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아주 오래전
아침마다 오르는 산책길에 펌프샘 하나가 있었지요.
오며가며 목을 축일 수 있던 펌프샘.
펌프 아래 작은 양동이와 바가지 하나 얌전히 놓여 있었지요.
그리고 팻말하나.
<물은 실컷드시고 다음 사람을 위해 양동이에 마중물을 남겨두세요>
그 물을 <마중물>이라고 처음 붙인 그 누군가가
꼭 현자같고 시인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물을 마중하기 위해 부어주는 물 두바가지,
말라있던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빈 펌프질을 하면,
저 깊은 수맥의 물이 올라올 수 있도록
두 바가지 물은 마중을 갑니다.
그리고 사이좋게 힘들지 않게 손잡고 힘차게 솟구쳐 올라옵니다.
패킹이라도 헐거워져 있으면, 마중물을 더 많이 부어줘야 합니다.
뽀각뽀각 빈 펌프질을 열심히 해대면, 쿨럭쿨럭 마른 기침하다가
드디어 샘물은 솟구쳐 오릅니다.

삶에 있어서도 마중물은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위로의 마중물 두 바가지를 내 이웃에게 부어줍니다.
펌프질하듯이 그를 다둑입니다.
진정한 위로의 마중물이 내 이웃의 상처를 적셔서
마침내 치유와 회복의 샘물이 솟아나게 합니다.
겸손의 마중물, 허리를 굽혀 내 몸을 낮춥니다.
땅에 입술을 맞추고 일어설 때
지혜의 샘물이 내 영성을 축입니다.
존귀의 물맛으로 나를 일으킵니다.
패킹이 낡아버려 물이 빠져버린 마른 펌프샘같이
낙심한 자신에게 기운내서 용기의 마중물을 부어줍니다.
자꾸만 부어줍니다.
힘들어 힘들어 당최 일어설 것 같지 않던 내가,
우뚝우뚝 성공을 향해 펌프물이 올라옴을 맛봅니다.
불화와 반목으로 바짝 말라 먼지만 이는 땅에
평화의 기도는 아름다운 마중물입니다.
도무지 하나될 거 같지 않던 마른땅에
일치와 협력의 샘물이 솟아
선한 싹을 틔웁니다.
빈 그릇이라 투정하고 원망하던 내 삶에
조건없는 감사의 마중물을 붓습니다.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또 감사의 마중물을 붓습니다.
감사가 내려가 마중하여 올라오는 샘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할 축복의 샘물이 됩니다.
내 목을 다 축이고도반드시 마중물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또 다시 목마른 나를 위해서…
말라버린 삶에 마중물을 부어주는 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삶을 실컷 누리고 향유하되 다른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언제나 준비하는우리이기를 이 아침 소망합니다.

누가 쓴 글인지 모르지만, 내가 이 글을 제일 먼저 접한 순간
떠오른 성경 구절은, 요한 복음 4장 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 37절 에서 39절,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 나올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이다.
또한 묵시록 22장 17절,"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루카복음 19장에,
자캐오처럼 키가 작아 군중이 앞을 가려 예수님을 볼 수 없을 때,
앞질러 달려감과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감이, 마중물 두 바가지가 되어,
지나가시는 예수님 발걸음을 멈추시게 하고,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는 말씀을 끌어낸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중물이 되어,
자캐오로 하여금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는 회개의 샘솟는 물을 끌어낸다.

우리도 회개와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마중물 두 바가지로,
영원히 샘솟는 성령의 생명수를 공급받도록 하자.
<출처: 피앗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