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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의 기운 天授한, 岩의 정기 타고난 영암사람들...靈의 신령스런 말로 빌어주고, 자신을 품격 있게 하자
신령 영, 쓸데없는 말 아닌 상생 주문
좋아지도록 한 영기 받은 사람이 되자
청사(靑巳)의 기운이 서린 을사년(乙巳年) 2025, 기어오름이라는 나아감, 생각이 깊고 침착하게 행동한다는 심중함, 허물을 벗는다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 새로운 재생과 영생 그리고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다산성의 풍요와 재물, 기복과 생명의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 이런 상징성을 갖고 있는 뱀이다. 이런 기운이 서려지고 있는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근데 뱀은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림 거린다. 이런 뱀을 보고 우리는 무서운 독을 뿜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길 다란 혀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에 그리 반가운 동물로 보질 않는다.
하지만, 뱀은 사람의 혀와는 다름이 있다는 것을...알고 보면 좋은 상서로운 동물이다.
사람들은 혀를 통해 말을 한다. 세치 혀로 수다 떨고, 유혹하고, 심지어 이간질하고, 안 좋은 말만 해된다. 그래서 세치 혀를 날름거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항상 입조심, 말조심, 혀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뱀의 혀 날름거림을 유혹의 사탄, 이간질, 수다의 대명사로 문화적 오해를 했다. 그러난 뱀은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림으로 냄새를 맡을 뿐이다. 다른 물질을 탐색하고 감지하기 위해 혀를 사용한다.
벰은 혀를 놀리지만, 안 좋은 말들을 많이 해되는 동물은 어니다. 오로지 냄새와 탐색, 감지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영암은 한문으로 ‘신령 영(靈)자와 바위 암(岩)’ 자를 쓴다. 영암의 영자에는 입 구(口)자가 세 개나 들어져있다. 그래서 입 구자가 많다고 하여 영암사람들은 말이 많다고 본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틀렸다. 신령 영(靈)자는 갑골문에서는 ‘무당이 비를 내려달라고 세 번의 주문을 외운다’ 는 뜻에서 쓰였다. 영자를 살펴보면 비 우(雨), 입 구(口), 무당 무(巫)가 합쳐진 한자이다. 그리고 암은 뫼 산(山)과 돌 석(石)자 합쳐진 한자이다. 바위 암(岩)으로서 산(山)이 온통 돌(石)로 되어있다는 뜻으로 만든 한자이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바위산에는 신령의 기운이 서려져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령의 기운은 바로 무당이 세 번의 기도로 비를 내리는 주문으로 인하여 신비를 드러내듯이 영은 영험함이 깃든 신기함과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바위가 있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험난할 만큼 바위가 드세고, 기운차다. 이런 바위의 기운을 받으면 장수한다거나, 큰 인물이 나온다고 본다. 영암 월출산은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들이 많다. 큰바위얼굴을 비롯해 통천문, 남근석, 여근석, 돼지바위 등 바위마다 영험함이 깃들어져있다.
신당이나 절을 방문할 때 자연에 깃든 신의 터주, 산신, 목신, 바위에 깃든 미륵신과 바다의 용왕 등등은 보통의 사람보다 영감이 예민하거나 신의 가물(加物)이 일반인보다 조금 더 강하여 무당과 가깝다거나 혹은 일반인과 무당 그 사이 어디쯤 되는 기운을 가졌거나 하는 분들은 무언가를 몸에 그 절이나, 신당의 신 기운에 따른 반응이 나타난다. 월출산 같은 영험한 바위가 있다면 그 신기는 더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영험함이 있어 바위 암(巖)로도 쓰이는 영암이다.
영암사람들은 말이 많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특별히 몇 가지를 들어본다면, ‘남 잘 된 꼴을 못 본다는 것과 남을 흉보는 일이 잦다는 것’ 이다. ‘칭찬보다 비판과 질책, 긍정보다 부정과 혐오, 안정보다는 공포와 불안, 인정보다는 불신과 대립, 협조보다는 불만과 폭력, 상생보다는 상극과 상충, 발전보다는 훼손과 파탄’ 에 더 치우치며 말을 해된 영암사람들로 여긴 편이다.
지금 영암 사회에서는 온갖 것 ‘부정과 불신, 비판과 증오’ 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상생은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로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다분하다.
그런 말을 해되는 사람은 뱀의 혀보다 못한 사람이 아닌가한다. 그런 세치의 혀는 악마의 혀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도 못되는 사람 마음속은 알지 못한다고 했던가!’ 겉으로는 웃으며 악수해도 그 속이 얼마나 음흉한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뒤돌아서서는 어떤 좋지 않은 말을 해될지 모른다. 이중성격과 이중플레이를 한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고, 다시는 상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겉으로 판가름 할 수 없는 사람의 진실! 착각과 망상의 늪에 빠지면 하늘도 구제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본심을 알면, 그저 소름이 끼칠 때가 많다. 참 무서운 사람들의 마음을 경험할수록 더욱 더 자신을 성찰하고 바로 서려고 한다.
그 사람 앞에서는 좋게 말하고, 뒤에서 뒷담화하는 그런 나쁜 습성을 ‘악마의 습성’ 이라고 한다. 앞에서 칭찬하면서 뒤에서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가장 ‘저열하고 치사하고, 나쁜 사람’ 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린 정도로 멀리하라 한다.
어떤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반긴다. 그러더니 내게는 잔뜩 칭찬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은근히 허물을 늘어놓는다. 어떤 말이든지 일단 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고, 부메랑과 같아서 좋은 일이든 나쁜 말이든 언젠가는 그 말이 되돌아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다 거들 때가 온다. 그러니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아무도 못 들을 줄 알고 혼잣말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라고 했는데, 그것이 메아리 되어 온 천지를 가득 메웠다. 그럴 줄 알았겠는가? 남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자신이 한 말이 남도 알게 됐으니 얼마나 기겁했겠느냐고 하면서 입을 가벼이 하지 말라고 심신 당부한다. 아무리 착해도 함부로 말하는 것은 비단 이불에 오줌 싸는 것과 같다고,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별해야한다고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세치 혀라고 한다.
남을 지적은 할 수 있다. 애정 어린 충고(忠告)나 비판(批判) 혹은 비평(批評)은 할 수 있다. 남을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 하지만 그 충고와 비판, 비평이 애정 어린 비판이라면 받아주겠지만, 원색적인 표현과 비판일색 분위기이라면, 상식에 벗어나고 도를 넘은 일이라면, 어떠한 감정이 들어가거나 음해성으로 그런다면 상황을 달라짐이다. 그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더럽고 추한 못된 심술보에 불과하다. 만약 비판하고 싶다면 자신부터 참됨을 먼저 보여주고 실천하는가에 되돌아보고 난 후 그런 비판과 비평을 해야 만이 도리다.
영(靈)의 탈을 쓰고 말을 해되는 사람이라면, 암(岩)적인 존재는 영험의 기운이 서게 해야 한다. 진정한 영암사람이라면, 올바른 영암사람이라면, 생각이 있는 영암사람이라면 절대 신령 영(靈)의 입 구(口) 세 개를 그릇되게 해석하고 쓰질 않을 것이다. 무당이 좋은 의미로 세 번의 주문을 외워 입 구(口)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듯이, 우리도 영에 대한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들을 해돼야한다.
행어 고의성이든 아니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음해하거나,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이간질하거나, 남을 부추겨 일으키는 선동을 했다면, 깊이 반성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2025년이 됐으면 한다. 이런 행위는 본의 아니게 격(格)이 떨어진 건가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만에 하나 자칫 그릇된 행동을 계속 보여준다면, 어느 누구도 그 지남침에 이해하고, 용서를 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격을 떨어뜨리는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영암이 사는 일이요, 아름다워지는 일이다. 훌륭하고 위대해지는 밝은 미래를 낳은 일이 될 것이다.
남의 험담을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절대 옮기면 안 된다. 이 사람에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 저 말하며 말 옮기는 사람은 바퀴벌레와 같으니 그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해주고 싶다. 사람은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좋은 말을 많이 해야 좋은 사람이 된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부드럽고 듣기 좋고 예쁘고 고상한 말을 하면 고상한 인품이고, 욕하고 성질내고 뒷담화 좋아하는 것은 싸구려 저품질이다. 영암의 영(靈)자로 인해 말이 많다고 한데, 나쁜 말을 하라는 뜻으로써의 쓰는 영자가 아니다. 영은 바른 세치의 혀를 가진 품격이 있는 멋진 한자이다. 이런 영을 우린 왜곡되게 하거나 더럽혀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실수를 할 떼 바로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해준다. 하지만 실수를 범했는데도 전혀 반성이 기미가 없다면,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기본 양심마저도 져버리는 인간성 결어로 볼 뿐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본의 아닌 일을 보여줄 때도 있다. 잘해보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안 되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 받지 못한 일들을 할 때가 더러 있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듯이 너무 실수에 대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상대가 자신이 실수를 하거나 아니 된 일로 자꾸 문제를 삼고 비판하거나 욕을 하며 미워한다면, 그건 나쁜 사람이다. 보복심에서 미워하고 싫어하고 잘 못 되기를 바란다면, 그런 자신이 더 증오의 대상자가 될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음모론으로 상대를 음해하려하거나 저해, 방해, 훼손, 피해 등을 자행하는 등의 음모론을 퍼뜨리며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질서를 파괴하려고 드는 사람이라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일을 하다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고 불신을 한다면, 불신을 당한 사람은 마음이 상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적으로 오는 환란과 고난과 역경과 가난과 혼란도 감당키 어려운 적(敵)이지만, 또 하나 무서운 적은 우리 속에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다. 어느 한 사람의 능력에 대한 불신, 이것이 곳 믿음의 사랑의 내적인 적이다. 남을 불신하는 일은 자신을 불신하는 일이다.
남이 기대를 한만큼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도 더 잘하라고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서로 고운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열어 ‘능력저하 VS 불신해소’ 의견 엇갈리더라도 능력저하는 발휘하도록 하는 도움과 응원으로 불신해소를 해야만 진정한 사람이며, 영암사람이라면 영암 일에 거세진 때리기...불신유도로 지지층 결집 노림수가 아닌 부드러운 터치로...신뢰상승 지지층 결집 노림수를 보여줘야 한다. 거세진 사람 때리기...불신유도, 지지층 결집 노림수는 어느 한 사람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일로, 그 사람을 향한 불신을 유도해 반대파의 지지층의 겹집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대치에 못 미치면, 그 사람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일을 잘 못하거나 이상한 짓을 한다는 이유로 뒷담화가 난무하고, 잘잘 못으로 공격을 해된다. 말이 꼬리를 물게 하며, 전해진 말들은 안 좋게 더 부풀어 퍼진다. 신성을 바라는 영(靈)이 아닌 불행을 바라는 영(獰)이 되고 있다.
판단해보건 데, 분명 훌륭한 사람으로서 좀 기대에 못 미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실망을 했을 정도였다. 더 이상 신뢰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평가 기준은 능력이 다 아니기에 능력부족은 아량으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한다. 사람의 평가 기준은 ‘노력과 끈기’ 로 삼아야한다. 끈기 있게 노력하겠다면, 다시 그 기대를 해봄도 좋을 듯싶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린다면, 냉정한 잣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다.
영암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겉으로는 그런 척 하며 속은 딴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건 아주 잘 못된 비인간성의 이중인격자다. 비열한 사람이다. 한목소리를 내는 영암사람이 되어야한다. 자꾸 상대를 험담하며 사이를 벌리는 일에 부추긴다면, 그건 자신은 물론 영암을 위태롭게 할뿐이다. 결국 자신도 영암도 갈등으로 인한 앙금만 남을 뿐이다.
지금 우리 영암은 포용성의 인자함,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德)이 필요하다. 미워해서는 안 된다. 다 사랑의 시선으로 보고 받아들어 함께 가야한다.
영암을 명품으로서 위대하게 만드는 일은 혼자 뛰는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의 ‘패기(覇氣)’ 와 나이 있으신 분들의 ‘연륜(年輪)’ 이 조화되는 게 중요하다. 기관이나 사회단체에서 최고의 수장이라면, 자신보다 경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동시에 젊은이답게 창조적인 일들을 많이 해 나가야한다.
지금 우리 영암은 ‘함께, 같이, 모두, 더불어’ 라는 수식어에 결핍증이 있어 보인다. 함께하지 못한 일들이 다분하며, 같이 하지 못한 일들이 늘어만 가고 있고, 모두를 아우르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더불어 사는 정신이 결여된 상태다. 잘해보자고, 힘을 키워보자고, 잘나가자고, 모두가 잘되자고 영암사람들은 영암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면, 기득권을 떠나 형식적이라도 모여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지만, 서로가 각기 다른 행보를 하고 있어 영암지역 현안에 씨름하다가 결국 이산가족으로 각각 마음과 몸이 따로국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같은 원인은 자신의 마인드가 제대로 안되어 있거나, 그릇된 생각과 행동,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각, 그리고 분별력 상실과 문재해결능력 저하, 소통부재와 협력결여 등이 ‘함께+같이+모두+더불어’ 에 부족함을 드러낸다. 또한 공동체 정신에 빈약하기에 동반성장이 안 되고 있다. 공동체 붕괴는 이기주의...해법은 주민이 주인 되는 주민자치인데, 함께 공명 공감하는 기회를 가진 일을 서로 보여주도록 노력해야한다. 영암사람들은 “영암지역 발전은 기득권과 지역을 떠나 서로 소통하여 협치가 절실하다” 며 “영암지역 발전에 따로국밥보다 서로 머리를 맞대줄 것” 을 요구한다.
관계가 잘 안되고 서먹한 것은 그 이유는 여기에 있고,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행사장에서나 서로 만나 인사하는 것 외에는 교류가 거의 없다. 철학을 떠나 지향 점은 달라도 영암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면, 영암지역 사람들이 함께 만나 논의하는 자리는 꼭 필요하다. 과거와 같은 협조가 잘 안 된다. 어떤 공식적인 모임에서 두 번 만나는 것 외에는 별도로 따로 만난 적이 없다는 말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자주 만나는 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영암의 미래를 여는 일, 소통과 협력이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이다. 밝은 영암사회, 소통과 협력하는 민주적 만남과 회의 문화 조성에 나서야한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공동체 사회, 협력 사회애서는 위험한 행동이다. 영암은 그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대단히 빠른 성장을 했다. 그러나 성장은 압축이 가능했지만, 성숙은 압축을 못했다. 일사불란한 사회, 벌거벗은 경쟁, 영혼 없는 엘리트 양산 등...영암은 위험사회를 넘어 잔인한 사회가 됐다. 성숙을 이루지 못한 ‘사회적 복수’ 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활발해지고, 활발함도 잃은 것들이 많아졌다. 영암의 밀집화가 이뤄졌으나 밀집된 단체는 예전 모임처럼 작은 규모도 있고, 면면히 흘러오던 초라한 모습도 있는 공동체 아닌 사회적 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원인은 ‘함께, 같이, 모두, 더불어’ 에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면 공식, 남이 하면 비공식이라는 인식은 일제총독부 시절의 인식인데, 지금도 그 시대와 똑같이 이런 인식이 팽배하다. 영암사회는 영암사람들 뜻에 따라 움직여 질 때 지금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믿음이 있다.
민주, 공화, 자치의 관점에서 ‘평등은 동질성, 자유는 이질성,’ 여기에 ‘긴장관계’ 가 있다. 그런데 영암 지역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진다면, 균형과 안정성을 충분히 담지하고 확보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영암사람지치이다.
영암이 발전되려면 사적 자치로 출발하여 문화에 내재하는 본질적 가치로서의 자발성, 자율성과 그 실천원리로서의 영암문화지치에 의해 영암사회 조직은 성장하고 발전하여 왔고 가야한다. 그러면은 무엇보다 ‘함께 라는 동참, 같이 라는 협력, 모두라는 협동, 더불어 라는 공동체’ 가 따라야 만이 가능하다.
영암의 자질이 곧 공동체의 능력이다. 영암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나아가야한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공동체를 형성해가야 한다. 그것이 곧 더 밝은 영암, 더 나은 우리를 만든다. 국가든 사회이든 영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위기 일수록 영암의 존재감과 역할은 비중이 매우 커진다. 빈약한 영암은 위기를 극복할 안목이 부족하다. 그러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영암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영적(靈的) 안목이 풍성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에너지나 천연자원의 고갈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력과 추진력의 부족 위기에 살고 있다. 영암을 새롭게 구현하지 아니하면 미래는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특히 사단(社團)의 대적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하고 능력 있는 경건한 사람들이 부족하다.
영암이란 무엇인가?
영암, 영적인 정신의 선택권을 쥔 영암은 라틴어로 'mysterium' 이다. 영어로 ‘arcane(신비스럽다. 신령스럽다)’ 라고 한다. 이것은 Amor라는 애정의 감정, Aurora라는 여명의 신비, Lux라는 빛의 광채, Serenitas라는 고요함의 평화, Melodia라는 음악의 조화, Fluctus라는 피도의 원동력, Caelum이라는 하늘의 자유, Fortuna라는 행운의 긍정, Gloria라는 시간의 유동성, Silentium이라는 침묵의 조용함, Pax라는 평화의 조화로움, Veritas라는 진실의 신뢰, Aequitas라는 공평함의 평등, Libertas라는 자유의 존중, Fides라는 신뢰의 믿음, Salus라는 건강의 안전, Sapientia라는 지혜의 통찰, Natura라는 자연의 근본, Virtus라는 미덕의 자개개발, Lumen라는 빛의 환희, Victoria리는 승리의 성취감, Pietas라는 헌신의 충성, Condordia라는 화합의 조화, Spes라는 희망과 마음가짐, Candir라는 선명함의 자아, Bellus라는 아름다운 매력, Caritas라는 자비의 마음, Dignitas라는 존엄의 자존감, Eloquentia라는 원만한 언변의 커뮤니케이션, Fidelis라는 충실함의 진실성, Gratia라는 은혜의 인간관계, Harmonia라는 조화의 균형, Ingenium이라는 재능의 개성, Justitia라는 정의의 평등, Karitas라는 사랑의 따뜻함, lAETITIA라는 기쁨의 행복, Mundus라는 세상의 광대함, Nobilitas라는 고귀함의 명예, Omnis라는 모든 것의 다양성, Vigor라는 활력의 활동성, Visio라는 비전의 꿈, Zelus라는 열정의 헌신, Amicitia라는 우정의 친밀함, Benevolentia라는 자비로움의 배려와 사랑, Clementia라는 온화함의 너그러움, Diligentia라는 근면함의 노력, Amplexus라는 포용의 애정과 위로, Equilibrum이라는 균형의 안정성, Felix라는 행복의 기쁨, Lustita라는 정의의 공평, Radix라는 뿌리의 기반, Sol이라는 태양의 원천, Unio라는 통합의 협력정신기조가 담겨져 있다. 즉, 영암이란 선견지명으로 앞서가는 ‘선두영암, 일선영암, 선봉영암, 추월영암, 인도영암, 안내영암, 최일선 영암’ 등을 일컫는다. 영암은 앞서가는 고장이다. 앞서 행하는 영암이다. 위대성 공동체 정신 기반...영암사랑운동, 혁신 모델 선도로 더 매력적인 영암 공동체로 주목받아야한다.
안 좋아하는 사람도 포용해야한다. 나를 미워한 사람도 사랑으로 대해야한다. 단순성의 삶, 여러 사람들과 화해로 어두운 면을 끌어안아야한다. 기쁨, 감사, 치유, 충만, 믿음, 희망과 사랑으로 대해야한다. 안 좋은 말보다는 좋은 말만해야한다. 상대가 약한 면이 있을 때 힘을 강하게 키워줘야 한다. 남이 어려워할 때 다시 일어서라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좌절할 때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보라고 다독거려줘야 한다. 남이 생각만큼 기대를 한 만큼 못함이 있더라도 불신하기보다는 “그래! 힘내!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어! 잘할 거야! 힘내! 다시 한 번 도전해봐!” 더 잘해보라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따뜻함을 보여줘야 한다. 이게 진정한 영암사람들의 마음이며,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암사회를 가꾸는 일이다.
우리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저 희망의 나라로 영원한 보좌(保佐)를 바라보는 기쁨의 여정이라고 생각하며 희망하기에 이젠 절망이란 말을 하지 말자.
“당신이 있어 참 좋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어! 좋습니다. 당신이 있어 영암을 다시 찾을 겁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친해지렵니다. 참 따뜻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살았소! 당신이 있어 힘이 됩니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영암은 더욱 따뜻해집니다. 당신이 있어 영암이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있어 영암이 참 좋습니다. 영암, 당신이 있어 우리가 됩니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항상 곁에서 응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아침 같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기분 좋게 한 당신이 있어 내 삶이 즐겁습니다. 당신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인생길에 동행하는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하나님 형상을 가진 참된 영암인이여 당신이 있어 행복하구나! 당신이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 당신이 있어 2025년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당신이 있어 오늘도 행복합니다. 꽃처럼 사는 당신이 있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합니다. 당신이 있어 영암시대는 빛납니다. 당신이 있어 봄이 옵니다. 인생의 참 맛, 당신이 있어 참 살맛납니다. 당신이 있어 존재하는 오늘, 같이 가는 길에 당신이 있어...당신이 있어 세상은 기쁨이 되고, 믿음이 당신을 구원, 그 삶은 영원하리라!”
“당신이 있어 참 좋은 하루!~”
“당신 안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당신이 있어요. 바로 영암입니다.”
“당신이 있어 따뜻한 날들, 기억할게요.”
세치의 혀, 신령 영(靈)자의 입 구(口)를 핑계되며 마구 안 좋게 혀를 놀린다면, 그릇된 말로 인하여 영암의 공동체와 질서는 무너지고, 통합과 포용의 원칙이 사라진데다가 단결과 통합을 지키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단합과 발전은 요원(遙遠)하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막 대하는 일이야말로 영암을 저해하는 일이며, 발전을 더디게 한 일이다. 두고두고 통탄과 원망하게 되며, 후회될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협화음을 내지 말자.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영암이 최고다. 가장 훌륭하다.” 그런 소리가 나오도록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자. 오로지 나 자신과 우리 모두를, 영암을 위해 노력하자. 영암만 보고 나아가자. 영암이 더 위대해지기를 두 손 모아보자.
“영암이 자랑스럽습니다.”
“영암을 사랑스럽습니다.”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영암에 대한 자부심! 이 크고~
“영암이 최고입니다.”
“영암이 훌륭합니다.”
“영암이 위대합니다.”
영암에 대한 자긍심!~ 키운
‘세상보다 영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보는, ‘세상보다 영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대한민국 중심 영암!’ 이라는 군민들의 당찬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고, 타향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여기저기 다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우리 영암사람들! 겨울이 와서 더 힘들겠지만, 나라가 정국 혼란과 불안정으로 경제가 불확실해 더 걱정스럽겠지만, 세상 일이 예측할 수 없어 더 답답하고 불안하겠지만 신통하기라고도 하는 영암이기에 ‘또 힘내봅시다’ 라는 말로 공감하면서 “힘내라 영암!” 파이팅 해본다.
영암 월출산 바위를 보고 무당이 주문을 외웠듯이 영암의 영(靈)과 암(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 우린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잘 되게 해주십시오! 꿈꾸는 자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 하나가 되어 함께 같이 가고, 모두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주십시오! 다시는 우리 영암사회가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해주고, 안정적인 상태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라는 인간미와 애정미가 넘친 감동의 기도문을 외우는 참된 사람이 됐으면 한다. 을사년 청사(靑巳)의 혀를 닮은 영암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K-브랜드 문화를 세계로 확장하여 역사 속 장보고처럼 영암의 문화 영토를 ‘함께+같이+모두+더불어 그리고 새로운 영암미래’ 라는 기치로 넓혀나가면 어떨까요?
영암이 훌륭한 문화로 대한민국과 세계로 연결하는 문화 협력의 중심지로 자리 잡길 소망한다. 이러려 면은 의지와 담력(膽力)이 필요하겠죠!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