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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곽노현과 함께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곽노현공대위
한 편의 탄원서 내지는 응원글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탄원의 글 또는 응원의 글을 통해 조금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님의 의견서를 소개합니다.
의 견 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86-221
02-749-9004
존경하는 재판장님!
공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저는 인권연대라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오창익이라고 합니다. 저는 20년째 인권운동에 복무하고 있으며,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고,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1999년부터는 지금 일하고 있는 인권연대(舊 인권실천시민연대)를 창립하여, 지금까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인권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교정기관, 군대를 감시하고, 이들 기관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를 돕고, 이들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과 함께 시민 인권교육을 주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형사사법 절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검·경 수사권조정 위원회](2004년 - 2005년), [경찰청 혁신위원회(2003년 - 2006년), [경찰청 인권위원회](2005년 - 2008년), [법무부 교정행정자문위원회](2005년 - 2009년) 등의 기관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인권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2008년)이란 책을 썼고, 동료 교수, 법조인과 함께 <검찰공화국, 대한민국>(2011년)이란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광운대학교에서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기도 합니다.
긴 소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은 그의 이력이 말해줄 수 있기에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오늘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맡고 계신 재판의 한 피고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서울시민들, 특히 수백만의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은 그를 교육감으로 기억하고 있는 곽노현 피고인입니다.
곽노현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의 이력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웹 사이트에 실린 곽노현 피고인의 이력입니다. 약간 길지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공직 관련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규제완화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비상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상지대학교 임시이사/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
다음은 시민사회 관련 경력입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참여연대 발기인, 집행위원, 운영위원, 지도위원/ 인권운동사랑방 운영위원/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의 철회 및 민주적 재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정책위원장, 대외협력위원장/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 자문위원장/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 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인권연대 운영위원/ 재벌의 편법상속 근절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 충암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연구자문위원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 토지+자유연구소 이사/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 (사)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사위 부설 기쁨과희망은행 창립준비위원장, 운영위원장/ 탈시설정책위 위원장
국제사회 관련 경력도 있습니다.
Advisory Council of Jurists, Asia-Pacific Forum on NHRIs 시드니 소재 아태국가인권기구포럼 법률가자문위원회 위원/ Regional Member, ICC Subcommittee on Accreditation 제네바 소재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 승인소위 아태지역위원/ Advisor, Forum-Asia ANNI(Asian NGOs Network on NIs) 방콕 소재 아시아인권개발포럼 국가인권기구감시단 자문역/ Global Reporting Initiative Stakeholders Council Member 암스테르담 소재 전지구적 보고 구상 이해관계자 위원
방금 살펴보신 것처럼 곽노현 피고인에게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출세와 관련된 경력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곽노현 피고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단서입니다.
저는 곽노현 피고인(저에게는 ‘곽노현 교수’라는 표현이 더 익숙합니다만)과 1990년대 초중반부터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입학을 기준으로 14년 차이가 나지만, 그래서 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선배이자 선생’으로 생각하고 교분을 나눠왔습니다. 하지만 곽노현 피고인은 저를 늘 함께 인권운동을 하는 동료로 존중해주었습니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로도 여겨주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과는 인권운동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신앙을 갖고 있고, 인생관도 비슷해서 인권운동의 선배 또는 동료 이상의 교분을 쌓아왔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박명기 피고인에게 전달한 2억 원의 돈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곽노현 피고인을 만나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의 ‘선의’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마 곽노현 피고인 자신도 자신이 주장하는 ‘선의’가 일반 사람들에게 또는 법률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의를 주장하는 까닭은 제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한, 사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당장, 저만 하여도 인권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꼬박 20년 동안, 정부의 지원이나 보조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기업의 지원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지만, 단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정말 아무런 대가도 없는 거액의 후원 제의도 그때마다 거절해왔습니다. 인권운동만 해왔기에 일상적으로 가난했지만, 저는 저 스스로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저는 제가 정한 원칙, 돈 문제에 대해 철저하자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돈을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했지만, 돈을 쓰는 일은 완전 반대였습니다. 저희 사무실에는 몇 개의 저금통이 있습니다. 일 년 동안 아끼고 또 아껴서 연말에 이주노동자단체나, 저희보다 형편이 어려운 단체나 운동가들을 돕는데 쓰기 위한 것입니다. 인권단체의 형편이란 것이 다 어려워서 미래를 기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정의 일부를 조금씩 모아서 ‘사무실 이전기금’이란 것을 모으고 있는데, 10년 가까이 모은 5천만 원 상당의 돈(저희에겐 거액입니다)을 새로 사무실을 여는 지역의 인권단체 3곳에 나눠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밖에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받는 돈에 대해서는 엄격하기 짝이 없었지만, 돈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큰 손처럼 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인권운동을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런 태도를 지키는 것이 제가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이 보람이고 또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돈에 대한 태도는 곽노현 피고인 같은 인생과 인권운동, 그리고 신앙의 선생이자 선배에게 배운 것입니다. 다른 분들을 통해서 들으셨을 지도 모르지만, 곽노현 피고인은 그동안 여러 차례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선행’을 벌여왔습니다. 동료 교수이자 친구에게 거액을 그냥 내준 것이나, 청산의 기도원 땅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넘겨준 것 같은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도 그랬습니다. 제가 워낙 돈에 엄격했기에 별도로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곽노현 피고인은 늘 거액의 돈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지난 12년 반 동안 곽노현 피고인은 매달 정액을 내는 인권연대의 든든한 운영자였고, 또 후원자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인권연대란 단체를 만들기 전에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은 제가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 그 단체의 운영위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운영위원으로 일하는 분들 중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승훈 신부, 이돈명 변호사, 유현석 변호사 같은 분들이 계셨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결같은 가르침을 주시는 지도자였습니다. 부산의 문재인 변호사 같은 분들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내에서 약간의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제가 사직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곽노현 피고인은 두 말 없이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만두었을 때, 함께 천주교 인권위원회 운영위원 직을 사임했습니다.
이건 참으로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어렸고, 사회적 배경도 없는 저에게는 참으로 든든한 결정이었지만, 곽노현 피고인 개인에게는 뭐 하나 득 될 것도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천주교계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함께 일하는 분들은 이름만으로도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그분들과 불편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곽노현 피고인은 세상의 이치로 보면 손해뿐인 일을 선택했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곽노현 피고인의 선택은 가까운 사람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을 좀 더 살피고 연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이 살아 온 인생 자체가 그랬습니다. 최근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어 무척 중요한 책무를 맡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온통 손해 보는 일 투성이었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된 것도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출세 같은 것과는 먼 거리에 있는 헌신이었습니다. 선출직에 나가 당선되고, 해당 분야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일은 보통의 사람들의 눈에는 출세로만 보이겠지만, 곽노현 피고인 입장에서는 자신을 내어 놓는 헌신이었고 봉사였습니다. 그동안 인권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인식의 장애라는 거대한 벽을 어떻게든 뛰어넘고 싶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사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위축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은 신앙적 고백을 통해 이러한 사명을 느끼게 되었고, 비록 피하고 싶었던 독배와도 같은 힘든 선택이었지만,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을 서약한 것입니다.
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회적으로 발표하는 여러 글을 써드렸습니다. 추기경께서 연로하셔서 손목을 쓰기가 어려워서 제가 써 드리면, 약간만 고치시고 밖으로 원고를 내보내는 일은 10년 가까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교회(교회단체)를 떠난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쁘게 이 일을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저에 비할 수 없이 큰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적 존경의 크기와 달리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2000CC 급이었고, 돌아가실 때는 전 재산이 200만원 약간 넘었을 뿐입니다. 그 돈마저 이주노동자 진료시설인 ‘라파엘 클리닉’에 모두 기부되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돈을 갖고 계실 능력이 충분한 분이셨습니다. 추기경께서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말씀만 하셨더라도 엄청난 거액이 모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추기경께서는 지금도 ‘바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도 그런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을 것이 뻔한 ‘선의의 2억 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이력으로나 또는 신앙에 근거해 조금이라도 ‘후보 매수’ 등의 조짐이 있었다면, 과감히 교육감 자리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 놓았기에 절실하게 당선을 원했지만, 자신이 맡아야 할 어린이 청소년들이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면, 아주 쉽게 출마 자체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에게 있어서나 곽노현 피고인에게 있어서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공직 진출의 기회가 있었지만, 여태껏 재야의 인권운동가로만 살아오고 있습니다. 좀 더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 삶의 원칙을 스스로 존중하고 싶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저 같은 어린 사람이 그럴진대, 저의 스승이기도 한 곽노현 피고인에게 원칙을 위해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질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선의’에 입각해 적지 않은 돈 2억 원을 전달하는 일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이나 저나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돈 문제에서 자유롭고자 노력하고, 자신이 정한 원칙을 소중하게 지키는 선한 이웃도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곽노현 피고인이 그동안 했던 이런저런 선행, 그 티내지도 않고, 본인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그 숱한 일들을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곽노현 피고인이 그동안 해왔던 많은 일들이 구차하게 보이기도 할뿐더러, 재판장님께서 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량을 적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란 인권단체에 무료로 사무실을 빌려 준 일, 교수로서의 업무 수행을 위해 배당된 조교를 인권운동사랑방 간사로 정해, 정작 자신은 조교에게 받을 수 있는 온갖 서비스와 지원을 포기하고, 단 한명이라도 더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 성소수자 단체, 장애인 단체 등 자력으로 도저히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인권단체들을 도왔던 일, 재소자, 출소자들을 위해 진력을 아끼지 않았던 일 등 당장 떠오르는 일만 해도 차고 넘칩니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이 단지 한명의 대학교수에 불과했던 그 혼자 다 감당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비슷한 질문에 대해 늘 “마누라도 돈을 버는데 뭘.”이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곽노현 피고인은 돈을 내고 생색내는 일 없이, 오로지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손해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나누고 또 나눠왔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재판장님께서 법률과 양심에 따라 진행하는 재판 결과에 따라 서울 교육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또는 곽노현 피고인과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지 등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양형의 참고 자료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 비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보다는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선의의 2억’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곽노현 피고인이라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이나 그의 철학을 생각하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또 몇 번씩이라도 가능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무쪼록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하시는 일과 가정에 늘 평화와 기쁨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공무에 노고가 많으신 점에 시민의 한사람으로 늘 감사드립니다.
2011년 11월 7일
오창익 올림
오창익은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인권 운동가이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활동을 거듭하고 있다. 신학을 잠깐, 불문학을 아주 조금 공부했지만, 그건 학교 다닐 때 이야기일 뿐이고, 요즘은 형사사법 절차에 관심을 갖고 있다. 수사부터 재판, 형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창익은 활발한 인권 교육 활동을 해왔다. 프로야구 선수와 운동선수들, 종교인, 교사, 기자, 군인, 경찰관, 대학생,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 <한겨레신문>과 <시사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썼고,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대학원 강의도 한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6년 동안 고정 출연했다.
첫댓글 맘이 짠하네요.. 정말 곽교육감님께 힘이 될 수 있는 글이 되길바래요~화이팅입니다
힘내세요,, 언젠가는 분명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아이디를 본인이 만드신건가요?
아님 공식적인 아이디이신가요?
예, 공식적인 아이디입니다.
어쩌다 남을 돕는것도 이상한눈으로 봐야하는 시절이 되었을까요
곽노현교육감님 꼭 지켜줍시다 !!!
아, 바보 곽노현....다음 공판을 과연 어떻게 판결 할지 궁금합니다.썩은 판사들이 아니길... 가슴이 너무 아파요.
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힘 내세요~ 저희가 지켜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