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떡국을 끓여놓고 갔다.
우스개 소리로 마누라가 며칠 마실 나갈 때는 삼식이를 위해서 곰국을 끓여놓고 간다던데...
곰국이 아닌 것만도 다행이지 않은가.
요즘이야 먹을 게 많지만 예전에는 보리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을 때는 떡국은 설이나 아니면
동네에서 결혼잔치가 있을 때 맛 볼 수 있는 진귀한 메뉴였다.
떡국은 멥쌀을 빻아 가루로 내어 쪄서 가래로 뽑아야 한다. 방앗간에서 가래를 뽑을 때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물에 담궜다가 건져내어 말려야 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갈래떡을 한 뼘정도 가위로 싹둑 잘라서
입에 넣고 베어 먹으면 꿀맛이었다. 떡국 가래가 적당히 꼬들꼬들하게 말랐을 때 도마 위에 놓고 칼로 잘라야 한다. 자를 때도 석봉 에미가 자르듯이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게 보기에도 예쁘게 잘라야 한다. 이웃에 살던 거실할매는 정월초하룻날 이웃 아낙네들이 가져오는 떡국을 그릇그릇 받아서 품평회를 했다. 가래를 썰은 모양을 보고 누구네집 떡국은 솜씨가 형편없다고 하면서 여자가 그래서는 못쓴다는 말까지 했다.
떡국을 끓여서 그릇에 펀 다음에는 그 위에 끼미를 얹었다. 맛을 내기 위해서다
끼미는 김을 구워서 바삭바삭할 때 손으로 비벼서 잘게 부수어 넣고 꿩고기를 짭조롬하게 볶아서 한 숟깔 떠 넣었다. 꿩이 없으면 '꿩 대신에 닭'이란 말과 같이 닭고기를 넣았다.
닭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도 되는 데 촌에서 쇠고기는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꾼이요 집안의 중요한 재산이기 때문이었다. 소를 잡는다는 생각은 아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마트에 가면 떡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명한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술도 막거리를 위시하여 소주 맥주 정종 와인 양주 등 없는 술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입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사람 모이는 곳에는 가지 못하게 하니
결혼식도 장례식에도 사람이 없다. 전에는 이맘때쯤이면 제자들이 찾아와 주례를 부탁해
나가면 식사대접도 받고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봉투로 차비를 하고도 남아 친구들과 술도 한 잔씩 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나라에서 또 재난지원금을 줄 모양이니 그 돈이라도 쳐다보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