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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츠월즈 5 - 코츠월즈의 바이버리를 구경하면서 시인 윌리엄 모리스를 회상하다!
2022년 4월 22일 런던 서쪽 코츠월즈 의 레치레이드 호텔 Lechlade New Inn Hotel
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걸어서 두 강이 합쳐져 템즈강 의 원류가
시작 된다는 강변의 다리로 찾아 가서는 풀밭이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호텔로 돌아와 카운터를 지키는 할아버지에게 바이버리 Bibury 로 가야 하니
택시 를 불러달라고 말하니 30파운드 하는 개인 자가용을 불러주는지라 타고는
농촌 마을을 지나 30분 만에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인 바이버리 Bibury 에 도착합니다.
코츠월즈 Cotswolds 는 런던 서쪽에 자리한 농촌으로 100개의 전원 마을 이 있다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도시(마을) 는 12개 정도로 10년전 영국 일주 여행시 스토우
온더 월드와 버턴 온 더 워터 2곳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7개 도시 를 더 보려고 합니다.
어제 캐슬쿰 Castle Combe 과 레치레이드 Lechlade 를 보았으니 오늘은 바이버리 Bibury
를 시작으로 버퍼드 Burford 와 버튼 온더 워트 Bourton-on-the-Water 에 로어
슬로트 Lower Slaughter 와 어퍼 슬로트 Upper Slaughter 5개 도시와 마을을 보려고 합니다.
영국 국립 걷기코스의 대표격인 코츠월즈 웨이 Cotswolds Way 는 제주 올레 와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남쪽 바스 Bath 에서 북쪽 치핑 캠던 Chipping
Campden 까지 160km 도로로 전원 풍경 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걷기 좋은 길 입니다.
물과 나무며 꽃이 어우러지는 오래된 집들을 구경하고는 개울 같은 작은 Coln 강 을 건너 언덕을
올라 마을을 조망한 후에는 내려와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는 St. Mary's Church 교회 등 여러
건물들을 살펴보는데 교회 마당에는 무료 주차가 가능한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마을 인가 합니다.
코츠월즈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바이버리 Bibury 는 시인 윌리엄 모리스 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이라고 불렀던 곳이라고 하는데...... 물새와 송어가 노는 콜른강
River Coln 과 석조 시골집 이 예쁘니 유명한 유적은 없지만 마을 전체가 그림 이라고 합니다!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는 영국 디자이너이자 시인, 소설가, 번역가, 사회주의자 로 미술공예 운동
과 맞물려 영국 전통의 직물 예술과 생산방식을 부활 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문학활동을
통해 근대 판타지 장르의 설립 에 기여한, 초창기 사회주의 운동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 에식스주 월텀스토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서양고전 을 전공하다가
중세 사조에 심취 하게 되었으니 졸업후 건축가 로서의 길에 접어드는 한편 제인 버든과 결혼하였습니다.
필립 웹과 런던 남동부 외곽에 가정주택 '레드 하우스' 를 함께 설계하였으며 1861년에는 에드워드
번존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필립 웹 등과 함께 공예 회사를 설립해 태피스트리, 벽지, 직물,
가구, 스테인글라스 등을 디자인 하였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실내 장식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1871년부터 윌리엄 모리스는 런던 자택과는 별도로 옥스퍼드셔주 켐스코트메너
에 조용한 시골집 을 빌려 살았으며 이후 아이슬란드 방문을 계기로 삼아
학자 에이리크르 마그누손과 함께 영역판 아이슬란드 사가집 을 출판하였습니다.
또 서사시와 소설 집필에도 매진하여 지상낙원, 존 볼의 꿈,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과 판타지
로맨스 소설 세계의 끝의 우물 등을 출간해 문인 으로서의 성공을 거두었고 1877년
에는 고대 건축 보호협회 를 창립하여 건축 복원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운동에 나섰습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빅토리아시대 영국 문화 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로 인정받고 있으니 생전에는
시인 으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디자인 양식 이 더욱 주목받고 있으니
1955년 에는 윌리엄 모리스 협회 가 설립되어.... 그의 유산을 후대에 전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명의 누나와 네명의 남동생, 두명의 여동생등 대가족이 되면서 엘름 하우스를 떠나 우드포드
홀 (Woodford Hall) 이라는 대저택으로 이사하였으니 여섯살이었던 모리스는 말을 타고
집 주변과 에핑숲을 탐험하는데 시간을 보냈으며 영국의 낭만적인 전원풍경 을 즐겼다고 합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집 주변 마을에서 낚시와 토끼 사냥 을 즐겨했고 여러 교회와 성당
의 건축물을 찾아다니기도 했으며 1842년 영국 교회의 총본산인 캔터베리 대성당
을 방문하였다는데.... 이는 그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1848년 말보로 Marlboro 칼리지 에 입학한후 도서관에서 고고학과 고딕건축에 관한 서적을
열심히 읽었으며 전원 지방과 유적지들을 탐방 했다고 하는데..... 저 학교는 이튼스쿨을
운영하는 이튼재단 이 설립한 학교로 초대 말보로 공작 은 1702년에 앤여왕에 의해 백작
에서 승격한 존 처칠 로 말보로를 영지 로 하사받았으니 윈스턴 처칠 수상의 조상 인가 합니다.
존 처칠이 공작으로 출세하게 된 것은 블레넘 전투 승리 덕분이니....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때 프랑스군과
바이에른 동맹군 6만명이 독일의 울름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위협하자 오스트리아를 응원하는
영국과 네델란드 연합군 4만명은 라인강을 거슬러 올라가 1704년 5월 하순에 "코블렌츠" 에 상륙합니다.
존 처칠 은 아군인 네델란드군까지 속이면서 모젤강을 통해 프랑스로 진군할 것 처럼 위장 하니, 루이
14세의 프랑스군을 알자스 에 몰리게 한후 라인강을 거슬러 올라가 네카강을 건너 다뉴브강에서
오이겐의 오스트리아군 3만과 합세해 8월 12일 블렌하임 에서 8만명의 프랑스 및 바이에른 군을
기습해 3만 4천을 죽이고 1만 2천을 포로로 잡으니 코츠월즈에 블레넘궁전 까지 하사받았던 것입니다!
처칠이 신속하게 전진할수 있었던 비결은 아군 까지 속이면서 독일인 관리들과 마을 주민들을 매수해
지원을 받아내고 군량과 보급품 을 준비시켰으며 현지에서 징발한 물품은 바로 돈을 지불해 주민들
의 원성을 사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1583년에 벌어진 시즈가타케 싸움 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주민을 매수해 햇불을 들고 밤길을 밝히고 물과 밥을 마련케해 신속 진군이 가능했던걸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말보로 Marlboro " 라면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필립스 모리스 회사의 담배 이름이지만
원래는 1847년에 런던 본드가의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 라는 사람이 여기 코츠월즈의 말보로
라는 동네에 담배공장을 세웠는데 원래 여성용 담배 였으며 1919년에 미국에 회사가 팔린 것이랍니다?
필립 모리스는 윌리엄 모리스와 성이 같으니 먼 친척이 아닌지 모르겠는데.... 공식홈페이지에는 금연 관련
정보만 넘치니 뜨악한데.... 담배 회사가 1950년대 들어 메세나 시장 에 뛰어든 것도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서니 "술담배 팔아서 인류의 건강을 해치고 생명까지 앗아가면서 번 더러운 돈은 필요없다???"
1853년 윌리엄 모리스는 목사가 되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 에 입학했는데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를 만나게 되니 이들은 역사와 중세사 공부에 열중했으며..... 문학에
관한 관심사도 공유했다는데 모리스는 시 를 번 존스는 회화 에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모리스는 친구들과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등 고전뿐 아니라 당대 사상가들이었던 셸리,
키츠, 칼라일, 러스킨 등의 작품을 읽고 토론을 벌였다는데..... 이후 모리스는
시와 예술에 빠져 예술에 매진하는 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1855년 모리스는 친구들과 프랑스 북부를 여행하며 중세성당을 방문하고 라파엘 전파 전시회도 보는데
여행에서 종교가 아닌 예술의 삶에 전념 하겠다고 다짐하며 모리스는 건축가, 번 존스는 화가 가 될
것을 결심했으니 목사를 꿈꿔왔던 모리스의 신앙 이 예술과 철학을 접하고 급격하게 허물어진 것 입니다.
모리스는 1856년 옥스퍼드를 졸업하고는 건축가 가 되기 위해 조지 에드먼드 스트리트의
제자로 들어가서는 필립 웹을 만났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반 아이크의 회화 를 접하게 되면서 점차 건축가에서 화가 로 다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모리스는 화가로서 스승 로세티가 만든 라파엘 전파 모임에 가입했으니 왕립 아카데미로 대표되는
전통적 화풍에 반대 하여 자연 묘사의 복귀, 즉 라파엘 이전의 화풍으로의 복귀 를
주장했으니 수준 높은 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환경에 거주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1859년 친구 필립 웹에게 아내와 함께 살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니 레드하우스의 외관
은 모리스가 디자인한 가구처럼 전반적으로 중세 고딕풍 이었지만 내부는 실제
생활 편의에 맞춘 독창적인 집 으로..... 장식적인 느낌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1867년 아내 제인 버든이 로세티의 모델 이 되고 로세티의 아내가 아편 중독으로 사망하자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 하니 이를 본 모리스는 두 사람에게 동거를 제안하고 이들은 옥스퍼드셔
에 있는 켈름스코트 매너 하우스 에서 살게 되는데..... 아내의 불륜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웠으나 그곳은 모리스가 '지상낙원' 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이었다고 합니다.
1868년 모리스는 사랑의 고통 을 잊기 위해 시 “지상낙원” 을 썼지만 출판사가 거절하자 1868년에
“제이슨의 삶과 죽음” 이라는 제목으로 자비 출판했고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시인 이 되었습니다.
모리스는 시집 “지상낙원” 을 위한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1869년 부터 아이슬란드 전설
과 신화 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1871년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회주의적 이상 을 품게 됩니다.
당시 고딕 부흥주의자들이 고딕 건축을 복구하기 위해 파괴하려 하자 모리스는 복구가 아닌 보호
를 주장하였으며..... 1877년 고건축 보호협회 를 창립해 건축 복원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운동에 나섰으니 고건축 보호협회는 지금도 환경과 생태 문제 에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리스는 '예술을 위한 예술' 에서 '민중예술' 로 나아갔으며 이를 혁명의 수단 으로 삼았으니
사회주의 혁명 을 위해 비전 제시를 중요시 했는데 “에코토피아 뉴스” 는 모리스의 꿈의
이야기로 100년 뒤 이상사회를 그린 유토피아 소설 로 사회주의 동맹이 제시하는 미래
사회상을 보여주고..... 당시 사회 문제들을 비추어 꿈이라는 허상에 대입해 비판 하였습니다.
모리스 사망 후 모리스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예술가들은 생활 예술을 통해 사회 개혁에 동참 하고자 후에
'미술공예 운동' 을 벌였으며..... 이후 130여 개의 각종 협회 및 단체가 미술공예운동을 표방하기 시작
했으며 이 운동은 후에 '아르누보' 양식으로 이어지게 되니 이런 와중에 바이버리를 찬미 했는가 합니다?
일본 히로히토왕은 왕세자 때인 1920년 유럽 투어때 바이버리 고택 에서 하루를 묵어갔다고 하며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 의 창설자인 헨리 포드 도 이 집을 보고는 ‘건물째 뜯어다가 미국
미시간으로 옮겨 지을 계획’ 을 세우기도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 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탐내는 이들이 많아지자..... 자연보호와 역사 유적 보존을 위한 민간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 가
1928년 이 건물을 사들여 보존해 오고 있다는데, 예술품에 대한 욕심으로는 앙드로 말로 가 있으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불상 을 반출하다가 실패했으며, 일본열도가 침몰하면 한가지만은 꼭 건지고
싶다며 극찬한 나라시 호류지에 있는 동양의 비너스 “구다라간몬 (百濟觀音, 백제관음)” 이 생각납니다.
첫댓글 코츠윌즈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석조건물인 바이버리이군요.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유명한 시인 윌리암 모리스가 바이버리를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극찬을햇군요.
모리스아내가 화가와 사랑에 빠져서 모리스가 속이 많이 상했을텐데도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곳이라고 하엿군요.
바이버리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윌리엄 모리스도
오늘날 영국인들의 사람을 받는 사람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