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배기 딸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운명
시현아,
이 책은 문재인이라는 분이 쓴 책이야.
문재인.
아빠는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노무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단다.
아빠가 노무현 팬인 것은 알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운동 할 때 그의 주변에 문재인도 있었단다.
노무현 대통령이 멋진 친구라면서 소개를 하면서...
그래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봤었는데,
잘 생긴 것 뿐만 아니라,
걸어온 길도 힘들지만 바른 길을 걸어온 멋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신의, 믿음 같은 글씨가 써있는 듯 했단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친구라고 했지만, 나이는 6살 적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오랜 시간 힘들고 의로운 길을 함께 하였으니,
친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시현이도 나중에 커서,
노무현과 문재인과 같은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길 바래.
암튼,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변호사.
이들을 TV 화면에서만 봐도 뿌듯하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TV에 나온 문재인 변호사의 얼굴은 무서웠단다.
아주 무서운 사실을 알리기 위해 TV에 출현했거든...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이승에서 오랜 시절 함께했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알리는 것도,
친구이자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변호사의 몫이었단다.
대한민국은 깊은 슬픔에 빠졌단다.
아빠는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에 빠진단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은 아빠를 모르지만,
아빠는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배웠단다.
이 아빠의 훌륭한 스승 중에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참여 정부 5년 노무현 대통령을 측근들도 비난을 했었단다.
하지만, 그런 노무현 대통령을 끝까지 보좌하고 믿음을 주었던 사람들 중에 한명 문재인 변호사.
아빠가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니?
문재인 변호사는 지금은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셔.
아빠도 노무현 재단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으니,
아주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는,
그의 가르침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빠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큰 안타까움이었단다.
변변한 회고록 하나 남기지 않으셨지.
그래서 문재인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책도 낸거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사람들에게도 서문을 통해 정식으로 요청을 했단다.
'함께 쓰는 회고록'을 쓰자고...
1. 노무현을 만나기 전 문재인
문재인의 부모님은 함경도 함흥 출신이었단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을 거쳐 거제도로 피난을 오셨지.
거제도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짐도 거의 없이 와서 무척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하더구나.
그런 시절에 문재인은 태어났다고 한다.
부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어린시절의 문재인은 늘 가난이 따라다녔다고 하는구나.
믿기지는 않지만, 중고딩때는 문제아였다고 하더라.
술, 담배도 그때 배웠다고....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문제아였다기 보다는,
십대면 누구나 하고 싶은 약간의 반항이었다고 생각되는구나.
사춘기가 지난 중고등학생이 되면 갑자기 사고가 성숙해지면서,
자기 주장을 펴고 싶어 하거든, 그것이 반항의 형태로 주고 나타나고,
그 반항의 핵심은 '나도 이제 어른이다'라는 생각이거든,
어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술과 담배이고...
시현이도 그시절이 되면 생각이 성숙해질텐데,
우리 시현이도 그때가 되면 아빠한테 반항하려나?^^
이야기가 다른데로 빠졌구나.
문재인이 자기 스스로 문제아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게 있다고 하구나. 그건 바로 책.
집안이 가난해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접한 이후,
활자 중독에 가까운 책읽기를 했다는구나.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올바르고, 이해심 깊고, 그리고 글도 아주 잘 쓴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책도 너무 술술 읽힌단다.
단독으로는 처음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솜씨가 아주 좋단다.
참고로, 아빠가 평가하기를 글솜씨는 얼마나 읽기 쉽게 썼느냐에 있단다.
암튼, 문제인은 십대의 방황으로,
대학 시험에서 재수를 하고, 재수를 할때도 바로 붙지 못하고 후기인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은 들어갔지만, 낭만을 즐기기에 상황이 좋지 않았어.
군사 독재 시절이었거든.
문재인도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대학 시위를 주도했단다.
그로 인해 구속 수감되고, 제적까지 당했ㅈ.
그당시 그런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되면 대부분 군대를 갔단다.
문재인도 군대를 갔는데,
군대 특전사령부, 일명 특전대에 입대를 했어.
특전대는 훈련이 강하기로 유명하단다.
책에 그의 사진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데,
군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인상적이구나.
책이 많이 팔리면서, 이 사진들이 인터넷에도 회자되어,
많은 사람들이 '역시, 문재인!'이라고 말하게 했었단다.
군대를 제대해도, 아직 제적상태라 학교 복학이 안되어,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하는구나.
1980년 복학이 가능해져서 복학을 했지만,
여전히 편히 앉아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단다.
다시 시위에 참여했고,
다시 구속수감당하고...
그런데, 구속수감 중에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받았어.
그리고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학생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판사로 임명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재인은 변호사로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때 선배의 소개로 노무현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80년대 초반이니까, 약 30년 전이구나.
2. 그들의 만남
문재인이 노무현과 만난 시기.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군사 정권이라는 우울한 장막이 온하늘을 덮고 있던 시절이란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어려웠고,
권력의 폭력이 최고조이던 시절이었단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잡혀갈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아빠도 나중에 커서 알았지.
그런 시절이 한참 이어지던 시절...
노무현과 문재인은 만나자마자 부산에서 변호사 동업을 시작했단다.
문재인을 처음 만난 노무현은 이미 판사도 했었고,
변호사 생활도 어느 정도 했던 경험많은 법률가였어.
그래도 노무현은 문재인을 동일하게 대우해 주었다고 한다.
사무실도 노무현이 혼자 쓰고 있던 것인데, 같이 쓰고..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그릇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협동 법률사무소.
그것이 그들이 처음 동업을 하면서 만든 법률사무소란다.
그들은 '깨끗한 변호사'를 표방했어.
당시 관례로 받는 소개비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
남들이 꺼려하는 시국 사건, 노동 관련 사건의 변호도 거절하지 않고 했다고 하더구나.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지 시작한 것이야.
83년 부산 민주화 운동 단체가 생겨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문재인과 노무현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단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전국으로 일어났는데,
이때 두 분 모두 항쟁을 주도했대.
그러면서, 당시 군사 정권에 감시를 받기 시작했고,
대우조선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노무현만 변호사 자격 정지를 당했어.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승리를 이끌었던 민주 계열이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양분되면서, 결국 대통령은 전두환의 아바타격인 노태우가 되었단다.
민주화를 이끌었던 이들은 침통한 분위기였지.
이 대선 패배 이후,
김영삼은 노무현에게 국회의원을 해보라고 했었단다.
노무현의 자신의 일이지만,
같이 일했던 문재인과 부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물어봤대.
그리고, 그들의 뜻을 조율하여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어.
정치인 노무현의 길이 시작된거야.
그리고 88년 가을 5공비리 청문회를 했었는데,
거침없는 언변과 촌철살인의 질문으로 많은 백성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단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빠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뉴스마다 나온 노무현이 기억나는구나.
그 이후에도 노무현은
김영삼의 배신 행위의 절정인 3당 합당에 반대를 하고,
그가 생각하는 원칙주의에 따라 행동했단다.
시현이도 알게 되겠지만,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을 했어.
하지만, 그로 인해 번번히 낙선을 하게 되었단다.
오히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성원을 받았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
그 이후, 그 힘은 노무현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단다.
한편, 노무현이 정치에 뛰어든 후,
문재인은 계속 인권 변호사로 일했어.
89년 동의대 사건을 비롯하여 많은 시국 사건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노무현과 다시 일하게 된 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선거 때였지.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이후 지지도가 하락했는데,
이때 노무현은 문재인한테 부산의 선거대책위원회를 부탁했단다.
그래서 다시 문재인은 노무현과 함께 하게 되었지.
3.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노무현은 문재인에게 참여정부의 핵심 역할을 부탁했어.
민정수석이라는 직책이었단다.
문재인은 변호사보다 수입도 적었다는 비화를 이야기했는데,
문재인은 노무현를 보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문재인은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
민정수석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왔단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일하고는 직책인데도 관사도 없어서, 직접 전세를 얻어야 한다고 하는구나.
그것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문재인은 이야기한다.
처음 참여 정부 인사 결정하는데 있었던 뒷이야기,
여러 정책 결정 과정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 등을
이야기해주었어.
민정수석으로 일한지 일 년 정도 지난 다음,
문재인은 잠시 청와대를 떠나게 된다.
이 휴식기에 문재인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게 되는데,
이국땅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였단다.
다시 청와대에 와서 시민사회수석 직책을 맡았고,
나중에 다시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으로 끝까지 노무현과 함께 했단다.
참여정부 5년의 성과와 반성에 대한 글들이 이어졌는데,
그들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백성들이 아빠는 안타까울 뿐이란다.
대통령 직을 마치고,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으로 내려갔고,
문재인 역시 고향 근처인 양산으로 내려갔단다.
퇴임 이후, 노무현은 시민 운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단다.
그를 찾아오는 많은 백성들과 이야기도 하고...
너무 행복해 보였단다.
그의 행복한 모습을 이명박정부가 시기한 것 같았어.
그를 못살게 굴었지..
그 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도 못살게 굴었단다.
그런 것을 노무현 대통령은 참을 수 없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단다.
문재인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노무현의 숙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래, 노무현은 그렇게 떠났지만,
노무현의 뜻을 받드는 사람들에게는 큰 숙제를 남기고 떠난 것이란다.
문재인도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할 거라 생각된다.
직접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겠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떤 방법이든, 정권교체가 꼭 되어,
그것도 노무현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책제목 : 문재인의 운명
지은이 : 문재인
펴낸곳 : 가교
페이지 : 468 page
펴낸날 : 2011년 06월 15일
정가 : 16,000원
읽은날 : 2011.09.06~09.09
글쓴날 : 2011.09.14,16,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