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가슴을 비워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장 기엔 케라스의 바흐는 지금까지의 모든 바흐 무반주 첼로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를 바흐 시대의 궁정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바흐를 현대로의 직통 고속도로에 태워 우리 시대로 순간이동시킨 듯
현대 속에서 살아 존재하는 바흐였다
내 머리 속에는 이미 비스펠베이, 부르노 콕세, 조현근의 바흐 무반주 첼로의 세계가 터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케라스의 무반주 첼로 1번의 프렐류드를 듣자마자 이거 뭐지 싶었다
빠른 속주와 가볍디 가벼운 현의 소리가 훑고 지나가는 듯
그러다 내 귀에는 첼로 줄이 현을 미처 타지 못하고 미끄러져 삐걱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오랫만에 아센인의 음향에 적응이 안되었나
소리가 공중으로 산화되어 내 귓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에 좀 당황스러웠다
모든 패시지가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듯한 1번의 연주였는데
그리고 들뜬 듯 부드러운 듯 아직 판단이 안서는 첼로의 음향 가득한 채
기대했던 아는 맛이 하나도 안나는 무반주 첼로 1번이 끝났다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하는 마음을 한켠에 둔 채
2번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프렐류드의 선율이 시작되는데 역시 아는 맛은 아닌데
그런데 이상하다 이제 귀에 케라스가 긁어서 튕겨내는 음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케라스는 리듬을 끌고 당기는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속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이 늘일 때가 되면 첼로 현의 특징을 잘 아는 장인처럼
현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시시각각 나온다
곱고 아름다운 소리만이 아니라 거칠고 날선 소리, 아프고 다친 소리가 줄줄이
3번부터 이제 케라스의 세계가 내 머리 속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스펠베이의 무반주 첼로 공연을 볼 때는 그의 연주가 한 사람의 인생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번 청년기부터 6번 인생의 황혼기의 사이클을 본 느낌이었는데
케라스의 세계는 한 청년의 인생 고군분투기같다
사회 초년생의 가볍고 발랄하고 좌충우돌같은 1번
그리고 사회적응이 된 쳥년의 푸르름이 뿜뿜한 2번
인생의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는 3번
3번부터 케라스는 확실한 스케일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짧고 빠르게 치던 현 콘트롤이 깊고 강약이 더 분명해져서
이제 소리가 귀를 통과해 머리 속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4번에 도달하니 성공가도를 달리던 청년이 인생의 쓴 맛을 겪는 듯
인생의 심연을 헤매는 현이 펼치는 극강의 아름다움에 머리 속 집에 아픈 장식이 더해지고
이제 한없이 꾹꾹 눌러담은 통증이 피부에 각인되어
내 머리 속에는 케라스의 세계만이 남았다
너무너무 고통스럽지만 떠날 수 없는 집
인터미션 후에 돌아온 케라스는
모드전환이 된 듯
청년이 이제 푸르기만하고 아픈 청년이 아니다
그의 첼로는 첼로가 아니고 관현악단인 듯
더이상 무반주 첼로음이 아니고 다채로운 화음이 배음으로 깔린 채
독주 첼로가 위용을 뽐내는데 정말 황홀경이다
5번 프렐류드에서 완전히 가슴팍을 강타당한 나는
이어지는 알르망드의 너무 아름다운 음률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오버랩되어
울컥해지는 눈에 이어서 머리 속을 제어하던 파워T 가 힘을 잃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온 공연이라 신체의 반응이 민폐가 될까 쫄려있었는데
눈물이 울컥하니 이제 다른 걱정은 기억이 안난다 이입될 대로 이입된 감정에
잠시 퇴장하고 다시 들어오자마자 바로 치고 들어오는 6번의 시작은
케라스의 의지를, 세계관을 공고하게 보여준다
그에게 음악은, 바흐는 삶이라고
바로 현재 치열하게 누리고 사는
바로 늘 갈망하고 증오하는
바로 언제나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진심을 꾹꾹 담아
첼로라는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했다
가장 현대적인 바흐의 해석으로
어쩌면 클래식을 더 클래식답게 함과 동시에
어딘가에 놓여있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터를 잡은 음악이
클래식이라고.......... (힙한 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