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신춘문예에 투고한 작품 수가 해마다 점차 많아지고 있음에 기쁨이 크다. 민족시의 맥을 잇고 있는 우리시로서의 시조는, 3장의 정형이라는 구속 안에서 마음껏 모국어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문학 장르다. 그러나 좋은 시조가 되려면 압축미, 음보와 운율의 묘미나 정형성보다 먼저 앞서야 할 것이 있다. 작품이, 자유로운 발상 안에서 시적 형상화가 잘 되었는가에 주목해야한다. 특히 신춘에 올리는 시는 유연한 포용성과 독자적 창조성에 의한 참신한 발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사과정은,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먼저 12편을 고르고 다시 당선권 안에 드는 5편, <어떤 부품> <오름 위에 부는 바람> <거미의 아침> <청자> <가을, 말차를 마시며>를 뽑았다. 견주어 비교할 때 다섯 작품 모두 섣불리 내려놓기 아쉬웠으나 김화정의 <가을, 말차를 마시며>에 방점을 찍었다. 이 작품이 위에 열거한 것들을 보다 많이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장대비 그친 날, 말차를 마시며 흩어진 마음의 줄을 고르는 과정이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드러난다. 평이한 제목과 일상적인 소재지만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햇살에 널어 말린 세상 그 봉우리들'을 보아내는 저력은 결코 평이하지 않다. 가파른 삶에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이 엿보이는 가구(佳句)다. 또 '비스듬히 기운 하루 그 마저도 우려'낸 뒤 '내안의 길을 찾아'떠나는 '굽은 생 한 채'를 깔끔하게 앉혀놓는 저력도 비범하지 않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신뢰감을 갖게 했다. <어떤 부품>은 발상은 신선했으나, 첫 수에 비해 둘째 수가, 그 다음 셋째 수가 용두사미 격으로 풀리는 허점을 보였다. <오름 위에 부른 바람>은 전통시조로서 활달한 가락과 유려한 언어의 연금술이 돋보였지만, 편편마다 주를 달아서 정작 본 작품의 무게감을 떨어뜨렸다. 좋은 시란 주 조차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한다. <거미의 아침>은 탄력 있는 구성력과 세련된 언어 구사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이미지의 전환이 아쉬웠다. <청자>는 '삼성혈'을 끌어들인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장과 장 사이의 흐름과 간격이 촌철살인 같은 단수의 묘미를 딱 떨어지게 살려내질 못했다. 그러나 다섯 분은 모두 언어를 부리고 놓는 능력, 시를 직조하는 놀라운 솜씨로 선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준비된 시인이었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이승은, 오승철>
<당선소감>
▲ 김화정 당선자
뜻밖에 바다 멀리서 날아온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숨이 멈췄습니다. 어느새 가슴에 둥근달이 휘영청 떠오릅니다. 그림자 드리우던 마음 구석구석까지 환해지는 기분입니다. 한 달 전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올레길을 걸으며 해녀의 숨비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픈 역사의 질긴 삶도 느껴 보았습니다. 제게는 신화적 소재를 통한 시적 체험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안덕계곡, 산방산, 산굼부리, 비자림 등은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곳이기도 하고 신선이 사는 섬이라 해서 제주를 영주瀛洲라 부른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차를 즐겨 마시면서 작은 찻그릇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차를 만들면 무엇이 될까? 문득 시조란 생각이 들어 어설프지만 적어 봅니다.
때 묻지 않은 언어 한 줌 쪄서 말린다. 결 곱게 갈아내어 차호 속 꼭 눌러 두었다 물 만나 가루 잘 저어 삼장육구로 풀어본다.
초의선사는 차를 마실 때 차를 따고 덖고, 비비느라 ‘수고하는 손들의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된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 또한 시조를 품에 안으려면 갈 길이 아득합니다. 앞으로 시조를 쓰면서 진솔한 삶의 미학을 찾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늘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달항아리의 너그러움과 질박함을 닮고 싶습니다. 당선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많습니다. 존경하는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지도교수이신 이은봉 교수님 고맙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준 명남, 화숙, 더불어 선배 문우 여러분,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늘 힘이 되어준 남편과 세 아들 용,봉,주에게도 기쁨을 전합니다. 더욱 정진해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드리며 뉴스제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큰 절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