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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의 선수시절에 대한 기억 [2]
노바디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1 | 반대 1 | 조회수 344 | 2010.06.18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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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과 떼놓고서는 이야기 하기 힘든 분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저야 그냥 시청자입장. 축구팬 입장에서 지켜봤으니
자세한 내막은 잘 모릅니다만.
다만..그때 경기내용들.. 그후 두사람의 해외진출
국내 돌아와서의 인생역정등을 보다보니..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됩니다.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일단 선수시절. 차범근선수는 고대. 허정무 선수는 연대
연고전을 하면 그때 참 대단했습니다
차범근선수시절에야..워낙 대단했던거야..익히 짐작하실테고
허정무선수시절.. 사실.. 국내 경기에 있어서
허정무 선수의 공격수로서의 위력이란건..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국내 경기에 있어서만 갖고 비교하자면
허정무> 차범근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두사람이 같은 공격수지만..스타일은 많이 틀려서
차범근선수 - 빠른 주력. 높은 점프력에 의한 헤딩력. 지칠줄 모르는 체력
팀플레이..경기를 읽는 능력.. 이런게 장점이고..
허정무선수 - 화려한 개인기. 돌파력. 슛 능력. 이런게 장점인지라.
암튼여..허정무선수가 공잡으면 국내경기에선 거의 안뺏기고 중앙에서
골대앞까지 가서 슛까지 하는 식이니까요
허정무 선수는. 동남아 같이 약한 팀하고 할때엔 그 위력은 대단했는데요
다소 강한 팀..동남아에서도 말레이지아..급만 되어도..위력이 반감되는
문제가 있었죠
반면에 차범근 선수는.. 국가 대항전에서 위력이 더 커지는.. 그런 선수였어요
암튼여..70년대 후반에 이르러..차범근 선수는 부동의 공격수로 대표팀에
자리잡았고요..허정무선수도.. 워낙에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당연히 국가대표에 뽑혀 자주 출전을 했습니다만..
차범근은.. 붙박이 주전 (당연한거지만..)
허정무선수..김진국..이영무..신현호..박상인.. 대충 이런 선수들과 경쟁을 했네요
허정무선수가 김진국등의 선수에 비교해 누구보다 뛰어난 개인기에 슛팅능력까지
갖춘 주인공급 선수였지만.. 자주 발탁되지는 않았던거 같은데요
왜 그랬느냐..제 생각으로는..(저도 허정무 나오면 짜증났기 때문에)
당시 대표팀은..완전히 차범근 체제였습니다. 차범근을 중심으로
아무튼간데 허리에서건..측면 공격수건간에.. 돌파를 좀 해서.
차범근선수에게 연결하는게.. 주된 공격 루트였었죠
왜냐하면.. 차범근 선수가 공을 잡으면.. 일단 위협적인 공격이 항상 가능하거든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음... 차범근이 그만큼 독보적으로 잘했단 이야깁니다)
그런데..허정무선수는..제 기억으론..공을 끄는 버릇이 있고..
너무 오래 공을 갖고 개인기로 사람 여럿 제치는 버릇이 있어서..
짜증이 났고요..(속공이 불가능)
다른 무엇보다도.. 허정무 선수는..주된 공격루트.. 차범근에 연결을 잘 안했어요
혼자서 하려고 하다 공을 뺏기거나..
너무 늦어서 수비가 다 차거나..
아니면..다른 선수한테 연결하거나.(차범근한테 패스한적을 한번도 못봤다고..
우리형과 내가 이야기했던게 기억나네요)
후에 차범근 선수가 독일로 진출하게 되고..
그에 자극받았는지..(제가 볼때엔 그렇습니다)
허정무선수가 .. 독일로 갔다가 여의치 않아..네덜란드로 건너가서..
역시 현지 축구선수가 되었죠..아인트호벤인가..하는 팀이었습니다.
허정무 선수의 해외에서의 활약도 결코..무시 못할 정도 일겁니다.
주전 선수를 몇년간은 했던걸로 기억하니까..
허정무 선수가..나중에 국내에 와서..플레이 하는 걸 보고는..
놀란 기억이 납니다..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이거죠
공을 끄는 버릇이 완전 없어졌고.. 패스력이 좋아졌더라고요..
무엇보다.. 허리에서 대인마크력도 생겨서.. 옛날의 허정무는 아니었던 것이죠
허정무 선수가.. 소위 원톱 스트라이커로서 한세대 대표팀을 호령할 수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차범근이란 이름이 없었다면//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허정무선수가 잇고 있겠죠..
(이건 거의 확실합니다)
이회택 - 허정무 - 최순호로 이어졌겟죠
허지만 당대에 차범근이란 거목이 있었고..
그랬다면.. 그시대에 대표팀에 맞춰 얼마던지..자신이.. 보조 공격수로 훌륭하게
기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해외 갔다온 후에 달라진 허정무 선수를 보니..
너 할 수 있는데도 예전엔 왜 안했던거야? 의문이 나오더군요)
그렇게 안했던건 .. 질투심.. 열등감.. 이런 것 아닐까요?
차범근 선수가 독일로 떠나.. 갑자기 횡 커다란 공백이 생긴 대한민국 대표팀에
남아서.. 빈 공백을 채울 생각은 안하고
해외로 구태여 떠나버렸던.. 허정무 선수..
(덕분에..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 2류팀으로 단번에 전락해버렸죠..)
이렇게 만든 배경..
당신의 마음속엔.. 차범근 선수는 무척 큰 존재였다는 ..
제 추측입니다..
차범근의 98득점 기록에 대해 아쉬운점은.. [5]
노바디 추천 9 | 반대 4 | 조회수 645 | 2011.05.11
그당시에 왜 어시스트 기록이 없어서
어시 기록이 안남아있다는 점임..
차범근 선수의 플레이 내용상
어시스트가 득점 만큼 많았을 선수임..
상당히 이타적 플레이어였으니..
골키퍼 일대일 찬스에서도 옆에 더 좋은 위치 선수에 패스하는 선수..
차범근의 말레이지아 3골 몰아넣기가 왜 유명한줄 아나? [10]
노바디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5 | 반대 4 | 조회수 1532 | 2011.05.19 | 신고
단순히 20여분동안 3골 넣어서?
단순히 4-1 실신상태였던 팀을 구제해서?
노노노노노
그 경기를 본 사람이나 암직한 사실이다..
그 세골은.. 그냥 세골이 아니다.
그 세골은..
순수한 표현으로..
차범근이 혼자서 세골 넣은거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레이지아와의 경기에 세골 넣은거 갖고
왜 수십년간 전설처럼 회자되는줄 이해 못할 것이다..
그 경기는..
한국 대표선수들이 태업한 경기다. 당시 최정민 대표팀 감독의 경질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일부러 태업한 경기란 이야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말레이지아가 복병이라 한들...홈 에서
말레이지아에 4-0 으로 후반 중반까지 떡 실신 당할 일 .. 전혀 없다.
차범근 선수의 득점이 적다는 둥.. 이런 알지도 못하면서 개드립 치는 녀석들한테
이 경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점이냐 하면..
차범근은 절대로.. 개인 플레이를 안하는 선수이며..득점 욕심이.. 역사상 최고로
없는 선수 축에 속하는 선수인데..
이 말레이자아와의 경기가.. 아주 희귀하게도..
차범근이가 개인플레이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후반 20분간 보여준 경기란 것을
알아야.. 이경기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 뇌리에 남아있는가를 이해한단 것이다.
다른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 않아.. 떡실신 당해가는 당시 상황에서
차범근은.. 아마도.. 선수생활중 유일하게
개인 플레이를 한다.
공뺏어 패스 없이 질주 돌파하여 슛팅까지./
알것냐? 차범근이 혼자서 세골 넣었단 이야기다. 무슨 의미인줄 아냐고..
1대 11로 싸워서 세골 넣었다고.
차범근 득점기록이 적다고 하기엔.. [2]
노바디 추천 3 | 반대 3 | 조회수 148 | 2011.05.21
고려해야 할 점이
포지션이 센터로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스타일은 윙포 역할..
(원래 라이트윙 공격수 출신인지라..)
이타적인 플레이 스타일.. (이타적인 걸로 치면.. 여태껏 본 선수중 가장 이타적 같음)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함..
만약 어시스트 기록이 남아있었다면..
득점 숫자를 능가하는 어시스트가 있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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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경기를 보며 그때도 그랬고.. 현재도 비판하는 점중에 이런 것도 있음..
-> 개인기가 부족하다. 수비수를 제치고 돌파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단순 주력으로 돌파다..
이러한 비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되지 않는다..
물론.. 발재간이 매우 뛰어나다면.. 수비수를 제치고 개인기를 뽐내는 경우가
왕왕 보였을 것이지만..
다만.. 내가 차범근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다소 회의를 품는 이유는..
차범근 플레이 스타일을 보건데..
지극히 개인 플레이를 삼가고.. 팀 조직플레이에 매진하는 스타일을 신봉하는
선수이니.. 불필요한 동작은 안하고.. 괜히 공뺏길 필요 없이..
돌파 안하고 다른 선수에게 공을 패스하는 식의 플레이를 주로했다는 점이다.
사실.. 차범근이 공잡아서 공 뺏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무튼.. 위에 득점 숫자와 더불어.. 개인기 부족 문제도..
차범근의 이타적.. 조직력 우선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란 점이다..
차범근이 과거 70년대 국대시절에도
절대 공을 잡고 끄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허정무가 비판받았던게 공을 너무 끌다가 공을 뺏기거나.. 경기흐름을 끊거나.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차범근의 플레이는 항상 간결했다. 잡으면 속공 돌파를 하던지
막히면 보다 좋은 위치에 패스를 하던지.
내가 얼마전 차범근이 말레이지아전과의 석점 몰아넣는 플레이를 예를 든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러한 차범근이가 간결한 조직 우선의 축구에서 탈피해서
매우 개인적인 플레이를 감행했던 매우 드문 케이스가
말레이지아전 후반 20분간이기 때문이다.
공을 잡아 패스를 안하고 혼자서 다하는 크레이지 20분간.
그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차범근이가 발재간도 장난이 아니구나..
느꼈을 것이다.
차범근이 발재간 안부린 것은
못부린게 아니라 불필요하니 안부린 것이고..
차범근이 득점 수가 적은 것은
득점을 못넣어서가 아니라
무리한 득점 욕심을 안부려서 그런 것이다.
30년후 여기 게시판에선 박주영>>박지성이 될듯. [2]
노바디 추천 1 | 반대 2 | 조회수 80 | 2011.05.24
그러기 아주 쉽다.
남는거라곤.. 숫자고 데이터니까.
박주영이 넣은 득점숫자가 훨신 많을 거거든
작금 30년 전의 차범근을 보지도 못한 넘들이
비하하는 걸 보니..
뭐.. 구체적으로 머라 표현하기 힘든..기록이 별로 없는...
출장도 별로 없는..
박지성이의 30년후 평가가 ..
참 걱정된다.
그때 아무리.. 박지성 본 사람으로서.. 이러쿵 저러쿵 잘했어 해봤자.
뭐 말이 통할 거 같나? 니넘들 같은 먹통들이 고집 피우는데?
그때는 지금같은 빅리그 빅팀 체제가 다시..
과거처럼.. 각팀 각리그로 우수선수가 분산되고
상위팀 후보보다는./. 하위팀 주전이 더 우수했던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가서.. 최고 명문 맨유드립질 전혀 안통할테고..
맨유에서 선발도 불투명한 선수 딱지나 남겠지.
그런 식이면.. 이청용보다 훨씬 못한 선수로 박지성이 평가되기 쉬워..
과거 기준이면..
1위팀 맨유 불투명 주전 박지성보다는
중위권팀 선발 이청용이 훨씬 좋은 선수였거든.
차범근 득점이 허접하다고?????
노바디 추천 0 | 반대 2 | 조회수 49 | 2011.05.24
차범근 플레이 영상이나 보고 좀 평가하길..
차범근이 스트라이커 포지션인건 맞는데..
타겟형 오는 공 줏어 넣는 골게터하고 비교질 하면 무의미하지..
원래 했던게 라이트윙 포지션이고.. 70년대 국대에서 센터포드 자리가
비어서..
차범근이 센터포워드를 하게되었는데
그후로..독일가서도 쭈욱.. 센터를 하긴 했지만.
늘 스타일은 윙포워드였다...
득점숫자 비교에 어시스트 기록이 같이 남아있다면../
보다 차범근에 대한 정확한 기록 평가가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290게임에
98득점에 98 어시스트라면.. 과연 그렇게 허접한 기록일까?
차범근 스타일상 어시스트가 득점 만큼 많았을 거란 가정에서 쓴 글이다..
사실 그 이상 될지도 모르고..
출처 : http://soccerline.kr/board/14276642?searchWindow=&searchType=0&searchText=&categoryDepth01=1&page=1
첫댓글 차붐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