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의 끊임없는 장엄 / 대원 큰스님
若能不取一切相故로 言 如是一心中 方便勤莊嚴이니라。
약능불취일체상고 언 여시일심중 방편근장업 - (황벽선사 완릉록)
만약 능히 일체의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면 (『범망경』에서)
이와 같은 한마음 가운데에서 방편으로 끊임없이 장엄한다.’ 하였다.
〇 대원 스님이 이르되
한마음 가운데에서 장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곳에 있든지 밖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악인을 만나도 좋은 결과를 만들고,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장엄이라 한다.
중생은 끊임없이 잘못된 장엄을 한다.
양변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좋은 장엄은 서로 흡족하고 편안하게 원융지법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송광사에서 일각 스님이 방장으로 있을 때였다.
방장 스님이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치자 한 수좌가
“항상 화내지 말라고 하시더니, 왜 화를 내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일각 스님이 “남전 스님이 고양이 일로 대중에게 ‘일러라’ 하며
칼을 들이댄 것이 화를 낸 것이냐?” 했다. 수좌는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했다.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이 수좌와 법거량을 하다가 화를 냈다.
다음날 그 수좌가 “왜 화를 내셨습니까?”라고 묻자 경봉 스님이
“너는 내가 화내는 것만 볼 줄 알지, 화 안 내는 것은 왜 보지 못하느냐?
천불이 나와도 너는 제도하기 어렵겠다”라고 했다. 수좌는 잘못을 인정했다.
무슨 말을 하면, 그의 허물을 잡는 것이 중생의 견혹(見惑), 수혹(修惑)이다.
‘이와 같은 한마음 가운데에서 방편으로 끊임없이 장엄한다’는
『범망경』의 구절이다.
「此是佛行處(차시불행처)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행하신 곳이니
智者善思量(지자선사량) 지혜로운 이는 잘 생각하라
計我著相者(계아저상자) 아(我)를 헤아리고 상(相)에 집착하는 이는
不能信是法(불능신시법) 이 법을 믿을 수 없고
滅盡取證者(멸진취증자) 멸진(滅盡)에 머물러 증득하려는 이도
亦非下種處(역비하종처) 또한 씨앗을 내릴 곳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넉넉히 잘 쓰면 쓴 만큼 밖으로 잘 장엄을 하고
본인도 무한한 공덕이 된다.
그런데 자기 마음을 밖으로 잘못 쓰면 본인이 그 값을 받는다.
「欲長菩提苗(욕장보리묘) 보리의 싹을 길러
光明照世間(광명조세간) 광명으로 세간을 비추고자 한다면
應當靜觀察(응당정관찰) 마땅히 고요히 관찰하라
諸法眞實相(제법진실상) 제법의 진실한 모습은
不生亦不滅(불생역불멸)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不常復不斷(불상복부단) 영원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며
不一亦不異(불일역불이)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않으며
不來亦不去(불래역불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게 해결이 잘 된다. 일정하게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 했는데,
이것이 구모토각(龜毛兎角)이다. 거북이 털, 토끼 뿔이라는 건 이름은 있지만 실체는 없다.
「如是一心中(여시일심중) 이와 같이 한마음 가운데서
方便勤莊嚴(방편근장엄) 방편으로 끊임없이 장엄하여
菩薩所應作(보살소응작) 보살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應當次第學(응당차제학) 차례로 배워라
於學於無學(어학어무학)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에 대해
勿生分別想(물생분별상) 분별하는 생각을 내지 말지니
是名第一道(시명제일도) 이것을 제일의 도라 하고
亦名摩訶衍(역명마하연) 마하연[대승]이라 한다.」
본심은 본래 정해진 것이 없다.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인다. 공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
양변을 벗어난 본심이 모든 것을 장엄할 뿐이다.
이 본심을 깨달은 사람의 행은 원융무애하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송하되,
龍吟金鼎 虎嘯丹田(용음금정 호소단전)
용은 금 솥에서 울고, 호랑이는 단전에서 포효한다.
(대원 스님의 전심법요 보설中)
출처 : 학림사 오등선원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