 앞에 무릎을 안고 앉아서 멀리 김소위와 딸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가 어슬렁 걸어가 노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눈은 여전히 김소위와 딸을 바라보는 채 손으로 개의 등을 쓱쓱 쓸어주고 있는 노인의 입 가에는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쏴 바람이 한 번 나무 사이를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의 긴 수염 이 흔들렸다. 노인은 일어섰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뭔가 손에 들고 나왔다. 그것은 바이올린 케이스였다. 어디에다 숨겨두었던 것인지 뽀얗게 먼지가 올랐다. 노인은 핸들에 걸린 거미줄을 풀을 한줌 뜯어 털었다. 케이스 뚜껑을 열어젖혔다. 호박(琥珀) 색 나무결이 고운 바이올린이 가운데 아직 하얗게 송진 가루가 묻은 채 들어있었다. 노인은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앞 뒤를 뒤집어가며 살펴보았다. 제일 가는 E선은 끓어져버리고 없었다. 노인은 세 줄만 남은 바이올린을 수염으로 덮인 턱 밑에 가져다대었다. 활을 빼어 내었다.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활과 바이올린 줄이 서로 닿는 곳에 가 머무른 노인의 두 눈은 이상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노인의 마디가 신 왼손 긴 손가락들이 바이올린 줄을 꽉 눌렀다. 오른손에 쥔 활이 한 번 휘청 하는가 하자 엇비슷이 밑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G선에서 나는 굵은 소리가 낮고 부드럽게 떨었다. 노인의 오른 손목이 무용을 하듯 나긋이 구부러졌다 펴며 활이 다시 위로 밀고 올라갔다. 바이올린 소리는 처음부터 흐느끼는 울음소리였다. 엘레지 . 느리게 느리게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조용한 산 중 저녁 하늘에 멀리멀리 펴져나갔다.
김소위는 지금 마악 손질을 끝낸 칼빈과 권총을 하나찍 두 손에 들고 일어서려다 말고 그대로 노인이 있는 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여인은 김소위 옆에 서있었다. 아마도 생전에 처음 듣는 음악 소리인양 여인은 넋을 잃고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곡이 끝났다. 노인은 지금 자기가 앉아있는 위치마지 잊어버린 듯 바이올린을 턱에서 떼어 무릎 위에 놓은 채 멍하니 자기의 발부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은 김소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김소위도 고개를 떨구고 자기의 발부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도 자기의 발부리를 보았다. 꺼먼 바위 위에는 이끼만이 파랗게 자라있었다.
노인은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올렸다. 활을 대었다. 한 번 콱 눌러 내리자 탕 하고 한 줄이 튀었다. 노인은 노한 듯 끓어진 줄을 뜯어던졌다. 다시 활을 대었다. 이번에는 오른손의 활이 짧게 빠르게 오르내렸다. 한참을 짧은 소리가 튀다 말고 또 탕 했다. 노인은 활을 멈추었다. 또 끊어진 줄을 뜯어던졌다. 다시 활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한숨처럼 길고 폭이 넓은 소리가 노인의 손끝과 합께 떨려나왔다.
김소위는 칼빈총의 총신을 꽉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김소위는 부드득하고 이를 맞물었다. 벌떡 일어섰다. 옆에 섰던 여인이 흠칫 한 걸음 물러섰다. 김소위는 무슨 발작을 참으려는 사람모양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칼빈을 번쩍 들었다. 절커덕하고 장진을 했다. 총구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다다다다다다다당.
연발로 쏘아제친 총소리가 길게 메아리를 끌며 산줄기를 타고 뻗어나갔다. 김소위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에 총을 눕혀놓은 채 그는 두 손을 꽉 쥐어짰다. 눈물이 주루루 귤러 떨어졌다.
놀란 여인은 저만치 노인을 한 번 바라보았다 또 김소위의 구부린 등을 내려다보았다할 뿐 영문을 몰라 했다.
그날 밤 잠이 든 김소위의 두 볼에는 새어든 달빛에 눈물자국이 뱐지르르 줄을 긋고 있었다.
여인은 잠이 든 김소위 옆에 깨어앉아 김소위의 얼굴 가까이 자기의 얼굴을 가져다대고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 저녁에 들은 그 무언가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던 그 소리와 또 모든 것을 까부수는 것 같던 그 무서운 소리로 해서 어쩐지 무슨 큰 변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김소위가 가슴에 올려놓았던 팔을 밑으로 떨구며 잠 속에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여인은 무릎을 밀고 김소위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김소위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말고 그의 가슴에 푹 얼굴을 묻고 말았다.
“나는, 나는…….”
여인은 울고 있었다. 김소위는 반쯤 잠이 깬 채로 여인의 허리를 부둥켜 안았다.
“아! 난.”
여인은 안타까이 김소위의 얼굴에다 자기 얼굴을 가져다 비비기 시작하였다. 김소위는 잠이 깨었다. 눈을 떴다. 파란 달빛이 그들의 상반신을 들이비추고 있었다. 여인은 얼굴을 들었다. 눈. 달빛을 받은 눈물에 젖은 그녀의 두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김소위는 두 팔에 꽉 힘을 주었다.
“나는 도라지가 좋아.”
여인은 김소위의 몸에 자기의 온몸을 던져왔다. 그의 손을 끌어다 씹었다. 입술을 빨았다. 귀를 물어뜯었다. 어깨를 깨물었다. 가슴을 혼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날 따라 노인은 칼빈총을 들고 나섰다.
“오늘은 사냥을 가십니까?
김소위가 물었다.
“아니오. 밭으로 가오.”
“그런데 총은?”
“아 이거 ?……. 청년. 가지 마오.”
노인은 손에 든 총을 한 번 내려다보고 나서 한참이나 무엇을 살피듯이 김소위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노인은 돌아서 마치 막대기처럼 총구를 밑으로 해서 총을 들고 잔디밭 지편 끝 바위 옆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총을 김소위의 손에서 멀리 해 둠으로써 김소위가 산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자는 속셈인지도 몰랐다.
그날도 종일 여인은 불을 뿜었다. 그저 둘이는 잔디밭에서 강아지들처럼 맞붙어 딩굴었다.
어린애가 울었다. 여인은 달려들어가 밖으로 안고 나왔다. 잔디밭에 눕혔다: 어린애는 순했다. 벙글벙글 웃으며 젖혀진 거북모양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여인은 그 어린애가 무척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탐스럽게 생긴 어린애의 볼을 꼭 찔러보고는 김소위를 한 번 쳐다보고 웃고, 또 배나 고추를 큑 찔러주고는 또 김소위를 쳐다보고 웃고 했다. 김소위도 함께 어린애를 얼러보기도 했다.
저녁 때였다. 몇 번째인가 또 여인이 김소위를 끌어눕혔다. 웬일인지 그날은 김소위도 그녀의 사랑이 조금도 겹지 않았다. 둘이는 어린애가 혼자 옹알거리며 팔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는 옆에서 또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노인이 저편 잔디밭 끝으로 올라섰다. 노인은 거기 소나무 밑에 멈칫 섰다. 손에는 아침모양 총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김소위와 여인은 노인이 돌아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옆에 누워서 놀던 어린애가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인은 모른 체였다.
노인의 시선이 어린애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곧 또 한 덩어리가 된 김소위와 여인에게로 옮았다. 어린애가 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나 짓눌린 여인은 그지 까득까득 웃고만 있었다.
노인의 미간이 점점 찌푸러졌다. 눈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턱수염이 약간 떨리며 아래 입술이 웃 입술을 올려덮었다. 노인의 얼굴은 점점 이그러지기 시작했다. 두 눈시울이 히물히물 움직였다. 노인은 어떤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김소위와 여인은 아직도 노인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김소위와 여인의 네 개의 팔이 두 개의 몸뚱어리를 가운데로 하고 서로 꽉 맞물어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극도로 흉하게 이그러진 노인의 얼굴이 꿈틀하며, 아버지로서의 노인에서부터 한 사나이로서의 노인으로 변해갔다. 노인의 거친 손끝이 푸르르 떨렸다. 노인은 총을 번쩍 들어올렸다.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눈을 꽉 감아버렸다.
다 다 당―.
총소리의 메아리가 긴 꼬리를 거두운 다음에야 노인은 꿈 속에서 깨어나듯이 가만히 눈을 떴다.
그 자리에는 벌거벗은 여인만이 어린애를 껴안고 몸을 도사리고 앉아있을 뿐 김소위는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자기가 총에 맞기나 한 것처럼 무릎을 푹 꺾으며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노인의 이마에는 진땀이 죽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날 밤 김소위는 한 잠도 자지 않았다. 세 번이나 소변을 보러 밖에 나갔다. 그때마다 여인이 꼭 따라나왔다.
달이 밝았다. 밖의 잔디밭에 누운 노인은 잠이 들었는지 또는 그저 잠든 체하고만 있는 것인지는 모르나 칼빈총을 베개모양 베고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김소위는 잠든 체하고 누워있었다. 여인은 거의 밤을 새워 그의 옆에 앉아있었다. 때때로 쿨쩍거리며 울기도 했다. 그러던 여인도 새벽녘이 되어서는 곤하든지 김소위 옆에 바싹 붙어서 누웠다. 이윽고 여인은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김소위에게 등을 돌리고 지쪽으로 돌아누웠다.
김소위는 살그머니 자기의 머리 밑으로 손을 넣었다. 목침 위에 군복 저고리를 접어 올려놓은 그 밑에서 권총을 꺼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일어났다. 양복 저고리를 집어들었다. 밖을 내다보았다. 먼동이 희끄무레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소위는 여기 온 뒤로 언젠가 노인을 따라 골짜기에 내려갔을 때 한 번 신어보았을 뿐인 군화를 벽에서 벗겨들었다. 문을 나섰다. 신은 든 채 맨발 그대로 가만가만 잔디밭을 걸었다. 김소위가 잔디밭 복판에 있는 무덤 옆을 막 지나갈 때였다.
“기어이 가오?”
노인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소위는 흠칫 놀라 뒤로 돌아섰다.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의 권총이 노인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대로 풀 위에 번듯이 누운 채 두 손을 머리 밑에 깔고 이제 밝기 시작하는 새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소위는 권총을 슬그머니 다시 허리띠에 찌르며 돌아서 결었다.
김소위는 노인과 같이 왔던 기역이 있는 화전 옆을 지나 내를 끼고 덮어놓고 걸었다. 노인의 말대로 길이 없었다. 김소위는 다행히 물이 얕은 내를 돌을 디디고 또 어떤 때는 물에 빠지며 건넜다 또 건너왔다하며 거의 달리다시피 결었다. 동녘이 환해졌다. 이제 앞이 밝게 보였다. 그래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오리 쯤은 온 듯 했다. 김소위는 또 내를 절벅절벅 건넜다. 군화 속에는 물이 하나 가득 했다. 바로 그때였다. 내 지편에서 개가 컹컹 짖었다. 김소위는 몸이 오싹했다. 반사적으로 거기 바위에 등을 딱 붙이고 권총을 뻬어들었다. 과연 승냥이 같은 개가 껑충 내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내 건너편 다래넝클을 헤치고 사람이 나타났다. 도라지였다.
“와! 와!”
개를 향해 큰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두 눈이 이쪽 김소위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개는 한 번 힐끔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김소위에게로 돌리더니 절벅절벅 내 이쪽으로 뛰어건너기 시작하였다. 개는 김소위의 댓 걸음 앞에까지 왔다. 컹컹 하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김소위에게로 달려들려고 했다.
“와! 와!”
저편 여인이 허리를 구부리며 개를 향해 악을 써 소리를 지른 것과 탕, 탕.
하고 김소위의 권총이 골짜기를 흔든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개는 푹 그 자리에 쓰러졌다. 거꾸러진 개의 몸뚱아리를 얕게 씻으며 흘
러가는 물에 뻘겋게 피가 우러났다.
김소위는 아직도 권총을 허리에 붙여 앞을 겨눈 채 건너편 여인을 건너다보았다. 놀란 눈으로 개의 주검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은 김소위에게로 가만히 눈을 들었다. 그 이상한 웃음이 두 눈에서 환히 피어나 이쪽에 선 김소위를 휘감았다.
여인은 조용히 발을 옮겨놓았다. 눈을 떼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또 김소위가 사라지기나 할 듯이 두 눈은 김소위의 눈에 멈춘 채 여인은 한 걸음 한 걸음 이리로 내를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그너가 내의 한복판 쯤 왔을 때였다. 저쪽 등 뒤 산꼭대기, 그녀의 집이 있는 쪽에서 또 총소리가 났다.
탕― .
앞산이 한 번 마주 울었다. 여인은 내 가운데 멈칫 섰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약간 벌려졌다. 그녀는 내 가운데 그냥 선 채 김소위에게서 눈을 떼어가지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조용히 얼굴을 집쪽으로 돌렸다. 그때 또 한 번 탕― .
하고 총소리가 났다. 또 한번 앞산이 쩌르릉 울었다. 여인은 획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려 뻘건 피가 마구 물에 우러나오는 개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던지
“앗! 내 아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돌아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물 이끼에 미끄러져 한 번 내 기슭에서 넘어졌던 여인은 재빨리 일어나 미친 듯이 다래넝쿨을 헤치고 사라졌다.
여인은 단숨에 산꼭대기까지 뛰어올랐다. 엎어질 듯 집으로 달려갔다. 마악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여인은 악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었다. 방 안에서 피비린내가 혹 끼쳐나왔다.
-끝-
2017년 5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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