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간 악성 베토벤. 그가 죽은 후 서랍 속에서는 3통의 편지가 발견된다. 수신인의 이름이 없이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만 쓰인 서신에서 그는 아주 열렬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베토벤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명쾌하게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 러브레터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그 후보가 될만한 ‘불멸의 연인’을 알아보자.
베티나 브렌타노(1785~1859) 여류 시인이었던 베티나는 괴테와 베토벤 사이에 맺어지는 돈독한 우정의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이다. 한때 베티나의 신선한 매력은 베토벤을 사로잡았고 이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베티나가 아르님이라는 시인과 결혼했을 때 베토벤은 심정이야 어쨌든간에 이 아름다운 신부를 축하하며 소네트를 지어보냈다.
요제피네 브룬스빅(1799~1821) 요제피네는 헝가리 귀족출신인 브룬스빅 가문의 두 딸 중 한 사람. 두 딸 모두 빈에서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는데, 후에 브룬스빅 자매는 베토벤과의 염문으로 아주 유명해졌다. 베토벤은 요제피네가 남편을 잃은 뒤 그녀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고, 요제피네의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열정적인 편지들을 보내기도 해서 베토벤이 죽은 후 요제피네가 이 서한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테레제 브룬스빅(1775~1861) 테레제는 “베토벤이 관심을 가졌던 인물은 언제나 자신의 여동생 요제피네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생애를 연구해온 세이어나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과 같은 여러 권위자들은 테레제야말로 베토벤의 ‘불명의 연인’이라고 단정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한 장의 초상화인데, 베토벤의 서랍속에서 ‘불멸의 연인’이라 이름 붙여진 그 유명한 편지와 함께 발견된 그림이 바로 테레제의 초상화였다.
줄리에타 귀차르디(1784~1856) 베토벤이 그 유명한 ‘월광’ 소나타를 바치게 만든 장본인이다. 베토벤이 줄리에타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그의 나이 30세, 그리고 줄리에타는 17세였다. 그녀는 3년 뒤 가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한다. 베토벤이 죽고 난 후 그의 유품 중에서 줄리에타의 초상이 발견되었고, 베토벤과 절친했던 안톤 쉰들러는 줄리에타야말로 베토벤이 말한 ‘불멸의 연인’이었다고 증언한다.
마리아 에르되디(1779~1837) 17세의 나이에 헝가리의 백작과 결혼한 마리아는 베토벤의 여자친구들 가운데 가장 요염했다. 빼어난 용모를 갖고 있었으나 가난 때문에 고생을 해서 약간 병약한 체질이었고, 베토벤과는 자주 함께 연주를 했다. 1808년에 베토벤이 잘 꾸며진 마리아의 아파트 방 한 칸에서 거처하게 되자, 이들이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소문들이 터져 나왔다. 5개월이 자난 후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고 베토벤이 그 집을 떠났다. 결국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마리아와 베토벤은 친구 관계 정도로는 그 사이가 회복됐다.
도로테아 폰 에르트만(1781~1849) 피아니스트였던 도로테아는 베토벤과 20년 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남편은 오스트리아 군대의 장군이었는데, 이들 부부는 베토벤과 그의 음악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연주하기도 했다. 베토벤에 관해 연구해온 게오르그 마렉은 ‘불멸의 연인’으로 도로테아가 가장 유력하다고 꼽고 있다. 그 이유인즉 도로테아는 육체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이며, 음악적 재능과 좋은 품성의 소유자였고, 친구 관계를 유지해온 기간이 누구보다도 길었다는 점 때문이다.
라헬 바른하겐 폰 엔제(1771~1833)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가졌던 젊은 유태계 여성으로 당시 베를린에서 문학살롱을 주최했다. 라헬의 매력에 압도당한 베토벤은 그녀를 위해 자신의 즉흥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있는 연인에게’는 이 여성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막달레네 빌만(1775~1801) 막달레네는 베토벤이 고향 본에 있을 때부터 잘 알고 있던 가수였다. 막달레네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베토벤은 빈에서 이 여성에게 청혼을 했고, 그리고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 위대한 작곡가의 청혼을 그녀가 받아들였다면 혹시 우리는 조금 다른 색채의 베토벤을 오늘날 듣게 되지 않았을까?
-월간음악 1994년 11월호 중-
너무나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참 불쌍한 남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어쩌면 그럴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나 그가 처한 현실이 참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음악들은 오늘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멋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