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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광주구장. KIA-두산의 3연전 첫 경기를 앞두고 관중들이 서서히 입장하고 있었다. 야구인기가 회복됐다고 하지만 광주는 예외였다. 이날 입장한 관중은 2천500명. KIA의 올시즌 홈경기 평균 관중은 4천 명 대다. 부동의 관중 최하위 현대 바로 앞 순위다.
과연 이곳이 프로야구에 길이 남을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이 이뤄진 곳인가. 외야펜스에 붙은 굵은 글씨의 ‘1등 광주 1등 시민’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쩌랴. 야구는 꼴찌고, 관중석은 한산하다.
KIA는 6월1부터 3일까지 벌어진 부산 원정 롯데전에서 3연패했다. 3연전이 끝난 뒤 19승30패로 1위 SK와 8경기 차로 최하위. 5월 3일까지만 해도 KIA는 12승12패로 2위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광주 한국3M에 근무하는 박동민(33) 씨의 한숨이 먼지처럼 낮게 깔렸다. “그날 이후 6연패해 꼴찌가 되지 않았나.” 꽤 괜찮은 4월을 보낸 KIA는 5월에는 마스크가 벗겨지고 거미줄이 사라진 스파이더맨처럼 만신창이가 됐다.
박씨는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팀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타선이 터지면 투수진이 엉망이고 투수진이 안정을 찾으면 타선이 침묵한다. 선수들이 파이팅 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던 박씨는 장장 30분 동안 KIA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어둠 속의 호랑이
지난해 6월21일 광주구장을 찾았었다. 그때도 KIA의 순위는 5위였다. 그러나 4위 두산과는 반 경기 차, 1위 삼성과는 6경기 차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전 시즌 꼴찌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당시 KIA의 성적이 좋았던 까닭은 이용규, 김민철 등 젊은 야수들의 등장과 프로 15 년차에 첫 주전이 된 지명타자 이재주의 맹활약. 그리고 에이스 세스 그레이싱어의 호투와 이상화, 정원, 윤석민, 한기주 등 영건이 버틴 막강한 불펜진 덕분이었다.
KIA 코칭스태프가 벌인 기동력과 작전야구도 나름 좋은 평을 들었다. 특히나 잡음 없이 신, 구 조화를 통해 세대교체를 이룬 서정환 감독에게 비난을 퍼붓는 이도 드물었다.
당시 한 팬은 서감독에게 “부드러움의 카리스마가 돋보인다”며 “올해가 아니어도 다음해까지 팀을 다듬어 KIA를 강팀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윽고 KIA는 전년도 골찌의 아픔을 딛고 기적처럼 준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올시즌은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됐다.
1년여가 지난 6월 5일 광주구장은 그때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5회초 2아웃에서 두산 김동주가 친 평범한 뜬공을 좌익수 김원섭이 조명 빛 때문에 놓치며 1점을 내주고 이어 선발 신용운이 최준석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자 1루 홈 관중석이 들썩였다. 거기다 5회말 두산 선발 매트 랜들의 공을 헬멧에 맞고 1루에 나간 KIA 김주형이 런앤히트에서 2루에서 죽고 타자까지 삼진으로 물러나며 무득점으로 끝나자 관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관중석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서감독, 얼릉 물러나랑께. 선수들도 이렇게 야구 할라믄 퍼뜩 짐 싸드라고”, “이거 시방 뭐허는 거여. 이게 뭔 야구여. 더그아웃 폭파시켜블기 전에 다 옷 벗으랑께.”
술에 취한 몇몇 관중의 야유와 욕설이 폭설처럼 쏟아지는 사이 KIA 투수들이 마운드를 오르내리고 두산 타자들은 바쁘게 베이스를 돌았다. 신용운을 투입하고도 KIA가 두산에게 4-10으로 패하며 4연패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야구 감독의 연봉 가운데 절반은 ‘욕먹는 값’이다. 절반 이상으로 높아지면 사직서를 내야 한다. 서정환 감독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광주구장 단상
6월 6일 현충일. 다시 광주구장을 찾았다. 휴일이라 관중이 4천244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관중과 달리 구장은 전날에 비해 조용했다. 현충일은 어느 구장에서도 치어리더를 동원하지 않고 앰프도 틀지 않는다.
광주는 현충일뿐만 아니라 5월18일 광주민중항쟁일에도 이 같은 관행을 따른다. 하기야 과거에는 KBO에서 5월18일에 광주 홈경기가 열리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했다. 혹여 관중이 반정부 시위대로 돌변할까 긴장하는 윗사람들의 우려를 반영했던 것이다.
이날 KIA는 조용히 경기를 치르려 했지만 어린이 팬들이 많이 와 응원단장만을 단상에 올렸다. 대형 엠프소리와 치어리더의 화려한 율동이 사라진 구장에서 KIA 선수들의 침묵이 더욱 눈에 띄었다. KIA 선발투수는 방어율 2.00를 기록 중인 에이스 윤석민. 그러나 전광판에 뜬 윤석민의 승패를 보고 숫자를 거꾸로 표기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숫자는 정확했다. 3승7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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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늘은 우리가 이기기 힘들 겁니다.” 두산 홍보팀 조성일 차장이 윤석민을 바라보며 슬쩍 죽는 소리를 했다. 윤석민이 이 경기 전까지 두산을 상대로 26⅓ 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그때 KIA 정재공 단장과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스트라이프 정장에 노타이 차림의 정단장은 지친 표정이었다. 6월 4일 지병으로 별세한 유성민 전 LG 트윈스 단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 잠시 정단장과 대화를 나눴다.
“팀이 연패라 힘드시겠습니다.” “저보다 감독님과 선수들이 힘들지요. 가장 힘든 건 팬들이겠고요. 죄송합니다.” “KIA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하지만 내일 하시죠. 오늘은 팬기자와 인터뷰가 예정돼 있습니다.”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진 후 정단장은 등을 돌리고 서둘러 어디론가 사라졌다. 배에 폭탄을 가득 두른 체첸 반군이 자신들의 목적을 설명하고자 TV 카메라를 향해 바삐 움직이듯 정단장도 쏟아낼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이날 경기는 윤석민이 두산전 무실점 행진을 33이닝으로 늘리고 펠릭스 로드리게스와 마무리 한기주가 깔끔히 이닝을 처리한 KIA가 두산에 2-0 완봉승을 거뒀다. 좋은 경기였다. 올해 KIA에는 이런 경기가 몇 번 있었다. 좋은 경기 다음에 나쁜 경기가 바로 이어졌다는 게 문제지만.
단장실
프로야구단에는 어디나 사장과 단장, 감독이 있다. 하지만 역학관계는 다소 다르다. 어떤 구단은 사장이 선수기용까지 의견을 낸다. 어떤 구단은 그렇지 않다. 단장의 힘이 강한 구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구단도 있다. 정답은 없다.
일선 감독들은 체질적으로 프런트의 관여를 싫어한다. 이런 풍조는 1982년 프로 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MBC 청룡의 모 사장은 “운동장이 이렇게 넓고 빈 공간이 많은데 프로라는 사람들이 안타 하나를 못 때리느냐”며 선수들을 불러 직접 타격지도를 했다. 그는 야구 선수 경험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삼성은 2000년 해태에서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며 ‘프런트가 더그아웃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은 선동열 감독 시대에도 지켜지고 있다. 그 뒤 삼성은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세 번 이뤄냈다. 김응용, 선동열 두 감독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은 김재하 단장의 공이 컸다.
지난해 정동진 전 삼성감독은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 선동열 감독은 매우 뛰어난 감독이지만 과거 삼성 프런트가 지금과 같았다면 삼성에서 명장이 많이 나왔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해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LG는 프런트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당시 단장이던 최종준 대구FC사장은 “이광환 감독이 대단히 많은 양보를 했다”고 말했다.
현대의 경우도 프런트, 특히 김용휘 사장의 리더십이 강한 편이었다. 모 구단 관계자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따로 노는 구단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모범적이 구단”이라고 평했다.
정단장은 이른바 ‘힘이 센 단장’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정단장은 8개 구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단장의 일, 즉 선수단 재구성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비난의 출처도 여기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강력한 감독, 강력한 리더십, 고강도의 훈련이 한창 유행이다. 그 영향으로 ‘감독 중심의 야구’라는 부작용도 나온다. 그러나 감독이 야구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7% 내외라는 게 정설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이 전술과 선수기용 문제로 해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팀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희생양이 필요하다 점은 동, 서양이 동일하다.
LA 다저스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은 “신이 보관 중인 어린 양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빠진 양이 감독”이라며 “감독은 팀을 우승으로 인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승으로 인도하려는 선수들이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선수가 아닌 감독이 스타가 되는 프로리그는 아마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밖에 없을 것이다.
정단장이 야구계의 주목을 받은 건 이런 흐름과 연관이 깊었다. 예전 기아 농구단 시절 정단장은 최고의 프런트로 불렸다. 샐러리캡이 있는 프로농구는 프로야구보다 선수 이동이 잦은 편이다. 정단장은 그 가운데서도 선수단 개편 작업에 열성적이었다. 2001년 8월부터 KIA 타이거즈를 맡았을 때도 그런 역할이 기대됐다.
2002년부터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트레이드(웨이버 이동 포함)는 모두 43건이다. 이 가운데 17건이 정단장의 작품이었다. 백분율로는 무려 39.5%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과는 실패 쪽에 가깝다.
2004년 4년 28억 원에 영입한 프리에이전트(FA) 마해영은 KIA에서 두 시즌을 보내며 도합 23홈런을 치는데 그쳤다. 그를 LG로 보내고 최상덕을 받은 트레이드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실패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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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황윤성과 박진철을 내주고 두산에서 심재학을 받은 트레이드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1년 뒤 심재학에게 안겨준 3년 18억 원 FA계약은 대실패였다. 2003년 1월 손혁과 김창희를 내 주고 진필중을 받은 트레이드는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진필중에게서 거둔 성공의 유효 기간은 딱 1년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 전 이뤄진 박재홍-정성훈 트레이드는 아직 KIA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가뜩이나 프랜차이즈 스타가 부족한 KIA에서 정성훈은 경기력 외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트레이드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단장은 드물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에서 극찬 받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단장도 실패한 트레이드가 부지기수다.
V1과 V10
6월 7일 광주구장 VIP룸. 정단장과 만났다. 간단히 악수를 나눈 후 함께 경기를 관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쁘실 텐데 어쩐 일이십니까.” 정단장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KIA 부진의 원인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정단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받아온 질문일 것이다.
먼저 입을 연 건 정단장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를 현장을 간섭하는 단장으로 모는 것은 억울하다.” 정단장은 “2005년까지 한번도 현장을 간섭하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프로야구 최고 투수 후보 1순위인 두산 다니엘 리오스는 ‘전라도 용병’으로 불린 KIA맨이었다. 정단장은 리오스 트레이드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김성한 전 감독서부터 제기돼 결국 유남호 전 감독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박재홍-정성훈 트레이드에 대해서도 정단장은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정성훈은 팀 내 최고 유망주로 향후 우리팀 내야의 핵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거포의 필요성을 들어 박재홍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현장의 뜻을 존중해주고 말았다. 심재학도 거포타자가 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회상하지만 당시 정단장은 정성훈을 내주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현장의 뜻을 거절했다. 그러나 현장은 KIA 타선에 박재홍급의 거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 후 결국 승자는 현장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당시 KIA에 있던 모 코치는 “그때 현장에서 김익환 전 기아차 사장에게 박재홍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역설했다”고 말했다. 현장의 손을 들어 준 김 전 사장은 정단장을 불러 이렇게 야단쳤다. “당신이 코칭스태프보다 야구를 알면 얼마나 많이 알아.”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정단장은 이어 마해영과 진필중 영입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현장에서 필요하다면 뭐든 들어줬다. 타자가 필요하다면 타자를, 투수가 필요하다면 투수를 구해줬다. KIA 전력강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했다.”
마해영 영입 당시 KIA 감독은 김성한 MBC-ESPN 해설위원이었다. 다음 날 광주구장에서 만난 김위원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어느 감독이나 팀을 최상의 전력으로 갖추기를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원래 가장 성공한 작전과 계획은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나 가능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단장이 스스로 계획한 트레이드는 없었을까. “2002년 1월 두산 김동주 트레이드 때다.” 정단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당시 KIA는 김동주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으로부터 데려오려고 했다. 두산이 요구한 트레이드머니는 20억 원. 성사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계약이 이뤄지기 바로 직전 석연치 않은 루트를 통해 이 소식이 외부로 유출됐다.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 두산은 결국 손을 떼고 말았다.
정단장이 KIA 단장으로 취임했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건 주먹구구식 구단 운영과 코칭스태프의 지도법이었다. “처음 구단에 와서 마케팅 자료라든가 운영 보고서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랐다. 전력분석체계도 엉망이었다. 전력분석원은 단순 기록원에 지나지 않았고 노트북 대신 전부 손으로 쓰고 있었다. 더 놀란 건 체계적인 자료나 리포트 없이 감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들이었다.”
KIA가 2003년 78승을 거두고도 66승의 SK에게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빼앗겼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KIA 사람들은 “SK의 데이터 분석에 졌다”고들 말했다. 사실 SK가 구축한 시스템 자체는 대단한 게 아니다. LG나 삼성, 심지어 롯데도 오래 전부터 자체 분석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이 점은 김성한 전 감독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예전 해태 때 무슨 돈이 있어 전력분석도구가 있었겠는가. 정단장이 처음 전력분석이나 리포트를 이야기 했을 때 거부감을 느낀 코치들이 많았다.”
정단장은 코칭스태프에게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제안했다. 김 전감독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그러나 시스템은 갖다 붙인다고 곧바로 체질화되는 게 아니다. 당시 KIA 코치였던 모 야구인은 “그런 거 없이도 우승을 9번이나 차지했던 팀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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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KIA는 가장 변화가 어려운 구단이다. 대영제국이 해체된 뒤 ‘영국병’이라는 말이 생겼다. 전신 해태는 전 국민이 껌과 아이스크림을 주식으로 삼았다면 지금도 프로야구에 살아 있을 신화였다. 그러나 KIA가 인수할 당시 해태는 물이 반쯤 찬 타이타닉호였다.
현재 김응용과 선동열이 모두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설명된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이 클수록 개혁은 어려운 법이다. 여기에 연고지 팬들에게 해태는 야구단 이상의 존재였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KIA가 ‘타이거즈’라는 애칭을 아직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LG는 프로야구계에 뛰어들자마자 전신 MBC 청룡의 자취 지우기 작업에 나섰다. SK 관계자들은 “우리는 쌍방울 레이더스와 완전 무관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열혈 광주 팬들 일부는 KIA에게 “해태라는 이름까지 계승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KIA는 ‘V10’, 즉 한국시리즈에서 열 번째로 우승하자는 구호 대신 ‘V1’을 채택했다. 정단장은 “주변에서 한번만 우승하면 10번의 우승이 되는데 왜 ‘V9’를 안 쓰고 ‘V1’를 내세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V1’을 하면 자연히 ‘V10’이 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에서 해태 시절의 갖가지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뜻도 읽힌다.
유남호 전 감독은 2005년 경질 직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해태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해태 정신이 사라졌다’고. 그 사람들더러 감독 해 보라고 해라.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 야구계 선배들은 후배들이 이기적이 됐고 근성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최근 야구 선수들이 10년 전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물리적 제약으로 근성을 키우던 시대도 지났다.
정단장의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다. 그는 2005년 팬들의 요구로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듯 고역을 자처했다. 최근에는 팬 기자를 상대로 인터뷰도 가졌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뭔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자리였다. 영원히 이뤄질 것 같지 않은 V1, 또는 V10에 화가 난 팬들에게는 변명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분명 프로야구단에서 흔치 않다.
모 구단 관계자는 “작전은 감독, 운영은 단장의 고유 권한이다. 팬들에게 이를 모두 설명할 의무는 없지 않느냐”며 정단장을 향해 “오버한다”고 평했다. 그러나 잊은 게 있다. 팀의 작전과 운영을 비판하는 것은 팬의 고유권한인 것을.
“담배를 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다시 피우게 된다. 이거라도 피우지 않으면….” 광주구장 1층에 마련된 단장실은 언제나 불이 꺼져 있다. 그렇다고 정단장이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다. 어쩌면 정단장은 그 만큼 외로운 게 아닐까.
감독실
6월 7일 KIA 감독실 문을 열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서정환 감독이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서감독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인기척을 하자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다.
전날 정단장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KIA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서감독은 호흡이 끊어질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선수들의 전력이탈이 가장 큰 문제다. 아무래도 부상 때문이 아니겠는가.”
서감독이 시즌 초 구상했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김진우, 세스 에서튼, 윤석민, 전병두, 이대진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선발진을 중심으로 이상화, 정원, 박정태의 불펜진 그리고 한기주가 버틴 마무리를 중심으로 투수진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타력이 걱정이었지만 1번 이용규가 지난해처럼 해주고 시범경기 때 맹활약을 펼친 이종범의 부활과 3번 홍세완이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면 4번 래리 서튼, 5번 이재주까지 이어지는 타선은 그런대로 괜찮을 법 했다.
그러나 시즌 시작부터 구상이 빗나갔다. 개막전을 앞두고 김진우는 어깨통증으로 2군에 내려갔고 세스 에서튼은 팔꿈치부상을 숨긴 채 투구를 했지만 팀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퇴출됐다. 기적적인 재기에 성공한 이대진과 전병두도 어깨부상으로 역시 2군으로 내려갔다.
“주전 투수들이 모두 아프다고 하니까 고졸 출신 어린 선수들로 투수진을 꾸렸는데 어디 정상적인 선발진인가. 처음에는 되나 싶었지만 20경기 째가 지나니까 다른 팀에 약점이 노출돼 공략당하기 일쑤였다.” 서감독이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육지책도 써 봤다. 불펜진의 핵 신용운을 선발로 돌린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서감독은 “밑에 돌 빼서 위로 올리고 위에 돌 빼서 밑에 맞추는 식”이라고 불렀다.
타선도 어려움 투성이다. “자, 한번 보라. 장성호 하나로 야구하고 있지 않나.” 맞는 말이다. 이용규는 발목 뼈조각 때문에 동계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 몸쪽 공이 약점으로 노출돼 지난해와는 딴판이다. 포수 김상훈은 발목과 무릎이 성하지 못하고 홍세완은 부상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양준혁의 타격 경력만큼이나 화려하다.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성한 타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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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감독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가뜩이나 KIA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 OB들이 즐비한 팀이다. 그러나 서감독에게는 서감독의 입장이 있다. 그는 최근 부진한 몇몇 주전 선수들을 두고 “트레이드감으로 쓰라”는 조언에 반대했다.
“나는 계약기간인 2008년을 다 채우면 물러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KIA의 미래”라는 게 반대의 이유였다. 서감독은 통증을 호소하는 선수는 쉬게 한다. 그는 삼성 감독 시절 임창용을 혹사시킨 데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다.
KIA는 지난해나 올해나 피말리는 페넌트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서감독의 얼굴은 편치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지난해나 올해나 서감독에게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무리하게 선수를 기용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팬들에게 실수도 인정했다. 그는 “래리 서튼을 퇴출시킨 건 성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튼 대역으로 등장했던 최희섭이 부상을 입으리라고 예상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불펜투수였던 펠릭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한 배경은 이렇다. 사실 정단장이 5월 1일 미국으로 출국했을 때 “최희섭과 막판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때 KIA와 최희섭은 계약에 합의한 상태였다.
“세스 에서튼을 대신할 외국인투수를 물색하려고 시라큐스에 가 있었다. 당초 영입할 투수가 나중에 말을 바꾸는 바람에 귀국 일정이 늦춰졌다.” 정단장의 설명이다. 정단장은 거기서 뜻밖의 거물을 잡았다. 그가 바로 로드리게스다.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본진출도 여의치 않던 상황이었다. 그의 에이전트와 대화를 나누다 한국행을 타진했더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단장은 코칭스태프에게 대체 외국인 선수로 선발투수, 구원투수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라고 했다. 코칭스태프는 미국에서 돌아온 최희섭, 부상에서 복귀할 김진우를 염두에 두고 구원투수를 희망했다. 물론 정단장과 코칭스태프는 선발감으로도 쓸 수 있는 외국인 투수도 확보해 뒀다. 현재 KIA 선발로 뛰고 있는 제이슨 스코비다.
서감독은 2005년 감독 대행을 거쳐 2006년 정식 감독으로 3년 계약을 했다. 2006년 시즌 후반기 쯤에 야구계에서는 “기본 1년 계약에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면 임기가 1년 더 보장되는 1+1 옵션계약”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정단장과 서감독은 “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정단장은 서감독에게 “2008년까지 팀을 장기적으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서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변화시키겠다”고 대답했다. 이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단장과 서감독은 상대를 가리켜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 정단장에게는 모험이다. 단장은 감독의 목을 자르면 자기 자리는 보존한다. 서감독에게도 모험이긴 마찬가지다. 단장만큼 책임을 전가시키기에 적당한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퇴장
대화가 진행될 즈음 TV에서 비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광주는 예외였다. 서감독의 입에서 “어째 여기는 비도 내리지 않나. 이럴 때 선수들이 쉬어야 하는데”하는 작은 푸념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이날 경기도 KIA는 0-1로 7회까지 두산에 끌려갔다. 이때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7회말 김상훈이 1루심의 하프 스윙 판정으로 삼진을 당한 후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다 배트를 집어던진 것이다.
김병주 1루심이 김상훈 선수에게 퇴장을 명하자 이번에는 서감독이 강력하게 항의를 하다 역시 퇴장을 당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서감독이 갑자기 의자를 집어던지고 배트를 부러뜨리며 불만을 터트렸다.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의도된 돌출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즉효는 없었다. 그 다음날 KIA는 또 졌으니까. 단장이나 감독은 원래 욕을 먹는 자리다. 정단장의 경우는 비난을 자청하는 면도 있다. 복지부동일수록 비난도 적은 법이니까.
그러나 원래 야구계는 찬사와 비난이 어느 순간 갑자기 자리바꿈을 하는 곳이다. 시즌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정단장과 서감독이 시즌 뒤에 받을 것은 비난일까, 찬사일까.”
첫댓글 결국 감독이 원하는 선수라면 다 해줬다는 얘긴데, 모든 삽질 트레이드건은 김성한 감독이 인정한 것처럼 김성한의 책임도 있는 거네요. 리오스도 그렇고... 리오스도 김성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죠. 유남호 때 트레이드 되긴 했지만...
아 엄청기네 그래서 지가 잘못한건 없다는건가?? 기자랑 인터뷰하면서도 담배를 피고 아주 그냥 덕아웃에서도 피더만 막나가네..당신이 선수들을 잘끌어오는건 인정하나 너무 터무니 없는 조건이어서 그렇지..심재학 FA이후 저런 삽질을 하고 있는데 아휴 속이 탄다 속이타..
그럼 선수 몽땅 다 팔아버리고, 아니아니 아예 팀 해체도 눈 앞에 두고서도 우리보다 잘 하는 현대는 뭔데? 프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세계..이딴 변명이나 하려면 일반인들처럼 연봉 3~4천만 받고 감독 하시길..괜히 몇 억씩 연봉 주는줄 아나
감으로 했었구나... 워낙 쟁쟁한 스타 많으니 거기다 똘똘 뭉친 팀워크.. 지금 그게 없으니... 코치들 그까이꺼 대충.. 했구나 흠... 알면 알수록 어려워 지는 타이거즈... 정 단장 서정환 지금 기아 선수들 불쌍 하다... 하지만 프로 인디.. 광주 신문 보면 아찔한 기아 선수들 나오는 데.. 그런건만 없으면.. 이해 할텐데 열십히 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이러지 않는데...
주전급 선수들의 전력이탈?... 핑계로 밖에 안보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도 모르나? 20경기 넘어가니까 약점이 노출 됐다? 아랫돌 빼서 윗로 맞추는 식이라... 그러기 전에 후보 1.5군.. 이런 선수들을 잘 다져놨어야지... 항상 100% 전력으로 게임하는 팀이 어딨나? 주전들을 뒷받침할 백업요원들 못 키운것도 코칭스텝 잘못이다. 정단장... 햇갈린다... 호사방 회원이 올렸던 글은 뭐란 말인가? 도대체 어디서 부터 꼬였단말인가?
님들 투수 여러명써서라도 1점도 안줘도 완봉승이락 하나욤 '펠릭스 로드리게스와 마무리 한기주가 깔끔히 이닝을 처리한 KIA가 두산에 2-0 완봉승을 거뒀다' 전 혼자 막은건줄 알고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