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와 소주(쑤조우)의 호구
(호랑이 언덕 tiger hill 이라는 뜻)
중국에는 대체로 산이 별로 없습니다. 베이징 부근을 봐도 그렇고 특히 양자강 이남의 상해 소주 등에는 거의 산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평야이고, 그 평야에는 갈래 갈래 물길이 흐릅니다.
소주에 가면 호구라는 언덕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해용산 이었답니다. 그런데 산이라고 해봐야 해발 38 meter….랍니다.
그럼에도 소주 근처에 산이 없다보니 멀리서도 보입니다.
이 호구에 많은 유적지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호구 앞에 내려 표를 끊고 입구를 향해 제법 걸어가야 하는데, 거기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구탑이 저~기 보이는데 주차장에 웬 커다란 솥이 있습니다.

발이 세 개이고 겉은 무서운 형상의 사람이 새겨져 있습니다. 솥이 어마어마하게 크죠. 단 위에 올려져 있는데 그 단에 새겨진 글자는 주왕(?)오정 인데 가운데 글자는 제가 무지하여 모르겠습니다. 대충 미루어 보건데 주왕의 보물인 이 솥이 오나라의 것이 되었다..뭐 이런 뜻일 겁니다.
이 솥의 유래가 매우 깁니다.
원래 중국의 고대국가는 하-은-주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하-은-주 이전의 전설속의 고대국가가 3 황 5 제 시대 입니다. 3황 5 제는 전설속의 국가라 하여 사마천 사기에 기록을 하지 않았고, 사기는 하나라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라를 세운 임금이 우 임금인데, 중국 최고의 이상국가로 치는 요임금-순임금을 거쳐 우 가임금이 되자 그는 각 지방에서 솥을 하나씩 만들게 하여 바치게 하였고 9 주에서 모두 9개의 솥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후 하나라-은나라(상나라)-주나라를 거치면서 이 9 개의 솥 중 다 멸실되고 하나가 남아 주나라에 보존되었으며, 이 솥은 천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주나라 말기가 되자 힘이 떨어져 춘추 전국시대가 되었는데, 이 시기에 5명의 패자가 나타났고 이들은 유명무실한 주나라 천자를 개무시 하고 스스로 제후들을 불러 모아 천자에 버금가는 힘을 과시하곤 합니다.
오나라에서는 합려 혹은 부차가 패자의 반열에 듭니다.
이 솥은 합려 혹은 부차가 패자로서 중국 천하를 호령하던 것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듯 합니다. .주나라의 보물을 이 오나라가 가지고 왔다...즉 이곳이 한때 천하의 중심이엇더라...…이런 식인 겁니다. 물론, 주나라 때의 그 솥은 아니죠. 그 솥은 춘추 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언제인가 사라져 버렸고, 진시황이 그 솥을 찾기 위해 짐작되는 곳을 다 훑었는데 결국 못 찾았다고 합니다.
소주 여행기를 훑어 보아도 이 솥에 대한 언급을 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 적습니다. 오리지날 유물은 아니지만 상징성이 큰 솥이며, 이름은 구정이라고 합니다.

입구에 달필로 오나라 제일의 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현판들이 있는데 대부분 어디서 들어 본듯한 대가들의 글씨랍니다.

저 멀리 호구의 가장 유명한 호구탑이 보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은 당나라 때 만들었다는 건물인데, 저기를 통과하여 상당히 긴 길을 올라갑니다.

올라가다 왼편에 보면 작은 돌출된 우물이 있는데 한한천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감천이라고 하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들 하는데, 무슨 연유로 그런 억측을 하는지는 모릅니다. 만들어지기로는 서기 500년 쯤에 양나라 사람이 중이 되어 호구에 있었는데, 절이 산위에 있다보니 매일 물을 길으러 내려와야 했는데, 어느 날 길가에서 잠이 깜빡 들었다가 ,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그 자리를 파면 샘이 나올 거라 해서 팠더니 실제로 물이 나왔다나요. 뭐 믿거나 말거나 일 듯.
아무튼 1500년 된 우물은 맞는데, 여기 산 위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도 신기한 일 입니다.

우측에는 시검석이 있습니다. 시금석 아닙니다.^^
시검석은 말 그대로 검을 시험했던 돌이라는 뜻 입니다.
이제부터 오나라 왕 합려와 그의 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양자감 이남의 오나라와 그 이웃 나라인 월나라는 모두 철의 산지로 유명하였으며, 따라서 검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합려는 특히 보검을 좋아하였답니다.
월왕 구천이 보검을 한 자루 오왕합려에게 선물 했습니다. 합려는 오나라의 마지막 왕인 부차의 아버지 입니다.
검을 받은 합려는 기분이 좋다기 보다 오히려 기분이 나빴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보검을 만들 사람이 없단 말인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는데, 당시 검의 명인은 간장과 그 아내 막야 였습니다. 합려의 명을 받은 간장과 막사는 구리를 캐고 풀무질하면서 녹였는데 구리가 녹지를 않아서, 그들과 일꾼들의 모발과 손톱을 깎아 넣은 후에야 비로소 녹기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검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간장은 하나가 아니라 두개의 검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헤아려 보니, 필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듯 하여 만약 그가 죽으면 복수를 하기 위해 하나를 더 만든 겁니다.
이윽고 검이 만들어지자 웅검(수컷)은 간장이라 하고 자검(암컷)은 막야라 이름하고, 만삭의 아내 막야를 두고 간장검을 들고 합려에게 갔습니다.
합려가 칼 감정가에게 이 칼을 보여 주니, 그가 말하길 이것은 천하의 명검으로 몇 개의 성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 이 검은 반드시 짝이 되는 다른 검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 하니 합려가 노하여 간장을 죽여버렸습니다.
간장이 떠날 때 뱃속에 있던 아이는 피신하게 되었고, 장성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산속에서 홀로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 연유를 묻고는, 현상금이 걸린 그 아들의 목과 먁야검을 주면 원수를 갚아 주겠노라고 약속하였고, 그 나그네는 그 칼과 베어낸 머리를 들고 합려를 찾아 갔습니다. 마침내 솥 속에 아들의 머리를 넣고 삶다가 합려가 가까이 온 틈을 타 합려의 목을 베고 자신의 목도 베어 버리니 솥 안에서 세 개의 머리가 뒤섞여 누가 누구인지 구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할 수 없이 세 머리를 함께 묻어 삼왕묘라 이름 하였답니다.

이 바위에 난 날카로운 절단면은 바로 그 간장검을 시험하기 위해 내려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생긴 자국이라고 합니다.
( 합려는 사실은 월왕 구천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 이야기는 종종 합려 대신 초나라 왕으로 대신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