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간삼건축 홈페이지 캡처 지난 21일 지순(86·오른쪽 사진) 간삼건축 상임고문이 별세했어요.
지 고문은 1966년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건축사 자격증을 딴 '건축계의 대모'입니다. 1935년 태어난 그는 수학 잘하는
여학생들이 보통 의대나 약대를 간 것과 달리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어요. 오빠가 사다 준 건축 잡지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학교 선배 원정수(87) 인하대 명예교수와 결혼해 자녀가 셋이었을 때 건축사가 됐어요.
그는 1983년 남편과 '간삼건축'을 공동 설립하고 포스텍(포항공대), 동숭아트센터, 한국은행 본점 등을 설계했어요. 조명·방재·통신 등을 모두 자동화한 최첨단 건물로 유명한 포스코센터(1995년·왼쪽 사진)도 그의 작품입니다.
건축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분야로 알려져 있어요. 현장을 뛰는 거친 업무가 많은 업계 특성 때문이죠. 여성들이 여러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지금도 전체 건축사 가운데 여성은 9%에 그친다고 합니다.
여성 건축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귀한 편이에요. 하지만 여성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에 맞서 건축계에서 큰 성취를 이룬 여성들도 있어요. 역사상 최초의 여성 건축가로 꼽히는 인물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엘리자베스 윌브러햄이에요. 여성을 인정하지 않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건물 800채 이상을 짓는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해요. 미국의 줄리아 모건(1872~1957)도 유명합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건축 학교였던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한 최초의 여학생이었고, 캘리포니아주 최초로 건축 면허를 딴 여성이었죠. 졸업 후 미국으로 귀국해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캘리포니아 저택을 지었어요. 이 저택은 '허스트 캐슬'로 불리며 지금도 관광 명소랍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건축가는 우리나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자하 하디드(1950~2016)입니다. 그는 조약돌·구름·우주선 모양 등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건축 설계로 여러 공모전에서 우승했지만, 파격적인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건축주를 만나지 못해 번번이 좌절했어요. 한동안 오직 설계도만 그릴 줄 안다는 의미로 '종이 건축가'란 말도 들었죠. 그러다 1993년 가구 회사 비트라 의뢰로 독일 공장 단지에 독특한 소방서를 지으며 데뷔합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베르크이젤 스키 점프대, 독일 BMW 공장, 영국 런던올림픽 수영센터, 중국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등을 지으며 스타 건축가가 됐죠. 2004년엔 건축계 최고 권위의 프리츠커 건축상을 여성 최초로 받았어요.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