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묶인 왼손이 아니었다면
이혜미
왜 꽃다발 속 꽃들은 서먹해 보일까
한 손에 꽃
다른 한 손엔 칼을 들고 걸었어
최소한의 날카로움으로
심장의 안팎을 알기 위해
소중하다 말하면
다가와 아름다운 자리가 될 줄 알았지
생일 초의 은박지
잘못 다린 옷의 반짝임
꿰맨 자리의
미지근한 흰빛이 되어
스미고 싶었지 비루하지만 확실한
흉의 임자로
돌아서는 순간 돌변하는 사람처럼
전화를 끊으며 차가워지는 표정처럼
낯빛부터 시드는 것들이 있어서
꽃을 든 손은 무용한 손 무력한 손
떠나간 깃털들 헛되이
손바닥에서 부스러지고
젖은 발끝이 흐릿해질 때
저물어갈 것을 몰랐지 썩은 뿌리에 마른 꽃잎을 달고
내치지도 못할 마음이 될 줄은
풀려가는 리본을 고쳐 매면
견고해지는 옥죄임의 둘레
―《아토포스Atopos》 2022 겨울/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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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침몰하는 저녁」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흉터 쿠키』, 에세이집 『식탁 위의 고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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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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