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Paul Jobs
February 24, 1955 – October 5, 2011
아무리 젊고
패기와 야망에 차 있고
결국 모든것을 다 가져도
피할 수 없는것 !!
Apple은 명확한 비전과 크리에이티브를 지닌 천재를 잃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다
Steve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다
이제 Steve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Apple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KEEP THINKING DIFFERENT /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다
터들넥과 청바지. 패션 하나도 남달랐던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애플의 경영인으로서 선보인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뿐 아니라
그의 조직운영 철학과 도전정신까지
사람들은 잡스의 모든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대외적인 경영활동 외엔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세계적인 IT 저널리스트이자 아이패드 쇼크의 저자 하야시 노부유키는
외국 전자제품의 진입 장벽이 유난히 높은 일본에서
애플의 인기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3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
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의 사망을 두고 구글의 두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구글+에 직접 올린 글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룩한 업적과 그의 비전과 리더십이
자신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하였다
그는 단순히 컴퓨터를 전문가나 몇몇 산업에서나 사용하는 특별한 기계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창조하였고
전화기가 단순한 통신용도의 기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범용기기인 스마트폰으로 자리잡도록 하였다
또한 컨텐츠 제작과 유통에 있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면서
더 이상 IT기기와 산업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와 융합을 이끌어내는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다
평탄치 않았던 삶과 그리 좋은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세상의 거목이었으며 그 천재성은 애플사 뿐만아니라
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이다
특히 지난 2005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잡스가 했던 졸업식 연설은
채널마다 예외 없이 쉴새 없이 돌아갔다
공영라디오 NPR에서는 이 연설을 가리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로,
연설의 백미로 손꼽히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빗대
졸업식의 게티즈버그 연설로 부르기도 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사 중에서-
스마트폰인 아이폰과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IT생태계를 뒤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잡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인 아이폰과 아이패드 출시로
디지털시대 새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한 인물
또한 제품발표 때마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PT) 기술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회사는 “스티브의 탁월한 지혜와 열정 에너지는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킨 수많은 혁신의 원천이었다”며
“스티브로 인해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스티브잡스는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성공했으며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애플로 복귀해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IT업계의 1인자로 급부상했다
2010년은 잡스의 해가 됐다
잡스는 아이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패드를 선보여 태블릿PC 시대를 열었다
휴대폰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애플을 따라 붙자
아이패드로 전선을 넓혀나간 것이다
잡스는 가정(애플 TV)이든 사무실(아이패드)이든
이동할 때(아이폰 아이팟)든
모든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허브 전략인 셈이다
잡스는 2004년부터 췌장암을 앓으면서 투병해 왔으며
췌장암을 극복한 잡스는 2009년엔 간 이식수술을 받았고
2011년 1월부터 팀 국 현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경영을 맡긴 채
중요한 행사때에만 모습을 드러내 건강 상의 우려를 더했다
2011년 1월 다시 건강을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지난 8월 CEO직을 정식으로 사임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인 블룸버그는 6일(한국시각)
세상을 떠난 잡스가 남긴 유산이
약 70억달러(8조 20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된 '2011년 세계 억만장자'에서
잡스는 83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주가 영향으로 인해 소폭 하락한 상태이다
이외에도 스티브 잡스는 현재 380달러에 달하는
애플 주식을 500만주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팟 키보드 스피커 등 미국 내에서
338개의 특허권을 갖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아직까지 잡스의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아
향후 그의 유산이 어떻게 처리될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과나무가 손님을 반기는 91살 스티브 잡스 저택
애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차로 20분을 달리면
스티브 잡스의 저택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 집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부촌으로 통하는
팰러앨토시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팰러앨토 웨이벌리 스트리트 2101번지에 위치한 스티브 잡스의 저택은
8조원이 넘는 유산을 남긴 억만장자의 저택 치고는 소박해 보이는 2층짜리 집이었다
애플의 모던한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매우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이 집은 1920년에 지어졌다.
이웃 집들과 비교해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집 앞 정원에 여러 그루의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과나무들은 엔틱스러운 스티브 잡스 저택과 매우 잘 어울려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스티브 잡스의 저택은 온라인 부동산전문사이트에 296만9300달러(약 35억원)로 나와있다
저택 전체 규모는 2만5700스퀘어피트(약 722평)이고, 방은 총 7개다
일반적으로 현지 집값은 근처 비슷한 규모의 집들 중 가장 비싼 곳과
가장 저렴한 곳을 평균해 산정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지난 해 3월 <8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아내 로렌과 함께
잡스는 1991년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아내 로렌 포웰(47)과 조촐하게 불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2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 온 잡스는 아내 포웰과의 사이에 세 자녀가 있다
아들인 리드 폴(20)과 두 딸 에린 시에나(16) 이브(13)
하지만 그 전에 사생아로 낳은 딸 리사 브레넌(33)이 있었다
잡스는 처음 리사가 태어났을 때
자신이 무정자증이라고 주장하며 리사의 생부임을 부인했다
결국 이 싸움은 법정까지 가게 됐고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잡스는 리사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게 된다
리사의 생모는 잡스가 생부임을 부인하는 바람에
사회보장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며 딸을 키웠다고 한다
당시 포쳔(Fortune) 잡지는
본인 역시 자신을 낳은 부모로부터 버림 받고
입양되었던 잡스가 자신의 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은 바 있다
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잡스에게는 피를 나눈 여동생 모나 심슨이 있다
모나는 잡스의 생부와 생모가 잡스를 입양 보낸 뒤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낳은 딸이다(잡스의 생부모는 이후 이혼했다)
모나 심슨은 작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쓴 소설 <레귤러 가이(A Regular Guy)>는
자신과 친오빠인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소설이다.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스티브 잡스의 감춰진 사생활에서 최근에 떠오른 인물이 또 있다
바로 그의 생부인 압둘파타 존 잔달리(80)다
ABC의 뉴스 작가인 커리는
"아버지는 아들이 전화해 줄 것을 기다렸지만 아들은 끝내 전화하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이들 부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적었다
잔달리는 네바다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네바다주 리노의 붐타운 호텔 카지노 부사장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잔달리는 최근에 아들이 췌장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더 늦기 전에 아들을 만나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바 있다
그래서 잡스에게 몇 차례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원했던 부자상봉의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잔달리는 잡스가 사망한 뒤 <인터네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와
<리노 네바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해
"정말 아무 할 말이 없다"
"아들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며 침묵을 지켰다
금세기의 아이콘 전세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칭송을 받았던 위대한 천재 스티브 잡스
그는 왜 생부의 이메일에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했을까
은밀하게 감춰져 있던 그의 사생활에 인간적인 고뇌가 짙게 느껴진다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게 생긴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80)
그는 끝내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다
로렌 파월 잡스의 삶
남편만큼이나 신분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 잡스(47세)의 사회활동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한때 ‘테라베라’라는 자연식품회사를 창립했던 로렌 씨는
“가족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비영리 사회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는 교육과 여성권리 운동이다
맡고 있는 교육 관련 단체 이사직만 5개가 넘는다
그는 “소수계 학생들이 도움을 받지 못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때 화가 났다”며
1997년 빈곤층 가정의 자녀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한
방과후 과외수업이나 멘토, 금융지원을 해주는
‘칼리지 트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이스트 팰러앨토와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지부를 두고 있다
또 기업가들과 함께 국내외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에머슨 컬렉티브’를 창립해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05년에는 세계 여성들의 교육 개선을 위한 기금 2000만 달러를 모금한
‘여성 글로벌 펀드(GFW)’의 공동의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뉴저지 출신의 로렌 씨는 1985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던 시절 잡스를 만나
1991년 결혼했으며 아들 리드, 딸 에린과 이브를 낳았다
스티브 잡스, 부인 로렌과 첫만남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당시 애플에서 퇴출된 잡스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업 관련 저녁약속이 있었지만
‘만약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사업을 위해 저녁을 먹을까
아니면 이 여성과 같이 할까’라고 생각했다”며
“곧바로 주차장을 가로질러가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아내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들 부부는 만난 지 1년 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아와니 호텔에서 불교 선승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는 로렌 파월은
미국 실리콘밸리 내에서 교육개혁과 여성권리 환경문제 등을 위한
진보적인 운동에 적극적으로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자신이 거주하는 팰러앨토시 인근
벨몬트 지역의 칼몬트고교에서
수년간 멘토로 자원봉사를 하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기도 했다
이런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잡스가 첨단기술로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면
로렌 파월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세상에 변화를 주려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2008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수계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 경험으로 잡스 부부는 칼몬트고교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지인과
‘칼리지 트렉 프로그램(College Track program)’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빈곤층 자녀를 도왔다
현재 이스트 팰러앨토와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등에 지부를 둔 이 단체는
가족 내 처음 대학에 가게 되는 빈곤층 자녀에게
방과 후 과외수업이나 멘토, 금융지원 등을 해주고 있다
로렌 파월은 또 ‘에머슨 콜렉티브’라는 단체도 이끌고 있다
이 단체는 기업가들과 국내외 사회개혁을 선도하고
교육개혁벤처에 전략적 투자를 하는 곳이다
아울러 그는 2005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교육개선을 위해
2000만달러의 기금을 모금했던
‘여성 글로벌 펀드(GFW)’의 공동의장직도 맡는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한때 자연식품 회사를 창업했던 로렌 파월은
2008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말 가족들에게 좀 더 헌신하기 위해
모든 사업관련 일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잡스 부부의 이웃들은 최근 잡스의 건강이 나빠진 후
이들 부부가 손을 맞잡고 집 주변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망 전의 잡스 미국의 인터넷 매체
올보이시스(Allvoices)가 공개한 스티브 잡스의 사망 전 모습
병색이 짙은 잡스가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타려 하고 있다
계단 못오를 정도에도 정신 또렷… 유머까지
스티브 잡스는 사망하기 몇 주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거동조차 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잡스의 전기 집필을 맡은 월터 아이잭슨 전 타임 편집장은
몇 주 전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에 있는 잡스의 자택을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의 일화를
17일 발간될 시사주간지 타임에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는 당시 잡스는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고 통증이 심했다”며
잡스가 2층 침실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1층으로 침실을 옮겼다
밀려오는 통증에 몸을 침대에 뉘워 웅크린 채였지만
여전히 그의 정신은 또렷했고 유머 감각 또한 발랄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잡스가 이미 2월부터 생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가까운 몇몇 지인에게 병세가 악화돼 생을 곧 마감할 것이라고 알렸다고 했다
또 사망 몇 주 전부터 그의 자택 앞에는 잡스와 이별의 시간을 가지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부인 로렌 파월 씨가
“남편이 작별인사를 하기엔 너무 지쳤어요”라며
정중히 돌려보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잡스는 꼭 필요한 사람들과는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다
절친한 내과 의사인 딘 오니시와는
단골식당인 팰러앨토의 초밥집 진쇼에서 식사를 함께했고
벤처 자본가인 존 도어 애플 이사회 멤버인 빌 캠벨
디즈니사의 로버트 아이거 최고경영자(CEO)와도 작별 자리를 가졌다
직원들에게는 직설적이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잡스지만
자녀들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아빠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했던 잡스가
자신의 전기 집필을 허락한 것은 순전히 자녀들을 위해서였다
아이잭슨 씨는 잡스는 늘 아이들 곁에 함께하지 못했다
전기를 읽고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이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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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대한 인류의 장에 마침표를 찍은 스티브 잡스!
마음 속 뜨거운 갈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