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햇빛 엽서님께서 감사 하게도 성수 스님 법문을 올리 셨다.
참으로 간절 하고 가슴 저리는 말씀으로 들렸다.
대학시절 불교 신문의 큰스님들 법석란에서 유독 신심 나게 만든 법문들.
그래서 오늘은 가슴 저리게 했던 성수 큰스님의 일화와 법문 자료를 발췌해 보았다.
활산 성수 선사(1923~2012.04.15)
스님은 19세때 원효대사 같은 성인이 되고자 1년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길 가던 스님에게서 “범어사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그길로 범어사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서 가장 큰 중 나오라”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스님들이 몰려나와 끌어내려 했지만 스님은 계속해서 “큰 중 나오라”고 떠들었다.
잠시 후 ‘큰 중’이 나와 “총각, 큰 중은 왜 찾는가?”라고 물었다. 스님은 “원효대사 같은 도사를 만나려고 전국을 다녔는데, 도사는 없고 절엔 놀고먹는 중들뿐입니다. 국민들이 절에 와서 같이 놀고먹으니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큰 중’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이 ‘큰 중’이 바로 동산 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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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스님 생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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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은 마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지금 당장 목을 잘라 바칠 정도로 간절하게 물어야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물어봤자 천번 만번 일러줘도 그 소리가 귀에 안 들어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눈에 눈물이 뚝뚝 흐르고, 알고 싶은 그 심정에 푹 젖어야 돼.”
“해인사에 갔더니 구산 스님과 청담 스님이 공양주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내가 말을 안 들어 조실인 효봉 스님에게 불려갔습니다. 효봉 스님이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공양주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성수 스님은 “큰스님, 상심(上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하심(下心)하라고 하면 그것이 되겠습니까?”라고 따졌다. 효봉 스님이 “너는 그럼 무엇 하러 왔나?”라고 물었다. “도를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성수 스님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에 효봉 스님이 “무자(無字)가 도이니 7일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 성수 스님은 14일의 기간을 달라고 했다. 효봉 스님은 “무자를 14일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내 주장자에 맞아 죽어도 아무 말 못한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어라” 해서 성수 스님은 서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성수 스님은 해인사 퇴설당에서 정진하다 6일 만에 우연히 머리와 몸에 서늘한 향기가 돌더니 몸과 마음이 마치 비 온 뒤 갠 날씨와 같아지는 체험을 했다. 그길로 효봉 스님에게 달려갔지만 효봉 스님은 도가 아니라고 했다. 화가 난 성수 스님은 “내가 가져온 것이 도가 아니면 효봉의 도를 내놓아라!”며 효봉 스님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효봉 스님은 “내놓고 있는데 네가 보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성수 스님은 “천하의 만물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는 무비도(無非道)”라고 읊었다.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다. 그러자 효봉 스님은 껄껄 웃었다. 그 뒤로도 성수 스님은 큰스님들 방을 수시로 찾아가 애를 먹였다. 성수 스님은 구도자의 본분이 묻고 배우는 데 있다는 것을 이 일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토굴 지어서 살고 있으니 자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귀찮아. 그래서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실컷 공부하겠다고 원을 세우고 천성산 제일 높은 골짜기 안에 비어 있던 토굴로 들어갔어. 불을 지피고 새벽이슬에 젖은 옷을 벗어 방에다 널어놓고는 ‘이제 드디어 내 살 데를 왔구나’ 하고 턱 앉아 좌선을 하니 너무 재미가 나는 거라.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인데, 발자국 소리가 나서 젖은 옷을 도로 주워 입고 있으니까 어떤 여자가 나물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더니, ‘이 깊은 산 중에 혼자 와서 삽니까?’하고 물어. 그래서 조용한데 공부 좀 실컷 하려고 왔다고 사실대로 얘기했거든. 그 말끝에 ‘물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하고 되묻는데 그만 할 말이 없는 거라. 입이 안 떨어져. 멍하니 해가지고 앉아 있으니 그 여자는 물러가 버리고 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모르게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여자한테 정말로 좋은 말을 들은 거야.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나? 어디가면 안 시끄럽냐 이거야. 자기가 쉬어야지. 덜 마른 옷을 그대로 입고 도로 걸망지고 돌아와서 그 뒤부터는 사람이 와서 얘기를 다든지, 똥을 누든지, 내 할 일 하면 된다 이거야.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긴데서 맨 마지막 여자의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하는 그 말이 평생의 스승이 된 거야.”
“발심이 분명해야 돼. 도사가 되고 싶으면 도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도사가 되느냐 묻고 배워야 되고, 어른이 되려면 어른 짓 하는 법도 배워야 돼. 묻고 배울 게 참 많아. 도를 배우러 왔으면 도를 배워서 알고 찾아야 되는데 도를 모르고 도 닦는다고 앉아 있으니 도를 묻고 배우는 놈이 없어. 목적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안 되는 거야. 불공 기도 하는 것이 불교가 아니야.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것 배우는 것이 불교야.”
“종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가 뭔지, 믿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천지야. 종교는 높을 종자고 교는 변함없는 진리야. 변함없는 진리를 배우러 가는 곳이 절이야. 믿는 것은 따라가는 것을 말해. 우리말로 하면 본보러 가는 거야. 흉내를 내야 해. 부처님 되려는 흉내를 내면서 하루에 세 번 5분씩이라고 자기가 자기한테 속지 않고 당당하게 앉아보란 말이지. 그리고 참선(參禪)한다고 하면 참(參)자가 무슨 자인지 선(禪)자가 무슨 자인지 이 두자의 뜻을 알고 시작해야 돼. 이마를 닦는지 손을 닦는지 궁둥이를 닦는지 모르고 닦아라 하는 놈도 고얀 놈, 그것도 모르고 닦는 놈도 바보온달이야. 욕을 해도 괜찮아. 욕을 해야 뿔따구가 나서찾아오지. 칼을 가지고 목 베러 오는 놈이 있으면 안고 춤을 한번 추겠어.”
▼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회초리 3개를 가져와서 1000대를 맞으면 얘기해주겠습니다. 방귀를 뀌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를 가진 납자가 오면 춤을 추겠습니다. 깨달음 자리에 가려면 먼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없애야 합니다. ‘내가 없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정진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면 정말 가슴이 뭉클 하고 감동 스럽습니다.
이미 열반 하시고 안계시지만 대자 대비한 보살이 중생을 대하는 자세 같은, 인사를 받고 계시지만 정말
마음에서 인사를 하고 계시는듯한 모습 같습니다.
위의 일화를 통해 보면 젊었을적 그렇게 당당 하시던 선객(禪客)의 모습에서 어쩌면 저렇게 겸손한 보살의 자세로 서계실까?
벼를 보고 무릎 꿇고 절을 하는 마음이 그대로 보여지는것 같습니다.
일화및 법문 발췌는 동아 닷컴과 붓다 뉴스에서
첫댓글 "물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고맙습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_()_
저는 이러한 선지식들의 치열했던 구도기를 보면 정말이지 분발심이 납니다.
말 한마디에 깨닫는 다는것을 아직 모르지만 순간순간 깨어 있도록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 만물이 스승으로 보여지고
돌을 보고 풀을 보고 얘기 할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 합니다.
닥친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 하고 성수 스님같은 선지식들의 모든 상이 없는 경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분심을 내어 분발 해야 될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햇빛 엽서님.
오늘도 스님의 법문으로 머리를 뜨끔, 맑게 다독입니다.
매일 매일 행복찾기에서 어지러운 중생심을 깨닫고 있습니다.
도로묵 됐다가 다시 차리기를 반복하면서... 지기님 녹차님 모두 모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