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달마와 혜가를 이은 선종 제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은 내용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감동적인 표현들이
가슴을 울려준다. 처음 발심할 때부터 마지막 성불할 때까지 우리가
가져야 할 신심에 대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남기신 사언절구의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게송이고 시문이다.
선이란 참선의 준말로서 곧 부처님의 마음을 가리킨다. 마음의 선정에 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관념을 완전히 벗어나서 언어와 문자, 그리고 생각조차 필요치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생사를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데,
이를 해탈, 열반, 피안, 성불, 견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표현은 하지만,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는 전혀 닿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막힌 경지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은 지극히 상대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음에서
나온 실존의 세계, 즉 나의 몸이 디디고 있는 이 세상 역시 상대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의 것들이다.
그러므로 생로병사의 희로애락의 인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마음이 사라지면 연이어 울고 잇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웃는 일이 생기니 우는 일이 상대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차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이 좋아지고, 발에 흙 안 묻히고 하늘을 날며,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를 돌고
오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한 번 좋으면 한 번은 싫은 감정이 생기는 것이 중생의 분별심이다.
때문에 분별된 마음으로 극락과 지옥, 배부름과 배고품의 윤회를 계속하여 반복할 수밖에 없으므로,
좋고 싫은, 웃고 우는, 나고 죽는, 상대적인 분별된 업식을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이고 중도의 가르침이다.
불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철학과 과학 그리고, 불교 이외의 종교를 모두 상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의 구원으로서 천당에 갈 수 있는 믿음을 강요하고 있으나,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하느님도, 부처님도,
편안함도, 천당도,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설파하셨다.
따라서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만큼의 나쁜 것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젊음을 추구하면 할수록
늙음이 코 앞에 올 수밖에 없으며, 살려고 바둥거릴수록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높이 놀라가면 갈수록
내려오는 길이 멀어지며,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불만의 마음은 깊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업의 대가는 상대적인 분별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분별심을 없애려면 선의 마음이 되어야
하고, 선의 마음이란 상대적인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이므로 고락의 인과도, 생사의 인과도, 모두 분별심에서
나오는 산물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더라도 분별심이 있는 한
결국에는 부질없는 짓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가운데 고통과 괴로움, 성냄과 불만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쳐 선정에 들어가는 길 밖에는 없으니,
나방이 불어 뛰어들 듯, 쓸데없는 욕심에 끄달려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지 말고,
하루빨리 마음을 가다듬어 선의 경지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승찬대사의 신심명은 그 가르침의 정점에 있는 법어라라고 하겠다.
불기 2568(2024)년 정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