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안녕하십니까?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했는데 마침 '빛두레'의 지면이 제게 주어진 덕분에 겸사겸사 문안을 드립니다.
형도 tv나 신문을 통해서 이름은 들어 보셨을겁니다.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차수련이라구요. 그는 작년 성모병원 총파업 사태 때 노조측의 사령탑이었지요. 그 후로 지금까지 계속 수배 중인데 어찌어찌 저와연결 되어서 얼마 전에 모처(모처라고 할 수 밖에 없슴을 용서하십시오)에서 잠깐 만났었습니다. 얼굴이 몹시 상했더군요. 제가 그를 만나서 정말 가슴 아팠던 것은 장기간의 도피생활로 인한 초췌한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아직도 그의 가슴에 꽉 차있는 우리 가톨릭 성직자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로만 칼라'를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되고 욕이 저절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주일 미사에 가면 집전하는 신부가 위선자 같아서 미처 다 끝나기도 나오게 된답니다. 저는 차수련 씨에게 "그건 네가 잘못하는 거다. 노조는 노조고 신앙은 신앙이지, 언제까지 신부와 신자 사이에서 원수지고 살 거냐?"라고 냉정하게 쏘아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한없이 슬프기만 했습니다.
k형 오늘 복음은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고요. 그런데 어쩌자고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특히 우리 성직자들)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가은 추호도 없이 남을 죽이거나 단죄해서 내 일상의 안위만을 추구하는지요. 형도 기억하시지요? 몇 년 전, 교황의 뒤를 이어 우리 한국교회가 국민 앞에 내놓은 '반성문'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해성사가 아니었습니다. 차수련 씨는 말했습니다. 성모병원 사태에 관련된 한, 그 주변의 신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더 밉다구요. 어쩌면 남에게는 목청을 잘도 높이는 사람들이 자기네 집안 일에는 하나같이 다 침묵하고 못 본체 하느냐는 거였습니다.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미군 장갑차에 희생도니 두 명의 여중생에게 속죄한다는 의미로 목숨걸고 나선 삼보일배가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다면 예수성탄날 밤에 노조원들의 절규 속에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성모병원 사태나 오웅진 신부가 연루된 꽃동네 사태, 천주교 신부에 의한 어린이 성추행 의혹 등에 대해서는 사실 규명을 위한 변론도 급하지만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한 책임을 통감하는 사제들의 일보삼배가 선행 내지 병행되는 것이 더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처사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바리사이나 율사들처럼 기득권자들의 위선적 사고나 행동에는 불같이 화를 내시고 야단을 치셨지만 무지하고 가진 것 없는 민중에게는 항상 자비와 구원과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만 되면 꼬박꼬박 성당에 오는 교우들에게 신자 노릇 바르게 못한다고, 성가도 제대로 못하면서 복장은 또 그게 뭐냐고, 왜 그렇게 뭘 모르느냐고 툭하면 핀잔을 주고 꼬집고 큰소리칩니다. '심판'은 잽싸고 '구원'은 굼뜹니다. 가끔씩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활발히 하는 신부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는데 그럴 때면 더 속이 상합니다. 너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지요.
k형, 우리 교구장님은 신부들이 특정한 평신도를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니 k형은 평신도가 아닌 선배 신부라고 사족을 달아야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좋은 일, 옳은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