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Воскресение)은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중 하나로서,
주인공 공작 드미트리 네흘류도프가
카츄샤(다른 이름은 류보프, 성은 마슬로바)란 여자를 만나 타락시킨 죄의식을
톨스토이 특유의 방법으로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부활(復活)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작품에 속하는 소설로,
사회 조직과 법률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책의 제목인 ‘부활’은
한 인간의 정신적 부활이자
새로운 러시아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1. 귀족 청년과 매춘부가 인간의 영혼으로 부활하는 과정
네흘류도프 공작은
어느 날 지방 법원의 배심원으로 법정에 나갔다.
재판은 살인 강도 사건으로,
어느 매춘부가 손님에게 독을 먹여 죽이고 돈과 반지를 훔쳤다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피고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카튜샤 마슬로바라는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그가 청년 시절에 고모의 집으로 놀러 갔을 때
그곳에 있던 아름답고 청순한 하녀를 유혹해 임신시킨 뒤
나중에 돈 몇 푼을 쥐여주고 버렸던 적이 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피고가
바로 그 하녀인 카튜샤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뒤에 타락해서 결국 매춘부가 되었다.
그녀는 사실 무죄였는데
법정 수속이 잘못되는 바람에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자가 파멸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구하려고 결심한다.
그는 형무소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변
호사를 찾기도 하고,
유력자에게 도움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형을 바꿀 수가 없어
카튜샤는 죄수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향한다.
네흘류도프도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간다.
카튜샤의 사건이
시베리아에서 판결 취소 명령을 받게 되자,
네흘류도프는 그 소식을 가지고 카튜샤를 찾아간다.
그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될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튜샤는
정치범인 시몬손이라는 혁명가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뒤였고,
네흘류도프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녀도 마음속으로는 네흘류도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에게 감사하고 있지만,
그의 장래를 생각해 일부러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축복한다.
그 뒤 그는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가면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
2. 카튜샤, 순수한 영혼으로 다른 영혼을 구원하다
카튜샤 마슬로바는
떠돌이 집시와 여자 농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3세 때
어머니가 죽자,
여자 지주의 집으로 가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저택에서
반은 하녀, 반은 양녀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호칭도 여종들처럼 카티카라는 비칭(卑稱)이나 카튜니카라는 애칭이 아니라
그 중간인 카튜샤였던 것이다.
16세에
네흘류도프를 처음 만났을 때
카튜샤는 눈이 검고 생기 발랄한 순진한 소녀였다.
아니, 그로부터 3년 뒤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도 카
튜샤는 전과 변함없이 귀여웠고,
약간 사팔뜨기 같은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도 똑같았다.
청순한 그녀는
순수한 마음으로 네흘류도프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사랑을 이용해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정조를 빼앗고,
하룻밤 쾌락의 대상으로 삼은 다음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매춘부로 타락한 뒤에도
카튜샤는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죄를 뉘우친 네흘류도프의 진실한 말에
마지막에는
성실하게 답하며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녀의 갱생으로
네흘류도프도 인간으로 다시 부활한다.
3. 작품 속의 명문장
“인간이란 강과 같은 것이다. 어떠한 강이라도 물 그 자체는 마찬가지이고,
어디까지 가도 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각각의 강이 어떤 때는 좁게, 어떤 때는 빠르게,
어떤 때는 넓게 흐르는 경우도 있으며,
고요한 때도 있고, 때로는 깨끗하고, 때로는 차갑고,
어느 때는 탁해지고, 어느 때는 따뜻해지기도 한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4. 등장인물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 소설의 주인공으로, 과거 카추샤를 타락시킨 죄책감을 씻을 방법을 찾고있다카추샤 마슬로바 : 네흘류도프네 집에서 쫓겨난 후 독살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수감됨코르챠기나 : 네흘류도프와 결혼 말이 오가는 공작의 딸마리야 바실리예브나 : 네흘류도프를 유혹하여 깊은 관계를 맺은 유부녀마슬레니코프 : 군에 있을때 경리장교 였던 고지식한 사람. 카추샤 사건 해결을 위한 면회를 도와줌메니쇼프 : 아내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 중페도샤 : 남편 독살 미수로 수감되었으나 보석 기간동안 화해함. 시어머니가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려 했으나 시베리아 징역형을 선고받음베라 : 벽촌의 여교사 였으나 혁명 운동으로 수감된 정치범블라디미르 시몬손 : 카추샤가 결혼하기로 하는 정치범
5. 소설의 의미와 창작배경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제정 러시아 사회를 전면 비판하였고,
제정 러시아는 결국 오래가지 않아 사회주의 혁명(1905년)에 의해 무너졌다.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그의 생각대로
소련은 토지의 사유제도를 폐지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톨스토이는
개인들 각자의 갱생을 통해
제도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소설 말미에 네흘류도프가 신약성서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듯이
톨스토이는 복음서에서
자기 삶의 지표를 찾았고 무저항과 비폭력을 신조로 삼았다.
1887년 톨스토이는 친구인 법률가 코니에게서
옛날 페트르부르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부인의 친척 청년이 놀러 왔다가 그녀를 유혹해 임신하고,
그녀는 매춘부로 전락합니다.
그녀는 돈을 훔치다 4개월 형을 받는데
그 청년이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됩니다.
청년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다
그녀와 결혼하려 했으나
그녀는 감옥안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고맙니다.”
톨스토이도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며
숙모 집의 하녀와 관계를 맺었고,
그녀가 타락하여 일생을 망친 일도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감동한 톨스토이는
1889년에 소설 창작에 착수하여
10년 만인 1899년에 완성했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는
1828년에
명문 백작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를 모두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서 내성적인 소년으로 자랐다.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은 학문의 무덤이다’라고 생각해 2년도 되기 전에 중퇴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2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남쪽의 영지
야스나야폴랴나로 돌아가 농지 개혁을 시도했으나
무참하게 실패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1852년에
형 니콜라이를 따라 카프카스로 가서 웅대한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곳에서 포병대 장교로 근무하는 한편
문학 활동을 시작해 처녀작인 『유년 시절』(1852)을
잡지 『소브레멘니크』(러시아어로 ‘동시대’라는 뜻)에 발표하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크림전쟁에서는
세바스토폴의 격전에 참가했고,
한편으로는 『소년 시절』(1854) 등 기타 작품을 잇달아 발표해
185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했을 때는
이미 주목받는 신진 작가가 되어 있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이듬해인 1857년에
떠난 최초의 유럽 여행에서 그는 단두대를 이용한 사형 집행을 보고 서
유럽 문명에 깊이 절망했다.
귀국한 뒤에는 교육 활동도 활발하게 시작했다.
1862년
궁정 의사 베르스의 딸로 18세였던 소피아와 결혼하고
새로운 경지로 접어들어
대작인 『전쟁과 평화』(1864~1869), 『안나 카레니나』(1873~1876)를 완성했으나,
이 무렵부터 인생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해 심각한 사상적 동요를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 종교에서 구원을 찾았다.
그리고 『참회록』(1882), 『나의 신앙』(1884) 등의 글로
근대 문명과 국가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독자적인 아나키즘을 확립했다.
말년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크로이체르 소나타』(1890),
『부활』(1899) 등의 작품을 썼으나,
구도자로서의 자기 모순과
부인 소피아와의 가정적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1910년 10월 새벽에 가출하면서 방랑의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병을 얻어
그 해 11월 7일
랴잔의 한 외딴 마을인 아스타포보의 간이역(지금의 톨스토이 역)의 역장 관사에서
82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 세계문학(가메야마 이쿠오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