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긴 추석 연휴 끝물입니다.
연후 시작 전부터 시작된 때 아닌 우기(?)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두 눈을 지릅뜨고 빗발무늬'는 이미 잦아든 창가에 서서 외롭게 떠있는 조도(鳥島)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검푸른 파도 속에 몸을 맡긴 채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고 있군요.
어제 축구 국대의 대 브라질 전 경기 중에도 굵은 빗줄기가 내내 함께 했더랬죠.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브라질 선수들이 펼친 아름다운 퍼포먼스에 마눌과 함께 찬사를 보냈습니다. 내리꽂는 빗줄기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준 송곳 패스와 조직력, 개인기, 그리고 스피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더군요. 과연 '브라질이 브라질 했습니다.'
캡틴 손흥민과 비니시우스 주니어(브라질). 이날 비니시우스의 컨디션과 기량은 최고조였다. 빠르고 경쾌했으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TV에서는 조용필 콘서트 <이 순간을 영원히> 프리퀄이 재방송되고 있습니다.
연휴 내내 온오프 미디어의 화제를 장악한 국민 이벤트였습니다. 마눌과 함께 내내 지켜보았더랬습니다.
이 콘서트에서도 또한, '조용필이 조용필' 했죠.'
프리퀄에 출연한 '위대한 탄생'의 멤버 2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밴드의 리더 격인 리드 기타 최희선.
1993년 이래 32년째 조용필 형님과 고락을 함께 하는 중이라죠.
연배가 궁금하여 요래조래 서치 해보니 대략 소생과 엇비슷한 듯합니다.
상(喪) 중에도 상복을 잠시 벗고 공연을 하기도 한 찐 멤버입니다.
조용필을 존경하는 바로는 그가 늘 미래를 고민한다는 거라더군요.
한 번도 '라때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답니다.
<바운스>라는 역대급 히트곡이 대세몰이를 하는 중에도 그는 앞으로 선보여야 할 음악을 함께 고민했다고 합니다.
베이스 기타 송홍섭.
1980년 위대한 탄생 결성 시부터 함께 한 창립 멤버랍니다.
1954년 생이니 그도 이미 70이 넘은 시니어입니다. 백발이 성성합니다.
'용필 형님'의 부름을 받자 만사 제쳐두고 밴드를 결성한 '위대한' 적통자입니다.
지금까지 그 숱한 공연에서 단 한 번도 기타를 내려놓은 적이 없는.
재능 이전에 사람 됨됨이와 리더십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조용필'입니다.
그의 건재는 동시대를 사는대중, 아니 국민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파격, 혁신, 창의성의 대중음악인으로 우뚝 선 이로는 가수이자 배우, 방송인인 김창완도 있죠.
두 아우(김창훈, 김창익)와 함께 비교불가의 록밴드 <산울림>을 결성,
<아니 벌써>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해가 1977년.
같은 해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나 어떡해>(샌드 페블즈)의 실질적인 주인공도 산울림(특히 김창훈)이었죠.
이후 화려했던 음악활동과 대중가요사적 가치와 위치는 설명이 불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탄생>과 더불어 가요사 전반의 양대 산맥으로 꼽습니다.
산울림이 화려하게 데뷔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조용필이 대마초 사건(후일 무죄로 판명)으로
가수로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던 시기와 동일합니다.
산울림 1집 <아니벌써>(1977)와 3형제(가운데가 김창완).
최근 도서관 나들이를 재개했습니다. 이유야 물론 읽고 싶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만, 늘 그러했듯이,
이것이 '꼬리잇기' 형식의 독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죠. 찾고자 하는 책의 위치를 확인한 후 서고를 둘러보다 눈에 띄는 다른 책이 있으면 일단 뽑습니다.
목차를 일별 하거나 훑어보는 중에 관심이 가는 다른 책(또는 저자)을 발견하면 또 이를 찾습니다.
이러는 중에 잊고 있던 책이나 저자들을 반갑게 접합니다.
인터뷰 형식의 비교적 가벼운 책인 <김언호의 서재탐험>은 그렇게 소생 손에 잡혔고,
그 속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의 서재가 눈에 들어오더니 이문구의 <관촌수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문구는 말수가 적었다고. <관촌수필>에 대해 그가 기껏 내뱉은 말이, “성실하게 살다간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유….”, “하도 험한 세상을 봐왔으니까…” 정도였다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문구를 이제야 이렇게 읽게 되는군요.
구사하는 어휘(특히 충청도 사투리가)와 문체, 문장이 어떠어떠하다며 이런저런 모임에서 아는 체는 무지해댔던,
그러면서도 정작 읽어본 적은 없는 바로 그 <관촌수필>입니다.
소생 또래의 연배 중에는 이런 부끄러움을 함께하는 이들이 많을(아마도) 겝니다.
둘러보니 그 1편 격인 <일락서산(日落西山)>의 발표 연대는 1972년(5월, 현대문학)입니다.
우연인지 '10월 유신'(1972년 10월)이 선포된 해와 같습니다.
소생 초딩 6년 때이기도 하죠.
근대화와 도시화, 산업화가 본격 궤도를 타던 시기입니다.
모르긴 모르겠으되 지금의 (고딩)아이들 국어교과서에는 필경 작가의 이름 석자와 작품명이 게재되었을... 성싶을 정도의 기념비적 작품이라죠. 마지막 8편인 <월곡후야(月谷後夜)>의 발표 시기는 1977년(1월, 월간중앙).
작가 이문구는 5년 여에 걸쳐 고향인 '관촌'에서 8편의 중. 단편 귀촌(귀향) 체험소설을 완성했던 겁니다.
진득하게 그리고 차분히 잘 읽어 보겠습니다.
덧:
. 이문구 선생은 2003년 2월에 작고했습니다. 향년 예순둘. 지금의 저보다도 세 해나 일찍 세상과 작별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