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바라간 초대전
한국과 멕시코의 만남
루이스 바라간은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고 또한 1948년부터 그가 살았던 자택(까사 루이스 바라간)이 2004년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글 | Dr. Daniel Garza Usabiaga (전시 수석 큐레이터)
[2009. 11. 12 - 12. 4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서울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5-1 공평빌딩 T.02-3210-0071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gpartspace.com
멕시코 외무성, 주한 멕시코 대사관, 멕시코 시티의 문화 사무국, 문화유산 조정 사무실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전시를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11월 12일부터 12월 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인 루이스 바라간은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고 또한 1948년부터 그가 살았던 자택(까사 루이스 바라간)이 2004년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전시회는 총 273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각품과 오리지널 페인텅, 사진, 비디오 그 외 다수의 문서들이 전시되며, 루이스 바라간과 연관이 있는 Mathias Goeritz, Chucho Reyes, Pedro Coronel, Le Corbusier, Ferdinand Bac의 두드러진 특징들도 볼 수 있다.


1. 루이스 바라간
루이스 바라간은 1902년 멕시코 할리스코 주의 수도인 Guadalajara에서 지주계급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멕시코 현대 건축계의 대부와도 같은 인물로 3세대에 걸친 멕시코 미니멀리스트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검소한 금욕주의자로서 수도자와 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루이스 바라간은 랜드스케입 건축의 세련된 정제 미와 시(詩)적인 멋을 가진 건축가이다. 바라간이 설계한 주택이나 정원은 언제나 벽으로 둘러싸인 고요함의 공간을 갖고 있으며, 그의 건축 작품은 이 정적 속에서 한결 그의 본질을 드러 내놓고 있다. 바라간이 디자인한 분수나 광장은 마치 훌륭한 건축 무대인 것처럼 보인다. 바라간의 건축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은 고전적이면서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바라간의 건축 적인 요소는 그의 조국 멕시코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문화적인 면과 종교적인 전통에서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2. 루이스 바라간이 남긴 말
바라간의 나이 74세에, 그의 건축을 다룬 책이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바라간의 건축과 랜드스케입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면 바라간의 자택 건물과 엘 페드레갈(El Pedregal)을 들 수 있다. 바라간의 나이 40대에 설계한 자신의 주택은 그가 처음으로 그의 건축 적인 사고를 건축물을 통해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1927년 이 후로 건축 활동을 해 온 바라간의 건축 세계는 초창기에 르 꼬르뷔지에와 유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래 내용은 그가 말한 건축과 랜드스케입 중에 부분 발췌한 것이다.
“나의 집은 나의 피난처이자, 건축의 감성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입니다. 차가운 기능의 편리함을 구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감성적인 건축’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며, 건축은 그것의 미(美)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건축 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기술적인 해결 방안들이 많이 있다고 가정 할 때에, 사용자에게 미(美)의 메세지와 감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바로 그것이 건축일 것입니다.” “어떤 건축 작품이라도 평온함(serenity)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벽이 가지고 있는 보호 기능을 유리창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 벽으로 바꾸는 실수를 해오고 있습니다.” “나는 건축가가 많은 주택을 설계하는 만큼 정원도 설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술과 다른 정신적인 가치를 향한 미(美)적 기호나 센스, 그리고 멋을 자극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3.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 세계
바라간의 건축 배경을 보면 그는 토목 기사로부터 출발하여, 거의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바라간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예술을 공부하는 그의 친구들, 그리고 건축에 관하여 글쓰는 사람들을 통하여 건축을 배웠다. 그 중에 바라간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졔수스 츄쵸 레이예스(Jesus “Chucho” Reyes)이다. 레이예스는 소박하고 원시적인 그림을 주로 그리는 화가인데, 인생과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바라간과 같이 공유하게 된다. 특히, Guadalajara(바라간의 고향)에 있는 인디언 토속 마을의 소박한 주택에 바라간과 레이예스는 똑같이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라간의 40대 후반에 만난 마티아스 고에리츠(Mathias Goeritz)도 바라간에게 중요한 사람이다. 고에리츠는 독일 출신의 조각가로서 멕시코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고에리츠는 바라간에게 철학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그 외에 바라간은 사진 작가 로사 코바루비아스(Rosa Covarrubias)와 학자 미구엘 코바루비아스(Miguel Covarrubias)의 강한 개성을 좋아했다고 회고한다. 코바루비아스 부부는 비공식적인 멕시코 문화의 큐레이터였다. 하지만, 바라간에게 결정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멕시코 마을이나 농장 그리고 수도원의 대중적인 건축이었다.

바라간의 집안은 멕시코의 할리스코 주에 여러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바라간은 시골 농장에서 말을 타고 놀았으며, 축제도 구경하고, 재래 시장도 많이 놀러가곤 했다. 바라간이 멕시코 시티를 처음 방문한 것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였다. 그 때가 바라간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유럽 여행동안에 바라간은 페르디난드 바크(Ferdinand Bac)의 글을 읽게 된다. 바크는 프랑스의 지식 있는 화가이자 랜드스케입 건축가였다. 바크가 바라간에게 미친 영향은 형태뿐만이 아니라 철학적이며 시적인 이미지를 바라간에게 심어주었으며, 이것은 바라간에게 있어 디자인의 주요한 부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 중의 하나는 정원이 즐거움과 친근한 장소이며 명상할 수 있는 신비하고 매력 있는 곳으로 바라간에게 남아 있게된다. 1924년 바라간은 스페인의 알함브라 정원을 방문하여 바라간은 알함브라 정원이 가지고 있는 분수, 물, 수로, 건축적인 공간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 그는 알함브라에서 받은 느낌을 그의 건축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게 한다. 이슬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의 구획과 공간 구성에 영향을 받은 바라간은 자신의 건축 어휘로 다시 구현하며 바라간이 받은 느낌을 벽으로 공간을 한정하는 것으로 발전시키며, 물이 흐르는 소리를 좋아한 그의 감성 을 구현하게 된다. 바라간 작품에 미친 또 다른 요인은 북 아프리카에서 영향받은 무어리쉬 건축이다. 특히, 모로코에서 받은 영향은 바라간에게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1951년까지 바라간은 아프리카를 여행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음 유럽 여행을 했을 때 구입한 여행 책자나 건축 서적을 통하여 모로코의 주택들과 이슬람 사원들의 이미 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바라간이 무어리쉬 건축에 대해 가진 매력은 그가 초창기에 Guadalajara에 설계한 주택들에 반영되어 있었으며, 바라간은 기품 있는 프랑스 바로크 보다 이태리 바로크를 더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정원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친밀함은 바라간에게 아주 강한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바라간이 설계한 정원이나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는(open-enclosure) 공간은 에로틱하면서 추상적인 특색은 한 장소를 환상적인 꿈같거나 서사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마음과 감성의 즐거움을 위한 장소이다.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라간은 Guadalajara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 운동장을 제외하곤, 도심 밀집 지역 같은 곳에 큰 공공 광장을 설계한 적이 없다. 그에게는 멕시코 메인 광장이라고 불리우는 엘 조칼로(El Zocalo) 광장을 설계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록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계획안은 지상 광장으로부터 격리된 반지하 공간으로서 그곳엔 분수로 둘러싸여 있는 안(案)이었다. 그리고 그 위의 광장에는 바닥 그리드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함이 있는 계획안이었다.

바라간은 모던 멕시코의 자연적인 조건과 문화적인 여건의 맥락 안에서 인간의 영원한 갈망을 표현하는 건축 적인 어휘를 창조하는데 항상 노력하였고, 바라간은 통속적인 멕시코 적인 형태의 사용을 피하고 있는 그의 건축 특색은 멕시코의 찬란한 건축 전통의 연장선에서 기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