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13]東坡시28, 黃精鹿[황정록]
<황정과 사슴 黃精鹿> 소동파
태화서남제기봉 (太華西南第幾峰)
태화산 서남쪽에 어느 봉우리에
낙화유수자중중 (落花流水自重重)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에 겹겹이 떠가네
유인지채황정거(幽人只采黃精去)
은자는 단지 황정만 캐갈 뿐
불견춘산녹양용(不見春山鹿養茸)
봄산 사슴의 자라난 녹용 보지 못하네
화제가 소동파 시 黃精鹿 의 마지막 구절인
'不見春山鹿養茸' 이라 써 있다
귀한 양반의 취향이 느껴지는 詩意圖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소동파는 만고의 진리이지요
태화산 깊은 곳에까지 봄이 왔는데
황정을 많이 캔 은자는 정녕 사슴의 뿔은
보지 못하네
은자(신선)에게는 차를 위한 황정만 필요할뿐
굳이 長壽에 좋다는 녹용은 필요치 않다
그런 뜻인가?
[출처] [안산]단원미술관 단원김홍도와 표암 강세황 진본 전시에 다녀왔어요(5) ♡|작성자 수피아
黃精[황정]=식물(植物)이름. 죽대의 뿌리.
비위(脾胃)와 폐를 보호하고 기침을 멈추는 효능이 있다.
약초로 쓰이고 특히 신선이 식량으로 먹는다고 함.
보양강장제로 오래 먹으면 신선이 되어 장생(長生)한다고 함.
해강 김규진이 빗자루가 아닌 대붓으로
몇 미터가 넘게 '휘호'한 것과는
정반대의 '휘호'를 만난다.
이 글씨는 해강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이
가로가 5cm 남짓 되는 종이 위에 쓴 것이다.
이런 종이는 단책短冊이라 해서 일본인들이 단카短歌나
하이쿠俳句 같은 자기네 시를 적기 위해 따로 만든 것이다.
먹을 엷게 우려 구름을 피우고 금박을 좀 뿌려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소호는 소동파 칠언절구 한 수를
예서로 정밀하게 적어넣는다.
태화산 서남쪽 몇 번째 봉우리던가
떨어지는 꽃잎 흐르는 물이 끝없네
도인은 다만 둥굴레 캐고 돌아갈 뿐
푸른 산에서 사슴 뿔은 못 보았던가
太華西南第幾峰
落花流水自重重
道人只採黃精去
不見靑山鹿養茸
김응원은 흥선대원군의 청지기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출신은 한미했지만 그만큼 권력에 가까웠다.
그는 빼어난 서화로 근대 한국 서화계를 주름잡았고,
특히 난초로는 대원군 이후 당대 제일로 꼽혔다.
그에게서 난을 배운 사람 중에는 일본인도 적지 않았는데,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郎(1858~1927)도 있다. 그래서였는지 소호는 그림 좀 안다는 일본인들에게
인기있는 화가였다. 소호의 글씨, 특히 예서를 보면
그를 서예가로도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나 한다.
***
이상 국립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을 에디팅해서 옮긴다.
이하=문화일보, <박석준의 동의보감 새로읽기>
둥굴레 일종 黃精, 경옥고와 같은 효과
정기신(精氣神)을 보하고 조절해 주는 가장 좋은 약은 경옥고다.
그러나 경옥고를 늘 먹기 어려운 사람에게 경옥고 버금가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황정(黃精)이다.
황정은 '동의보감'에서 정기신을 보하는 약물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물학의 가장 오래된 고전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도 상품(上品)으로 소개되고 있다.
'신농본초경'에서 상품이란 정기(精氣)를 늘려 타고난 수명 자체를 늘려
주는 약이다. 예부터 '구궁(救窮)'으로 불린 것처럼 구황식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서는 황정을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빛이 좋아지며 늙지 않고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된다고 하였다. 경옥고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그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보통은 뿌리를 약으로 쓰지만 단방으로 쓸 때는 줄기와 꽃, 열매까지 모두 쓸 수 있다.
그러나 황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황정을 '죽대 뿌리',
곧 죽대(큰댓잎둥굴레)의 뿌리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옥죽황정이라고 해 옥죽(낚시둥굴레=죽대둥굴레)을 쓰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층층갈고리둥굴레를 쓰고 있다.
황정은 넓게 말하자면 둥굴레다.
그러나 둥굴레의 종류가 매우 많아 어떤 식물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를 분명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식물 자체도 자연이라 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고 수분 과정에서 새로운 종이 생기기도 하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진화하기도 한다.
토양과 같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한다.
둥굴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냥 둥굴레도 있고 층층둥굴레(수레둥굴레), 층층갈고리둥굴레, 왕둥굴레, 산둥굴레, 용둥굴레, 퉁둥굴레, 각시둥굴레(애기둥굴레, 각시둥굴레), 무늬둥굴레 등이 있고 지역에 따라 제주, 목포, 한라둥굴레가 있으며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도 있다. 이렇게 이름이 많은 것은 지역에 따라 둥굴레 자체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옥죽(위유)과 잔대도 무엇인지 헛갈리기 때문에 과연 어느 것이 '동의보감'에서 말한 황정, 곧 죽대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분류의 기준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많이 쓰이는 분류는 린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는 생식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서로 교배를 해서 2대가 나올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 것. 이는 대상을 오로지 생산을 위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동의보감', 나아가 한의학의 분류는 그와 다르다. '동의보감'의 분류는 오로지 대상을 기라는 관점에서 본다.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분류법으로는 서로 전혀 다른 종일지라도 같은 효과를 가져오면 같은 것으로 분류한다.
황정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동의보감'은 기존의 황정(대개는 중국산)을 우리 것으로 바꿨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에서 쓰고 있는 황정은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황정과 같은 효과를 내는 죽대,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는 죽대가 선정된 것이다. 향약이 된 것이다.
이렇게 중국 약재를 향약화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나 성분 분석이 아니라 실제 한의학의 임상 경험에 바탕을 둬야 한다. 병의 원인이 다르고 증상이 다르고 체질이 다른 모든 경우에 실제로 써 봐야 한다. 이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 작업이 고려부터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으며 이를 집대성한 것이 바로 '동의보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