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 1장 2절 - 8절
호세아나 이사야나 모두 동일한 시대의 인물들입니다. 당시의 상황은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호세아가 말씀을 전할 당시는 여로보암2세의 치적으로 인해 국가가 부강하고 세력을 크게 떨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안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모두 강퍅하여 자기보다 약한 자들의 재산을 늑탈하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태평한 시기였지만 속은 위기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기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구분선은 보는 눈의 차이였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다가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태평스러운 때에 무엇이 문제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라고 하였지만 그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들은 도리어 대적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이처럼 축복하여 주셔서 일들이 잘풀리고 형통한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바라고 무수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당시 소위 선지자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행위를 근거로 축복을 선포하고 형통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에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나 미가 같은 선지자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듣는 자들은 그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태평스러운 시대에 무슨 하나님의 심판하심이니 또는 하나님을 알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드리는 예물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닌까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거짓선지자들은 이 패역한 사람들과 똑같은 관점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닌까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 메시지를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케 하셔도 관점과 가치관이 변해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상황에 놓여져 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평화롭고 형통한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위 두가지 경우가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면 배척하고 대적합니다. 왜냐하면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부으시고 영적인분별력을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아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라고 외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라 또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먼저 회복시키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체하여 하나님께 무수한 예배와 예물드리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께서 주실리라고 믿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 사이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나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고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끝나버리면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리시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긴장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가 열립니다.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그렇게 되어진 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자식으로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양육하셨는데 도리어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입술로는 주여 주여라고 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이 주인되지 못하는 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아버지로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그 우상들에게 복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고 권위를 부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서도 우상의 말에는 굴복하고 거짓선지자들의 말에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이스라엘 속에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우리안에 있는 욕심을 가지고 우리를 굴복시킵니다.
하나님은 소를 보라고 하시며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주라고 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것이며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을 모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무너져 내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체하여 하나님께 무수한 예배와 예물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물러 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기다라고 하는 말은 자기가 생각하는데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떠나 자기가 생각나는데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사사기 시대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더 이상 삶의 주로 시인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예배만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것데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망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