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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지효(反哺之孝)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봉양함을 이르는 말이다.
反 : 돌이킬 반(又/2)
哺 : 먹일 포(口/7)
之 : 어조사 지(丿/3)
孝 : 효도 효(子/4)
(유의어)
반의지희(斑衣之戱)
반포보은(反哺報恩)
오유반포지효(烏有反哺之孝)
오조사정(烏鳥私情)
원걸종양(願乞終養)
자오반포(慈烏反哺)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혼정신성(昏定晨省)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어릴 때 길러 준 공에 보답하기 위해서 늙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반포(反哺)라고 하고,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까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말이다.
이밀은 진(晉)나라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라고 하였다.
까치나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거의 같다. 보통 까치는 길조(吉鳥), 까마귀는 흉조(凶鳥)라고 인식한다.
까마귀는 음침한 울음소리와 검은 색깔로 멀리 하는 새이며,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또한 까마귀는 시체(屍體)를 먹는 불결한 속성이 있어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불길(不吉)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있다.
명(明)나라 말기의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 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한다. 곧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反哺之孝)는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반의지희(斑衣之戱), 반의희(斑衣戱), 채의이오친(綵衣以娛親)이 있다.
우리들은 현대의 풍요로운 물질문명 세계를 살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속에서 풍요로운 물질의 크기나 속도 등을 행복의 시금석(試金石)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미 문화지체(文化遲滯)라는 말로 대변하듯이, 인간성 상실과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지고 경로효친, 미풍양속의 쇠퇴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음도 눈여겨 볼 일이다.
효(孝)란 무엇인가?
효의 어원을 잠시 살펴보자면, 노(老)의 획 줄임에다가 자(子)를 합친 글자로서 아들이 늙은이를 업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이처럼 효는 어버이와 자녀간에 형성되는 원초적인 관계를 규율하는 질서로서, 곧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사회상은 이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더욱이 노인학대 상담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닌가.
한낱 짐승에 불과한 까마귀도 어미가 기력이 다하면 극진한 효로써 되먹이거늘, 어찌 인간이 되어서 낳고 기른 정을 모른 체 한단 말인가.
아무리 인간성이 상실되고 그에 따라 효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제 부모를 업신여기고 학대한다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현대사회는 급속하게 고령화로 치닫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나이 든 사람들은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수는 감소하여 부양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 뿌리없는 나무없고 근원없는 물은 없듯이, 부모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그러기에 효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즉, 효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자식된 자의 당연한 도리이다.
덧붙여 요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지금은 비록 젊고 힘이 넘치는 그대들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늙고 힘없는 부모님처럼 노인의 자리에 선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자오야제(慈烏夜啼)
효성스런 까마귀 우짖는 밤에
- 백거이(白居易) -
慈烏失其母(자오실기모)
啞啞吐哀音(아아토애음)
효성스런 까마귀 그 어미를 잃고, 까악,까악 섧게 울고 있네
晝夜不飛去(주야불비거)
經年守故林(경년수고림)
밤낮없이 날아가지 않고, 일년이 넘도록 옛 숲을 지키네
夜夜夜半啼(야야야반제)
聞者爲沾襟(문자위첨금)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니, 듣는 이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게 하네
聲中如告訴(성중여고소)
未盡反哺心(미진반포심)
우는 소리 흡사 호소하는 듯, 키워 준 은혜를 다 갚지 못했음을
百鳥豈無母(백조기무모)
爾獨哀怨深(이독애원심)
어찌 어미없는 새들이 있으랴? 그런데도 그 슬퍼함이 너 홀로 지극하구나
應是母慈重(응시모자중)
使爾悲不任(사이비불임)
어미의 사랑이 얼마나 두터워, 너로 하여금 슬픔을 이기지 못하게 하는가?
昔有吳起者(석유오기자)
母歿喪不臨(모몰상불림)
옛날 오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친이 돌아가도 장사 지내러 오지 않았다네.
哀哉若此輩(애재약차배)
其心不如禽(기심불여금)
슬프다! 이런 무리들은, 그 마음이 새 만도 못하구나.
慈烏彼慈烏(자오피자오)
鳥中之曾參(조중지증삼)
효조(孝鳥)여! 새 중에서도 증삼같은 효자로구나.
반포오(反哺烏)
반포지효의 까마귀
- 박장원(朴長遠) -
士有親在堂(사유친재당)
貧無甘旨具(빈무감지구)
선비가 집에서 어버이를 모시면서, 가난하여 기름진 음식을 못 해 드리는구나.
微禽亦感人(미금역감인)
淚落林哺烏(누락임포오)
미물인 새도 또한 인간을 감동시키니, 숲속의 까마귀 효성보면 눈물이 절로 난다
명색이 선비가 되어 양친이 살아 계시는데도, 맛있는 고기반찬 제대로 못 해 드리니 실로 가난이 유죄가 아닐 수 없다.
미물인 까마귀도 어렸을 때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준 은혜를 잊지 않고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하는데, 인간이 되어서 새보다 못하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숲속의 까마귀를 바라다 보니 인간의 도리를 다 못 한 내가 눈물이 절로 난다.
이 시(詩)는, 하잘것없는 미물인 까마귀도 저토록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으로서 효심이 짐승보다 못 해서야 되겠는가 하면서 까마귀의 효성을 주제로 하여 쓴 것이다.
이 시의 작자 박장원(朴長遠)은 뛰어난 글 솜씨로 효심을 노래하였고, 자신 또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모셔, 사후에 임금으로부터 문효(文孝)라는 시호(詩號)를 받았다.
교훈가(敎訓歌)
- 박효관(朴孝寬) -
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흉(凶)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누가 가마귀를 검고 흉하다 하였던가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보다 못한 것을 못내 슬퍼하노라
이는 까마귀의 반포(反哺)의 효를 인간은 본받아야 한다고 노래한 시조이다.
박효관(朴孝寬)은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이다. 자(字)는 경화(景華), 호(號)는 운애(雲崖)이다.
1876년(고종 13) 제자 안민영(安玟英)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 그 때까지의 가곡을 총정리하고, 또한 가인(歌人)의 귀감이 될 가론(歌論)을 확립하였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총애를 받아 그로부터 운애(雲崖)라는 호(號)를 지어 받고, 풍류 남녀들과 더불어 승평계(昇平契)를 만들었다.
시조 13수가 전하며, 문학과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의 가곡창은 하준권(河俊權), 하규일(河圭一)을 거쳐 오늘에 전해진다.
조홍시가(早紅柿歌)
- 박인로(朴仁老) -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난다
유자(柚子)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하나이다
소반 위에 놓인 홍시가 매우 곱게도 보인다.
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몸에 품고 돌아갈 만도 하다마는,
(품속에) 품어가도 반가워해 주실 분이 없으므로 그것으로 인하여 서러워합니다.
조홍시가(早紅柿歌)라 이름하는 이 노래는, 지은이가 선조 34년 9월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찾아가 조흥시(早紅柿)의 대접을 받았을 때, 회귤(懷橘) 고사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버이를 슬퍼하여 지은 효도의 노래이다.
회귤의 고사란 삼국시대 오군(吳郡) 사람 육적(陸績)이 여섯 살 때에 원술(袁術)을 찾아갔더니, 원술이 귤 세개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육적이 그것을 품속에 품었다가 일어설 때에 품었던 귤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원술이 그 연유를 물은즉, 어머님께 드리려고 품었다고 대답하더라는 고사인데, 회귤의 고사는 곧 효도를 뜻한다.
작자는 퇴관(退官)하여 은일 생활을 존경하여 그를 자주 찾았다. 반가운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소반(小盤)에 받쳐 내놓은 조흥감을 보자, 불현듯 회귤 고사가 생각나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고 생각하는 애절한 심정이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작자의 어버이에 대한 효성심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마디로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연상하게 하는 노래이다.
[참고 1]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10가지 효도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이다.
① 아기를 배서 보호해 주시는 은혜
② 아기를 낳을 때 산고(産苦)를 겪으시는 은혜
③ 자녀를 낳고 온갖 시름을 잊으시는 은혜
④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자녀에게 먹이시는 은혜
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는 은혜
⑥ 젖을 먹여서 길러 주시는 은혜
⑦ 옷을 세탁하여 입히시는 은혜
⑧ 멀리 집을 떠나 있을 때도 앓을세라 그릇될세라 염려하시는 은혜
⑨ 자녀를 위해서라면 온갖 고생을 하시는 은혜
⑩ 자라서도 끝까지 지켜 보시며 불쌍하게 여겨 주시는 은혜
[참고 2]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예언을 한다고 믿고 있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사금갑조(射琴匣條)에 이르기를, 488년(신라 소지왕 10)에 까마귀가 왕을 인도하여 궁주(宮主)와 내전에서 향을 사르는 중(僧)이 간통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 처단하였다.
이로부터 까마귀 날과 까마귀 밥의 관습이 생겼으며 정월 대보름 행사는 까마귀가 궁중의 변괴를 예고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또 삼족오(三足烏; 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해서 태양의 정기가 뭉쳐서 생긴 신비한 새로도 알려졌다.
연오랑세오녀설화(延烏郞細烏女說話)도 태양신화(太陽神話)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 있다.
제주도신화(濟州道神話) 차사본 풀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강림이 까마귀를 시켜 인간 세계에 전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이르러 이것을 잃어버린 까마귀가 자기 멋대로 외쳐댔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어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죽어갔다. 이 때부터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검은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여기지만, 붉은색이나 금색으로 그린 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뜻한다.
한 해의 운세를 보는 데 까마귀를 사용한 예도 있다. 아랍인은 까마귀를 예언의 아버지라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길조(吉鳥), 왼쪽으로 나는 것을 흉조(凶鳥)로 믿었다.
유럽에서도 까마귀는 일반적으로 불길한 새로 여겨지고 있으나,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신 오딘의 상징으로 지혜와 기억을 상징한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하는 악마의 새이다.
북태평양 지역에서는 까마귀가 신화적 존재로 여겨졌다. 시베리아의 투크치족, 코랴크족과 북아메리카의 북서 태평양 연안 아메리카인디언들 사이에서는, 까마귀는 창세신(創世神)이 변한 모습이라 하여 창세신화의 주역으로 삼는다.
▶️ 反(돌이킬 반/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은 ❶회의문자로 仮(반)과 동자(同字)이다. 又(우)는 손을, 厂(엄)은 언덕의 뜻으로 뒤엎는다 또는 반대(反對)를 뜻한다. 비탈진 지형은 정상이 아니므로 반대를 의미한다. 反(반)은 위에서 덮는데 대하여 밑으로부터도 뒤덮는 일, 그 양쪽을 합하면 반복이란 말이 된다. 또 손바닥을 뒤집다, 배반하다, 돌아오다, 돌아보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反자는 ‘되돌아오다’나 ‘뒤집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反자는 厂(기슭 엄)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厂자는 산기슭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추상적인 물건으로 응용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反자를 보면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어떠한 물건을 손으로 뒤집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反자는 ‘뒤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배반하다’나 ‘반역하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反(반)은 변증법(辨證法)의 정(正), 반(反), 합(合)의 세 가지 계기 가운데에서 부정(否定)을 뜻하는 계기나 반립(反立)의 뜻으로 ①돌이키다 ②돌아오다, 되돌아가다 ③되풀이하다, 반복하다 ④뒤집다, 뒤엎다 ⑤배반하다 ⑥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어긋나다 ⑦반대하다 ⑧물러나다, 후퇴하다 ⑨보복하다, 앙갚음하다 ⑩되돌아보다, 반성하다 ⑪꾸짖다, 나무라다 ⑫보답하다, 되갚음하다 ⑬바꾸다, 고치다 ⑭죄를 가벼이 하다 ⑮휘다 ⑯구르다, 뒤척이다 ⑰기울다 ⑱튀기다 ⑲생각하다, 유추(類推)하다 ⑳대답하다 ㉑기인(起因)하다 ㉒모반(謀叛), 반역(反逆) ㉓번(횟수를 세는 단위) ㉔반대로, 도리어 ㉕더한층, 더욱더 그리고 ⓐ어렵다, 곤란하다(번) 그리고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판) ㉡팔다(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정(正), 도울 찬(贊)이다. 용례로는 공산주의를 반대함을 반공(反共), 반대로 움직임을 반동(反動),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두 사물이 맞서 있는 상태 또는 어떤 의견이나 제안 등에 찬성하지 않음을 반대(反對), 반사로 비친 그림자를 반영(反影), 반사하여 비침을 반영(反映),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한 가지 일을 되풀이 함을 반복(反復), 자극이나 작용에 대응하여 일어남을 반응(反應), 전쟁을 반대함을 반전(反戰), 쳐들어 오는 적을 되받아 공격함을 반격(反擊), 상대방에 반대하여 대들음을 반항(反抗),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표시를 반기(反旗), 서로 미워함을 반목(反目),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반성(反省), 반대되는 뜻을 반의(反意),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반객위주(反客爲主),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반구제기(反求諸己),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눈으로 봄을 반목질시(反目嫉視), 언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거나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반복무상(反覆無常), 도리어 처음 만 같지 못함이라는 반불여초(反不如初),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반수발사(反首拔舍),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반수불수(反水不收) 등에 쓰인다.
▶️ 哺(먹일 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甫(보, 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哺(포)는 ①먹다 ②먹이다, 먹여 기르다 ③씹어 먹다 ④음식물(飮食物) ⑤어린아이의 병명(病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먹을 여(茹), 저녁밥 포(餔)이다. 용례로는 제 몸의 젖으로 새끼를 먹여 기름을 포유(哺乳), 음식을 씹거나 마심을 포철(哺餟), 동물이 새끼를 먹이어 기름을 포육(哺育), 신시로 지금의 오후 4시를 이르는 말을 포시(哺時), 입에 든 것을 토함을 토포(吐哺), 음식을 배불리 먹고 배들 두드림을 고포(鼓哺), 자손이 어버이를 봉양함을 앙포(仰哺),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뜻으로 부모의 은혜를 갚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반포(反哺),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봉양함을 이르는 말을 반포지효(反哺之孝),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반포보은(反哺報恩), 입을 벌리고 있으면서 먹여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개구망포(開口望哺), 음식을 먹으며 배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천하가 태평하여 즐거운 모양을 이르는 말을 함포고복(含哺鼓腹), 입 속에 있는 밥을 뱉고 머리카락을 움켜쥔다는 뜻으로 식사 때나 머리를 감을 때에 손님이 오면 황급히 나가서 맞이함을 이르는 말을 토포악발(吐哺握髮), 머리털을 잡고 먹은 것을 토해 낸다는 뜻으로 인재를 구하려고 애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악발토포(握髮吐哺)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孝(효도 효)는 ❶회의문자로 耂(로; 노인)와 子(자; 아들)의 합자(合字)이다. 아들이 노인을 잘 봉양하는 뜻에서 부모나 조상을 잘 섬김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孝자는 ‘효도’나 ‘부모를 섬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孝자는 耂(늙을 노)자와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子자가 耂자 아래에 있으니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아들이 노인을 등에 업은 것과도 같다. 그런데 금문에 나온 孝자를 보면 백발이 성한 노인과 어린아이가 함께 노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어른을 모시고 함께하는 것이 孝의 근본이라는 것을 말하는 글자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孝(효)는 (1)부모를 잘 섬기는 일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효도(孝道) ②상복(喪服: 상중에 있는 상제나 복인이 입는 예복) ③제사(祭祀) ④맏, 맏자식 ⑤부모를 섬기다, 효도하다 ⑥본받다 ⑦상복(喪服)을 입다, 거상(居喪)하다 ⑧제사(祭祀) 지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효성이 지극한 딸을 효녀(孝女), 부모를 잘 섬기는 마음을 효덕(孝德), 효행이 있는 며느리를 효부(孝婦), 효행이 있는 손자를 효손(孝孫), 효성스러운 마음을 효심(孝心),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를 효우(孝友), 효행을 다하는 마음을 효지(孝志), 부모를 잘 섬기고 공경함을 효경(孝敬),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효도를 효은(孝恩), 어버이를 잘 섬기는 행실을 효행(孝行),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마음껏 어버이를 잘 섬기는 정성을 효성(孝誠), 효행이 있고 유순함을 효순(孝順), 어버이를 효행으로 봉양함을 효양(孝養), 어버이에게 효도함을 효친(孝親), 봉양할 줄 아는 새라는 뜻으로 까마귀를 달리 일컫는 말 효조(孝鳥), 부모에게 자식된 도리를 못함을 불효(不孝),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충효(忠孝), 어버이를 잘 섬김을 극효(克孝), 한결같고 변함없는 효도를 달효(達孝), 지극한 효도 또는 지극한 효자를 대효(大孝), 순종하여 효성을 다함을 순효(順孝),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는 효도를 영효(榮孝), 어버이의 애정과 자식의 효도를 자효(慈孝), 지극하고 돈후한 효행을 독효(篤孝), 부모를 섬길 때에는 마땅히 힘을 다하여야 함을 효당갈력(孝當竭力), 효자는 날을 아낀다는 효자애일(孝子愛日), 효자가 난 가문을 효자지문(孝子之門), 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형제끼리의 우애와 임금에 대한 충성과 벗 사이의 믿음을 통틀어 이르는 효제충신(孝悌忠信),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봉양함을 반포지효(反哺之孝),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로워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부자자효(父慈子孝), 효자가 죽은 부모를 너무 슬피 사모하여 병이 나고 혹은 죽음을 이효상효(以孝傷孝)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