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 Symphony No. 45(고별) in #F minor, IV. Finale, Presto - Adagio - Daniel Barenboim.
하이든을 고용하였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1766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화려한 궁성을 노이지트라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장소에 건축했다.
이 궁성은 에스테르하지 하궁(夏宮)으로 불렸으며 처음에는 비좁은 관계로
관현악단의 연주자나 하인들은 가족을 데려올 수 없었다.
단원들 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것은 악장 하이든을 포함한 겨우 4명뿐이었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봉급을 더 주게 되어 있었으나 그 대신에 많은 단원들은
여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에스트르하지 하궁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1772년은 통상 체류 기간 6개월보다 2개월이나 더 머물렀다.
그 일로 단원을은 하이든에게 이 불편한 생활을 해소할 수 있도록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이든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서, 곡의 마지막에 연주하는 단원이 한 명씩 연주를 끝내고
악기를 챙겨 보면대 위의 촛불을 끄고 퇴장해서 아주 소수만 남아 조용하게 연주를 이어가는 교향곡을
작곡해서 단원들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고별교향곡’이 만들어졌으며, 조성도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외로운 올림바단조가 선택되었다.
이 곡이 실제로 후작 앞에서 연주되자 니콜라우스 후작은 즉시 그 의미를 깨닫고
다음날 단원 전원에게 휴가를 주었다. 이 일화는 그리징거와 디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이 곡에 주어진 ‘고별’이라는 부제는 18세기 말경에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곡은 일반적인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4악장만 빠른 마지막 곡 다음에
단원이 하나씩 퇴장하는 안단테가 붙어 있다.
현재 자필악보가 부다페스트 국립 세체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완성된 것은 1772년이다. 당시 하이든이 악장으로 섬기고 있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노이지트라 호반에 피서용 여름 궁전을 만들고, 여름이 되면 악단원들을 데리고 자주 갔다.
그런데 그는 1772년에는 가을이 다가왔는데도 아이젠슈타트의 본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무렵엔 별궁이 악단원들의 가족들까지 수용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하이든을 포함해 4명뿐이었다.
악단원들은 빨리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후작은 좀처럼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았다.
하이든은 여러 사람들의 희망 사항을 알아차리고 이 곡을 만들어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호소하였다.
즉 종악장에서는 모두 제각기 자기 담당의 연주를 끝내면 촛불을 끄고 조용히 퇴장하고,
최후에 바이올린 연주자 두 사람만이 남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악단원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다음날 돌아갈 것을 허락했다.[위키벡과]
Haydn / Symphony no. 45 Farewell Symphony - Sinfonia Rotterdam - Conrad van Alphen
I. Allegro assai
II. Adagio
III. Menuetto. Allegretto
IV. Finale. Presto - Ada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