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둔황 막고굴(Mogao Caves , 敦煌 莫高窟)


둔황은 실크로드로 가는 관문으로 당나라 때까지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던 오아시스 도시였다. 당시 번영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세계 최대 석굴사원 막고굴이다. 16세기 대항해시대 해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실크로드가 문명의 교역 창구로서 역할이 약화되고 둔황의 석굴사원도 점차 퇴색되었다. 막고굴은 둔황 시가지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명사산 기슭에 있다. 산 비탈에 암벽에 벌집처럼 1000여 개의 석굴이 뚫려 있는데, 이 때문에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막고굴은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불교가 둔황에서 꽃피운 결과물로, 1000여 년 동안 수많은 승려·화가·석공·도공들이 드나들며 쌓아간 종교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석굴사원 가운데 발굴된 것은 492개인데 용도에 따라 예배굴과 참선굴로 나뉜다. 예배굴은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견줘 승려가 거처하면서 참선하는 참선굴은 감실과 측실이 딸려 있다. 어떤 석굴이든 벽면은 모두 채색 벽화로 덮여 있으며, 채색된 조각상이 놓여 있다. 벽화는 건식 프레스코 화법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으며, 석가 일대기나 극락과 해탈을 열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벽화를 한 줄로 전시 한다면 그길이가 54Km 에 이른다고 한다.총 2400여 구가 발견된 채색 조각상은 불상·보살상·제자상 등으로 과장된 색채가 특징이다.
둔황 석굴사원에서 석굴의 조각 외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발견된 ‘둔황 문헌’이다. 1900년 제17호 굴에서 경전·문서·자수 등이 5만 점 이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방대하여 이를 연구하는 ‘둔황학’이 탄생할 정도였다. 그러나 발견자 왕원록이 외국 조사대에게 헐값에 팔아 넘겨서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은 6천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라시대의 고승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도 둔황에서 발견되어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월아천(月牙泉)은 명사산 아래 있는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다. 천 년 넘게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으며 둔황이 메마른 사막으로 변하자 이를 슬퍼한 선녀가 흘린 눈물이 오아시스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인근의 댐 건설과 물 소비 증가로 크기가 3분의 1로 줄고 수량도 고갈되고 있다. 명사산(鳴砂山)은 둔황에서 부는 바람에 모래가 흘러내릴 때마다 나는 소리 때문에 '모래가 운다'는 '명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둔황 막고굴 [Mogao Caves, 敦煌 莫高窟] (두산백과)
여러 차례 역사적 사건을 겪은 돈황은 청대에 이르러 시가지가 새로 조성되었는데, 현재 볼 수 있는 시가지의 모습은 청대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돈황(敦煌)시는 한대의 돈황군과 정확히 같은 장소는 아닌 듯하다. 사막에 형성된 마을은 시대에 따라 자주 옮겨 다녔는데, 전란이나 재해로 마을이 황폐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대의 돈황은 주변 어딘가의 모래에 묻혀있을지도 모른다. 돈황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돈황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막고굴(莫高窟) 때문이다.
돈황은 하서(河西) 회랑지대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감숙성 제일 서쪽에 있는 현급(縣級)의 시이다. 돈황은 또한 동쪽으로는 안서현(安西縣)에 다다르고 서쪽으로는 낙강현(諾羌縣)에 닿아 있다. 또한 남쪽으로는 숙북(肅北) 몽고족(蒙古族) 자치현(自治縣), 아흐새(阿克塞) 하사흐족(哈薩克族) 자치현과 이웃해 있으며, 북으로는 신강 하미(哈密)시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직선거리로 본다면 돈황은 북경에서 2천 ㎞, 서안에서 1,300여 ㎞ 떨어져 있으며, 동경 92.30°~95.30°, 북위 39.35°~41.35° 사이에 위치해 있고, 동서의 길이가 60~240㎞이며 남북의 폭은 90~190㎞이다.
서남풍과 동북풍이 많이 불고, 기온은 7월에서 8월에 최고 44.1℃ 정도를 기록하며 12월에서 1월 사이에는 최저 ‒24℃까지 내려간다. 또 풍사(風沙)현상이 심하여 서남풍이 불 때면 지척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돈황의 북쪽으로는 소륵하(疎勒河), 남으로는 당하(黨河)가 흐르며, 그 부근에는 기련(祁連)산맥이 있고 남쪽으로 삼위산(三危山), 그 서남쪽으로 명사산(鳴沙山)이 있다.
돈황의 총면적은 31,200k㎡로서 성의 총면적의 7%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숙북현과 아흐새 두 현보다 조금 작다. 평방킬로미터 당 평균 3.39인이 살고 있고, 한 사람 당 토지를 평균 443무씩 차지하여, 감숙성에서는 면적이 넓고 인가가 드문 지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돈황의 면적은 매우 크지만 오아시스 면적은 단 211만 무로 총면적의 100분의 4.48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사막과 산지이다. 그래서 돈황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칭하기도 한다.
주천(酒泉)에서 감신공로를 타고 차를 달리면 양쪽으로 황량한 고비사막이 보이다가 이윽고 녹음이 펼쳐진 오아시스 마을 안서(安西)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방향을 바꿔 돈황으로 가는 안돈공로로 들어선 후 110㎞ 정도 더 가면 돈황 시내에 도착한다. 막고굴은 돈황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는 약 30분 거리에 있으며, 위산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숲 속에 있다. 굴 주변으로 가느다란 시냇물이 흐르며 주변은 온통 황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막고굴로 바로 가려면 돈황 시내까지 갈 필요가 없는 지름길이 있다. 이 지름길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명사산이 보이는데, 명사산과 삼위산 사이의 계곡 서쪽에 길이가 1㎞에 달하는 절벽의 남북으로 1.8㎞에 걸쳐 엄청난 석굴사원이 있다. 돈황 석굴은 막고굴을 중심으로 한 옛 돈황군 관내의 모든 석굴을 말하는데, 막고굴, 유림굴, 서천불동, 동천불동과 다섯 개의 묘석굴(廟石窟) 등 총 550여 개의 동굴과 약 5만㎡의 벽화가 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석굴 중 막고굴의 규모가 가장 크고 내용도 가장 풍부하다.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석굴 사원은 전진(前秦) 건원(建元) 2년(366)에 낙준(樂僔) 법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 시기는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해지던 무렵으로 지금부터 약 1,600여 년 전이다. 그로부터 14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이곳에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석공, 도공, 목공, 시주들이 드나들면서 하나둘씩 굴을 팠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굴은 약 천 개가량 된다. 막고굴의 백미인 석굴이 대부분 당나라 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풍성했던 당나라 때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막고굴이란 이름의 유래인 '막고리'는 당대 사주 13향의 하나로 '막고향'에서 관할하던 하나의 마을 이름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돈황 시내에서 동남쪽인 막고굴로 가는 길의 7~8㎞쯤에 불야묘(佛爺廟)가 있는데, 묘 동쪽은 사막이었다고 한다. 그 사막의 지세가 불야묘보다 훨씬 높고 사막 위에 황폐해진 무덤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막고리의 벌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은둔하던 처사들이 막고산에서 팠던 굴이 아마도 지금의 막고굴일 것이다. 이미 돈황에 막고향과 막고리가 있었기 때문에 부근의 벌판과 산도 막고원, 막고산으로 불렀을 것이며, 이곳에 팠던 석굴도 '막고굴'이라고 부른 것이다. 따라서 '막고'는 오아시스보다 지세가 높은 고비사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막고굴이 명사산의 깎아지른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명사산은 주위보다 지세가 높은데, 사막의 '막(漠)'자와 막고굴의 '막(莫)'자는 고어에서는 통용될 수 있다며 사막의 높은 곳에 판 동굴이기 때문에 막고굴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 또 혹자는 처음 굴을 판 낙준(樂僔) 법사의 도가 뛰어나 그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가 판 석굴을 막고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혹은 '막고'는 돌궐어에서 사막이란 뜻을 가진 말을 음역한 것으로, 막고굴은 바로 사막에 판 동굴을 지칭한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석굴 사원은 크고 작은 것을 전부 합해 492개인데, 이것을 모두 막고굴이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막고굴을 보통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부르는데, 전진 건원 2년(366)에 창건된 동굴식 법당이 당대에 이미 천여 개에 달하여 천불동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 '천불동'이란 이름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다.
'천불동'은 불상이 새겨진 절벽동굴의 통칭으로서 산서성 대동의 운강(雲崗), 하남성 낙양의 용문(龍門), 감숙성 천수의 맥적산(麥積山), 신강의 투루판, 선선(鄯善) 등에도 모두 '천불동'이란 명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직 돈황 한 곳에만 있는 것은 서천불동과 동천불동 등이다. 그러나 스타인이 돈황에서 약탈해간 예술품을 책으로 펴낼 때, 그 책이름을 『천불동』이라고 한 후부터 '천불동'이란 이름은 막고굴만을 지칭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돈황 막고굴 가는 길 (돈황-실크로드의 관문, 2006. 6. 30.,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