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시절 외할머니가 외동아들만 데리고 피부병 치료차 금강산 온천유람을 다녀오셨다고, 숱한 딸들 중 하나였던 자신은 금강산 구경을 못하셨노라고 어머니는 노상 금강산 노래를 부르셨었다. 그 어머니를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뚫린 첫 해에 커다란 배에 태워 아이와 함께 보내드렸다. 지금으로부터 칠년쯤 전이려나. 무릎관절이 무서워 산기슭 주차장에서 노닐다 오셨건만 그래도 너무너무 좋다고 몇 날 며칠을 금강산 애창가를 부르시던 어머니.
그리움도 유전자에 박히는 건지, 내 마음 속 금강산은 그리움의 대명사였다. 그런데도 무에 그리 바빴는지 금년에야 육로로 남편과 함께 외금강을 찾았다. 이박삼일의 짧은 여정 속에 구룡폭포와 삼일포 그리고 만물상을 빡빡하게 짜넣고 가무와 교예, 온천욕과 대동강맥주 연회까지 잠시도 빈 틈없이 꽉짜넣었음에도 돌이켜 보면 다음을 기약하지 않곤 견디기 힘든 아쉬움 뿐이다.
마음과 몸 두루 맵씨 고운 북측의 봉사원, 안내원 처자들과 부드러운 안내원 선생님들, 카리스마 넘치던 여성 가무 단원들과 짜릿한 감동을 보여준 예술가인 교예배우와 악단원 여러분들은 단순히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애정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친절과 자상함이 몸에 밴 재중동포 기사님들과 조장님들, 아침이면 아침마다 장한 출정 부대를 환송하듯 일제히 도열하여 미소로 커다랗게 손 흔들어주던 현대 직원 여러분들... 함께 웃으며 한 솥밥, 한 욕조에서 비슷한 감상을 나누던 관광객 여러분들, 오가며 먼발치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소학생들과 밭일에 바쁘신 주민여러분들... 모두가 그리운 모습들이다. 자연의 풍광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함께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눈을 감으면 구룡폭포, 연주담, 만물상의 절경 외에도 코끝에 항시 스치던 맑은 바람결과 눈돌리면 도처에서 우릴 반기던 녹음과 기암의 부드러운 조화가 그 속에 평화롭던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눈에 아린다. 다음 번 가을의 금강인 풍악을 만나러 갈 때까지 이 기나긴 여운을 가슴 속 고이 묻어두고 삶이 고달플 때마다 한 초롱씩 길어올리리라. 그리고 중얼거리리라, "세상엔 금강산을 가본 이와 가보지 못한 이로 나뉘노라"고.
첫댓글 7.16-18 봉래산 만났습니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도 자주 가서 면역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은 만물상 오르는 길에 박은 것입니다.
선배님.전 회사연찬회로 다녀왔었지요. 2월의 금강산.얼음쌓인 만물상을 등산한뒤 노천온천에서 금강을 바라보는 그 기분은..가보지 않는 분들은 모르실겁니다. 금강산 다녀오라고 했더니 누가 그러더이다. 월북했던 인사가 단체월북을 권유한다고요..호호 모 81학번선배님의 말씀이었어요. 그때가 2001년이니까..금강산은 사계절 모두 가보아야한다는데.
가을 풍악은 아직 단풍이 다 들진 않더라도 내금강을 가보고 싶네요. 만물상을 그 가파른 곳을 천선대까지 다 올랐단 말인가요? 존경존경*백만배....고소공포증이 있은 이 몸은 죽는 줄 알았어요...
윤선배님, 실은 올라가는 내내 후회했지요.하지만 한번 가기시작한 길이라 내려올수도 없었어요. 하여간 죽을뻔했습니다....그래도 뿌듯하지요
세상엔 만물상 천선대를 올라본 사람과 올라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노라고, 우리끼리 잘난 척 해도 되겠네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