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현진입니다.
지난 5월, 6월 책모임 잘 마쳤습니다. 공유가 너무 늦어지게 되었네요.
귀한 모임, 귀한 글 도움이 되도록 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2026년 5월에는 신현환, 김상진, 송현진 총 세분이 함께 했습니다.
신현환, 인공지능 시대 사회복지사의 길, 김세진
AI의 파도가 거셉니다. 사회복지 현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안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누군가는 소극적으로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AI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김세진 선생님이 AI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과 글을 모아서 책을 내셨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책을 받아 든 그날에 전부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 소회를 들었지만, 글로 보니 그 뜻이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AI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입니다. 여러 행정을 자동화하거나 반자동화하는데 도움받습니다. 내 생각이나 기록을 넣어서 글을 다듬기도 합니다. 중복되는 문장이나 어수선한 문장, 일관되지 않은 주장 등을 정리합니다. 다양한 기록을 넣어서 큰 줄기를 읽어내고 핵심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이전까지는 어떻게 일해왔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만큼 AI가 내 삶에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AI를 바라보는 사회사업가의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요? 모두 AI에 맡겨야 할까요? 김세진 선생님의 주장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AI로 사람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명확해졌습니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지역사회를 만나야 합니다. 부지런히 발품 팔며 당사자의 삶터와 지역사회 사람사이를 누벼야 합니다. 그 이외의 행정과 일부 기록을 AI에 맡기는 겁니다. AI가 이런 일을 대신 해주니 우리는 시간을 얻을 수 있지요. 이렇게 얻은 시간을 이제는 사회사업에 온전히 쏟아야 할 겁니다.
AI 때문에 사람과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인정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오직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대화하고, 역할을 맡고, 서로 조금씩 이바지하는 일이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입니다.
AI로 사람을 대체하면 인간 사회가 점점 더 삭막해질 겁니다. 모니터나 스마트폰, 스마트안경 따위와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한다면 사람의 인정은 점점 더 메말라 갈지도 모릅니다. 인정이 메마른 사회는 사람이 살기 어렵습니다. 약자는 더 그렇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이런 사회를 경계합니다.
AI. 잘 쓰고 싶습니다. 이로써 사회사업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도 AI 사용을 경계하고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의 내용은 밑줄 그은 내용입니다.
인간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왜곡된 거울은 항상 나를 칭찬하고 수용하기만 합니다. 결국 일반적 소통이 비대해진 자아를 만듭니다. (…) 내 생각만 옳다고 믿으며 자신중심적인 세계관이 비대해지는 겁니다. 인공지능의 조건없는 수용은 실제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이것에만 중독될 때 우리는 진짜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29쪽)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바로 이 행위에서 발생합니다. (…) 타인과 관계 맺고 자기 고유함을 드러내는 일거리(행위)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집니다. 공동체를 돌보거나 책을 쓰고 나누고 작곡하고 연주하고 여행하며 어울리는 일이 행위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33쪽)
이렇게 확보한 시간은 더욱 당사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일에 사용합니다. (…) 이해하기 어려운 약자의 그 마음과 모습을 알아주고 품어주는 존재가 사회에서 사라지는 불행한 일입니다. (37쪽)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건 지적 호기심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쌓아 숙성하면 이것이 지적 호기심으로 넘어갑니다. (39쪽)
실천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우정과 환대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술 진보 이후 더욱 사회사업가는 사람 사이 관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겁니다. 우리는 우정 인정 사랑 애정을 생동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41쪽)
리 카이푸는 인공지능 시대 사회사업가들에게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두뇌와 가슴’으로 사람들을 공감하는 일에 매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스스로 숨어드는 개인적 고립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시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감 능력을 지난 ‘사람’뿐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지능으로만 풀어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44쪽)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르 ㄹ가꾸고 다듬는 일에 사회사업의 미래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공감하려면 당사자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그 호기심은 살아 있는 질문을 만듭니다. 질문 뒤 진심 어린 경청이 따를 때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46쪽)
결국, 다시 처음입니다. 본디 사회사업이 그러했습니다. 사회사업가가 진단, 사정하여 제시하는 계획서에 당사자가 따르는 방식은 이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끝가지 당신 삶이게 하고, 어떻게든 어울려 살게 거드는 일이야말로 사회사업가다운 실천이며, 그럴 때 맞이하는 미래 사회는 큰 어려움 없이 맞이할 겁니다. 오히려 다가오는 사회는 그런 사회사업가를 기다릴 겁니다. (49쪽)
함께 울기도 하고, 잠시 침묵할 뿐입니다. ‘인공’으로 할 수 없는 이런 진짜 마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52쪽)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본질은 변하지 말고, 방법은 달라질 거라 말합니다. 변치 않는 사회사업 본질은 사람 사이 어울림입니다. (54쪽)
김상진,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오직 일에 자존심을 건 사람만이 화를 낸다.
일에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뒤에서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빈정거릴지언정 화내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내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 생각하며, 일에 자기 자신을 걸지 않는 사람은 일할 때 감정 소모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화내는 디자이너, 화내는 마케터, 화내는 작가, 당장은 까다롭고 불편한 이야기일지라도 길게 보면 서로의 작업을 위해 확실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까놓고 말해 주는 사람들을 줄곧 좋아했다.
내게 ‘조종하지 말라’ 화냈던 디자이너는 일에 자존심이 있는 디자이너였다. 표지 시안을 줄 때도 적당히 끼워 넣는 ‘컨펌용 스페어 시안’을 멋쩍게 같이 올리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끝까지 매달려 작업한 게 분명한 완성도 높은 시안만 보여 주었다. 스스로 작업한 결과물에 마음을 준 사람, 그 작업에서 지켜 내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만이 일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화도 내는 법이다.
문학동네의 비문학 편집자가 쓴 책입니다. 편집자는 기획부터 발간까지 책을 만드는 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저자가 디자인팀 사람이랑 싸운 얘기가 나오는데, 그가 저자에게 "조종하지 말라"고 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인용 구절같은 깨달음에 이릅니다. 자존심을 걸고 잘해보고 싶어서 화를 낸 거구나 하고요. 저도 일하다보면 비슷한 상황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료 역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일이고 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하는 그런 신뢰로 동료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언젠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대표가 손님에게 자신의 식당 메뉴와 음식 먹는 법에 대해 설명할 때 쓴다는 화법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문을 연다고 했다. “물론 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가르치거나 과시하거나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또 손님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유용한 정보를 건네는 화법이다. 나는 규범 표기와 표준어 교정을 제안할 때 백종원 대표의 화법을 빌린다. ‘선생님께서도 이미 이것이 규범 표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쓰신 것일 수도 있지만, 정석으로는 이러이러한 단어도 있더라’고, 그럼에도 더욱 맛있게 표현하는 선생님만의 방식과 단어가 있다면 그것을 따르겠노라고 말이다.
작가의 글을 수정을 하거나 다른 의견을 전할 때 빨간펜 들고 일방적으로 고치거나 이게 맞다고 해버리면, 정작 의견이 작가에게 가닿지 않죠. 더군다나 그 책은 저자의 창작물이니 저자가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 맞지요. 이는 우리가 당사자를 도울 때도 유용해 보입니다. 당사자의 삶은 당사자의 것이니 그가 이룰 수 있게 이런 화법으로 당사자가 주체가 되게 돕는 것이 맞겠습니다. 한발 나아가 저자는 글을 수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평소 작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가 그것을 기준으로 제안한다고 합니다. 이 역시 당사자와 잘 소통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음…… 연실아, 작가들은 그렇게 멋지거나 예의 바른 인간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지.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거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을 먹여살리지’ 같은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고민을 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대체 뭘까’ 따위의 뜬구름 잡는 고민을 하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인간들이기도 해. (중략)
작가에게 많은 걸 요구하거나 작품 외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마. 잘하려면 미쳐야 되고, 미친 사람들은 작아. 협소하고 편협해. 하지만 그렇게 좁기에 깊이, 아주 깊숙이 내려갈 수 있는 거지. 그리고 편집자는 이 미친 자들에게 약간의 안쓰러움과 드넓은 애정을 품고서 그 좁지만 끝 모를 깊은 세계에 넓이를 확보해 주는 사람이야. 괜찮으니 계속 부루마불을 해 보라고 새 판을 깔아 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
작가는 정말 이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의미를 찾아내고 싶어하는 존재고, 그런 점에서 자신만의 부루마불을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작가를 내가 만나는 사회사업 당사자라 생각해봅니다. 당사자 역시 자신만의 부루마불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 다르게 볼 눈과 이해할 여지가 조금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첫댓글 송현진 선생님, 인천책사넷 이야기 고맙습니다.
신환환 선생님, 김상진 선생님 독후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기록은 실제로 무척이나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현장에서도 더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