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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91년 오월 광주에 피어난 해방의 코스모스, 박승희
이 책은 1991년 4월 29일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고(故) 강경대 열사 추모 및 살인 정권 폭력 정권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 중 “살인마 노태우를 처단하자! 미국놈들 물러가라! 2만 학우 단결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뒤, 5월 19일 사망한 박승희(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2학년) 열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스무 해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가족과 친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한 아이가, 성당에 다니며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어린이로 자라, 중학생 때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알게 되고, 고등학생 때 1987년 6월항쟁과 1989년 전교조 사태를 겪은 뒤 1990년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1991년 4월 노태우 정권의 살인적인 공안 탄압에 맞서 분신 항거한 후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 때로는 열사의 목소리를 통해,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자기 자신보다는 이웃과 사회를 먼저 생각했던 한 청년이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세상에 외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5·18 광주 학살의 책임자이자 명지대학교 1학년 강경대를 죽음으로 내몬 공안 탄압의 책임자 노태우를 끝장내야 한다는 것, 또 5·18 광주 학살을 방관·묵인한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이 야만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전남대학교 2만 학우가 함께 힘을 모아 싸워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평소 청년이 좋아했던 꽃, 척박한 땅에서도 늘 무리 지어 피어나는 꽃, 서로 어울려 함께하기에 더 강인하고 더 화려하게 빛나는 꽃 코스모스처럼,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해방된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열사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목차
발간사 -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글쓴이의 말 - 양인자
1991년 4월 29일 월요일 그날 그 자리 그 사람들
- 노훈오, 오창규, 황인, 오경훈, 박근숙, 기희진, 전민재, 구신서, 최은희, 이양순
1부. 기도하는 아이
사랑받는 아이, 승희 /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쟁이 / 사랑 넘치는 부모, 다정한 가정 / 성당, 마음의 성숙
2부. 껍데기를 벗고서
항일정신이 살아 있는 정명여고 / 〈분단일지〉 / 결속력 좋은 1학년 5반 /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 / YMCA 활동 /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들 / 반듯한 아이 / ‘목고련’ 창립
3부. 참교육의 함성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 선생님, 우리 선생님 / 새벽 수업 / 외로운 투쟁
4부. 아, 전남대학교
꿈 같은 합격 소식 / ‘용봉’ 교지 편집실 / 신입생 환영회 /
5부. 애국의 길
처음 나간 가두 투쟁 / 애국의 길 / 4기 전대협 출범식 / 여름 농활 / 서평을 쓰고 / 가는 해, 오는 해
6부. 1991년
1월과 2월, 3월 / 4월 20일 / 4월 26일과 27일 / 4월 28일 / 4월 29일 / 4월 29일 오후 3시 19분
7부. 병상 투쟁
죄송합니다 / 끄덕끄덕 토닥토닥 / 의연하고 담대한 마지막 / 각자의 할 일
1991년의 또 다른 이름들
* 박승희 열사를 기억하는 곳
* 참고자료
저자 소개
양인자
전남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아동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천왕봉」이 당선되었고 제7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과 제3회 정채봉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에 청소년 소설이 추천되었습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소설집 『우리들의 DNA』와 장편동화 『늦게 피는 꽃』, 『엄마 딸 하정연이야』, 『얄미운 내 꼬리』, 『형이 되는 시합』, 동화집 『껌 좀 떼지 뭐』, 『가출 같은 외출』 등이 있습니다. 남보다 잘 쓰기보다 어제보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획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는 박승희 열사가 남기고 간 민족 자주, 민중에 헌신, 대동단결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매년 4월과 5월을 ‘박승희 열사 추모 주간’으로 지정하여, 분향소 설치, 추모제·추모문화제 개최, 코스모스 꽃밭 가꾸기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광주전남추모연대’와 함께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 묘역 정비 사업, 의문사 진상 규명 및 국가폭력·폭압 기구 대응 사업, 열사 희생자들의 사회적 명예회복과 예우를 위한 사업 등에 연대하고 있다.
- 후원: 광주은행, 072-107-314481,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 CMS 회원 가입: 062-527-0429
출판사 리뷰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그리고 1991년
한 청년이 분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991년은 어떤 시대였을까?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으나, 양김(김대중, 김영삼)의 분열로 5·18 광주 학살자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 국회 창출과 5·18 광주 청문회 개최, 1989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전빈련(전국빈민연합) 설립, 1990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과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설립 등,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동·농민·빈민 운동과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성장에 위기를 느낀 노태우는 1990년 김영삼(통일민주당)·김종필(신
민주공화당)과 함께 민자당(민주자유당)을 창당하여 정국 반전을 노린다.
그리고 드디어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민족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을 시작, 그로 인해 1991년 초 시위 현장에서 경찰 폭력에 의한 학생들의 부상이 잇따르고, 결국 4월 26일 명지대학교 1학년 학생 강경대가 경찰의 구타로 인해 사망한다.
1987년 6월항쟁의 감격과 그해 대통령선거에서의 절망,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의 승리와 1990년 민자당 창당으로 인한 좌절, 1989년 전교조 설립의 기쁨과 전교조 교사 대량 해직 사태의 슬픔,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폭력 경찰에 의한 강경대 학생의 사망. 이것이 바로 박승희 열사와 그 시대 동료 학생들이 겪은 한국 사회의 격변이었다.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김기설, 박창수,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강경대가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하고, 박승희가 이에 항거해 분신한 이후, 청년들의 가슴 아픈 죽음이 이어졌다. 1991년 5월에만 아홉 명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5월 1일 안동대학교 학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학교 학생 천세용.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5월 9일 부산 영도 조선소 노동자 박창수, 5월 10일 노동자 윤용하, 5월 18일 노동자 이정순, 5월 18일 보성고등학교 학생 김철수, 5월 22일 노동자 정상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학교 학생 김귀정이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 사회단체 일꾼, 고등학생, 대학생 등 다양한 직종, 다양한 세대의 청년들이 이 땅의 민주화와 민중의 해방을 위해 제 한 몸을 바쳤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이들의 동료 노동자, 동료 학생들, 동료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1991년 5월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광주에서는 박승희가 만든 작은 불씨가 수천 수만의 가슴 속에서 불꽃이 되어, 1980년 오월이 그러했듯, 1991년 오월 광주는 주먹밥에서 김밥으로, 전남도청이 전남대병원으로 바뀌며 다시금 해방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시민들과 학생들이 하나되어 전남대학교병원을 거점으로 제2의 6월항쟁을 만들어갔다.
특히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 과정에서 광주 시민들과 청년 학생들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은 1980년 오월 광주의 재현이라 할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장례식 당시 강경대 열사의 운구가 광주 망월동에 안장되는 것을 노태우 정권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전국의 전투경찰 수십만 명을 광주에 집결시켜, 장례 행렬이 광주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에 당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학생들과 광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몇 날 며칠을 전투경찰과 싸우며 결국 강경대 열사의 운구가 뚫고 들어올 수 있게 길을 만들었고, 무사히 장례를 치룰 수 있게 되었다.
1991년 5월 투쟁과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하지만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 투쟁이 제2의 6월항쟁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만 보지 않았다. 노태우 정권은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5월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 했다. 그중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고 하면서, 저 유명한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 냈다. 이 사건은 검찰, 경찰, 안기부 등의 공안 기관과 정부와 정당, 보수 언론, 종교계 등 한국 사회 보수 기득권 세력이 총동원된 대표적 조작 사건으로, 보수 기득권 세력과 노태우 정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청년들의 희생을 철저하게 기만한 사건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청년들의 죽음을 훼손시키려 했고, 여기에 조선일보 같은 수구 기득권 언론이 합세하면서 김지하, 박홍 신부를 앞세운 여론 조작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다. 6월항쟁으로 확보한 여소야대 정치 지형까지 민자당 창당으로 뒤집힌 상황에서 민족민주운동 세력은 노태우 정권의 여론 조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정권은 조선소 노동자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전투경찰을 동원해 장례식장 벽을 뚫고 탈취하는 패륜적인 작태까지 보여줬다.
1991년 5월 투쟁의 열기는 결국 노태우 정권과 언론 등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그 마침표가 된 사건이 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벌어진 당시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정원식에 대한 학생들의 밀가루 테러 사건이었고, 이 또한 정권과 언론의 여론 조작이 작동한 사건으로, 1989년 전교조 가입 교사들의 대량 해직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원식에게 일부 대학생들이 항의한 사건을 전대협 학생운동 세력의 패륜적 행태인 것처럼 여론을 조작한 것이었다.
‘분신 정국’을 다시 1991년 5월 투쟁으로
노태우 정권과 기득권 언론은 1991년 5월 열사 투쟁을 ‘분신 정국’으로 오염시켰다. 이름은 성격을 규정한다. 1991년 4월 강경대 열사 치사 사건으로 시작된 열사 투쟁은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에 맞서 죽음으로 저항한 투쟁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과정에서 터져 나온 전 국민적 요구가 대통령선거에서 학살자 노태우의 당선으로 좌절된 후, 다시 1991년 5월 투쟁 과정에서 열사들의 항거로 되살아난 것이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은 이 5월 열사 투쟁의 정당성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등으로 훼손시키며 “분신의 배후, 죽음의 굿판” 운운하며 당시 민족민주운동 세력을 파렴치한 패륜아로 몰아갔다.
결국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만들어낸 1991년 5월 열사 투쟁은 노태우 정권에 의해 분신 ‘정국’이 되었고, 5월의 거리에서 함께 싸웠던 청년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1987년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공유했던 세대들에게 1991년은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투쟁으로 남았고, 현재까지도 그 책임감과 부채감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1991년 5월의 열사 투쟁은 실패한 투쟁이 아니라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투쟁으로 온당하게 재평가되고 재조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5월 투쟁을 재구성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 열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다시 조직하는 것이다. ‘분신 정국’으로 오염된 집단 기억을 열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발굴하고 공유해서 재조직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1991년 5월이 1980년 5월, 1987년 6월 투쟁의 연장선에 서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와 양인자
이 책을 기획한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가 30년 전부터 해 오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 책도 이런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고 말이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는 박승희 열사가 남기고 간 민족 자주, 민중에 헌신, 대동단결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매년 4월과 5월을 ‘박승희 열사 추모 주간’으로 지정하여, 분향소 설치, 추모제·추모문화제 개최, 코스모스 꽃밭 가꾸기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작가 양인자 또한 박승희 정신을 계승하는 길에 서 있다. 아동 청소년 문학 작가인 양인자는 이미 《오월의 어린 시민군》(위즈덤하우스, 2021)을 통해 5·18 광주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5.18 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썼던 양인자는, 이번에도 박승희 열사의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대학 시절 함께 활동했던 지인들을 직접 만나 열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양인자는 박승희 열사가 다녔던 골목길, 용당동 성당, 전남대학교 교정을 천천히 거닐었다. 승희 열사가 남긴 글과 편지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한결같이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양인자는 불꽃이 되어 스러진 스무 살의 청춘을 되살려내는 일이란 과거를 거슬러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승희 열사가 남긴 코스모스 씨앗의 의미처럼, 홀로 피지 않고 무리 지어 있는 꽃이기에 더욱 강인하고 아름다운 코스모스처럼, 우리네가 사는 세상도 한데 어울려야 더욱 강하고 더욱 아름다울 거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양인자 선생님~귀한 책 출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