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문맹으로 문명의 바다를 건너야 했다. 빈곤한 가정 살림 때문에 학교 근처에도 못 갔다. 문맹으로 문명의 바다를 건너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릴 때부터 교회학교를 특심으로 다니며 성경 읽는 법을 배웠다. 다행히 성경이 한자가 아닌, 한글로 되어 있어 어머니의 눈을 열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글을 깨친 게 아니라 성경 읽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성경을 읽은 게 아니라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에 눈이 열려야 했다. 성경을 읽는 것을 제일 목적으로 삼았으니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법은 깨치지 못한 것이다.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을 발음 기호에 맞게 그리는 정도의 쓰기만을 어렴풋이 할 수 있었다.
한글 성경을 읽는 눈으로 엄마는 시계를 보고, 달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셈을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선거에서 누구를 찍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세심하게 챙긴다. 면사무소 복지 담당자에게 조곤조곤 물어서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다 주고, 은행에서 입출금은 물론 카드 발급과 사용 등을 능숙하게 한다. 주민번호 열세 자리와 주소를 외우고 자식 며느리 손주들, 시동생과 동서들, 친정 식구들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빽빽하게 적은 공책을 가보처럼 다룬다. 엄마의 공책은 상형문자로 가득 찬 고고학적 유물 같다.
공무원들이 실수를 하거나 경우에 없는 말을 하면 야무지게 따져 묻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 성경을 읽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의 공약이 담긴 홍보물을 방바닥에 번호대로 펼쳐놓고 꼼꼼히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나한테 묻기도 한다. 누가 정직하고 똑똑한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글이 아니라 성경 읽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성경은 엄마에게 한글만 깨우치게 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가치와 세상의 중요한 이치들을 깨우쳐 주었다. 텃밭에 호박이 왜 열리는지, 아침해와 저녁달이 어떻게 뜨는지, 사람과 짐승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어떠하며 사람된 도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엄마는 알고 있다. 문자를 읽는 눈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거칠고 지친 노동의 날들 가운데도 엄마는 예배를 빼먹지 않았다.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구역예배, 새벽예배까지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엄마의 몸은 오래오래 단련된 무쇠솥이 따뜻하고 기름진 쌀밥을 지어내듯 식지 않는 믿음을 지어냈다.
새벽에 밭에 갔다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 가사노동이 시작된다. 제일 먼저 배고픈 식솔들을 위해 밥부터 지어야 한다. 무쇠솥에 보리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면 그 짬을 이용해 반찬을 만든다. 전기밥솥이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하루 세 끼를 매번 밥과 반찬을 해야 했다. 보통 바지런하고 손이 빠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그 시절 엄마들의 살림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에게 잠깐 찾아오는 짬이 있다. 밥이 한소끔 끓고 나면 아궁이의 불을 끄고 기다려야 한다. 가마솥의 보리들이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그것을 뜸들인다고 한다. 밥을 뜸들이는 시간에 엄마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기껏해야 10분 내외 되는 시간이다. 그 때 엄마는 부엌 바닥에 부지깽이 숯으로 글씨를 썼다. 엄마에게 익숙한 단어들, 하나님, 예수님, 십작아, 아버지, 으녜(은혜), 창새기(창세기) 같이 익숙한 성경의 단어들을 까만 숯글씨로 아궁이 앞에 상형문자처럼 그렸다.
해가 긴 여름날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먹을 것이 없었다. 아이들과 기껏해야 야생 열매나 먹을 수 있는 풀들을 뜯어먹는 게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엄마가 밭에서 돌아와 밥을 지을 때까지 굶주려야 했다. 기린 목처럼 긴 여름날 오후의 시간은 빈곤이 가져다주는 허기와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엄마가 밭에서 돌아오면 우리 4남매는 빚쟁이처럼 달라붙어 ‘엄마, 나 배고파’를 연발했다. 엄마가 밥을 짓는 그 짧은 시간에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부엌을 드나들며 칭얼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모르는 말이 부엌 바닥에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쓰여 있었다. 엄마는 부엌의 흙바닥에 ‘바바직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것은 내 기억으로 엄마의 글자가 처음으로 성경 밖으로 나온 사건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은 마음보다 배가 고픈 그 상태가 나를 압도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수 있는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 단어는 눈썹 짙은 사내처럼 숯검댕이 글씨로 내 기억에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먼 후일에 엄마에게 물었다. 그 때 엄마가 ‘바바직또’라는 글자를 부엌 바닥에 쓴 거 기억하냐고.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니가 저녁만 되면 쫄랑쫄랑 따라댕김서 바바직또 안 됐냐고 칭얼댔잖아.”
그렇다. 그 상형문자 ‘바바직또’는 어린 자식이 허기가 져서 칭얼대며 ‘밥 아직도 (안 됐냐)“를 연발하던, 그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굳이 뜸들이는 시간에 밥솥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었는데 엄마는 그 바쁘고 분주한 시간에 밥솥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허기져서 칭얼대는 어린 자식들에게 한순간이라도 빨리 밥을 퍼멕이고 싶은 간절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 엄마에게도 벽돌책처럼 두껍고 지루하게 흘렀던 것이다. 나만 허기진 게 아니라 엄마도 피곤하고 늘어지고 허기지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겐 자신의 허기보다 어린 자식의 허기가 더 허기졌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밥솥에 독촉하는 마음으로 아들의 칭얼대는 말을 주문처럼 받아 적었던 것이다.
‘바바직또’는 엄마가 밥솥에 거는 주술이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라고 협박하며 노래했던 가락국 백성처럼 밥솥을 향해 빨리 밥을 지어 내라고 불렀던 주술요(呪術謠) 같은 것이었다. 부엌 바닥에 깊게 새긴 그 글씨에 엄마의 허기와 외로움과 가난과 눈물과 사랑과 연민이 고여 있었던 게다. 자식에 대한 웅숭깊은 사랑이 한없이 출렁이고 있었다. 허기진 어린 자식에게 따순 밥을 빨리 멕여야 할 텐데, 이놈의 솥은 ‘바바직또 안 됐냐’고 보채고 보챘던 것이다.
엄마가 부엌 바닥에 그려놓은 ‘바바직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다. 그와 함께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는 ‘엄마’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내 앞에선 바바직또다.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비로소 바바직또라는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을 때 두 발 짐승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첫댓글 내게 있어 엄마의 상형문자는 팔배게, 그리고 밥냄새랑 비슷했던 엄마냄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