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곳적 자연 간직한 무건리 이끼계곡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 이끼계곡은 7~8월에 인기 있는 여행지다. 백두대간 육백산(해발 1244m) 허리춤에
꼭꼭 숨어 있어 태곳적 자연을 고이 간직하고 있어 무릉도원처럼 느껴진다. 깊은 협곡 속 바위를 덮은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흰 물줄기는 한 폭의 산수화다. 풍경 사진가들과 계곡 탐방객들이 여름 여행지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폭포는 7∼8m 높이의 이끼를 가득 품은 주름치마를 펼친 모양이다. 상단으로 올라서면 진짜 경치가 펼쳐진다.
10여m 높이의 어둑한 절벽 아래 이끼 무성한 바위 사이로 물줄기가 비단치마처럼 흘러내리는 폭포가 있다.
비가 오면 커다란 바가지 모양 동굴의 높다란 낭떠러지 위에서 20m가량 아래로 물기둥을 세운 듯한 폭포가
더해진다. 최근 영화로 유명세를 타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 촬영지로 더욱 잘 알려진 계곡이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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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화원' 함백산 만항재의 야생화
함백산 만항재를 아시는지요? 지리산, 덕유산, 곰배령과 함께 ‘천상의 화원’ 4대 천왕이 바로 만항재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300여 종의 희귀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며 아름다운 꽃의 향연을 펼치는 곳입니다.
만항재에서 바라본 함백산
아라리고갯길이라고도 불렸던 만항재는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다니던 고갯길입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이들 중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제일 높은 고개에서 빌었기에
그곳을 만향이라 했다가 훗날 만항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해발고도가 1,340m인 곳으로, 포장도로 고개 중 가장 높은 곳입니다. 이 주변에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장인
태백선수촌이 있어서 함백산 근처까지도 포장도로가 이어져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함백산 정상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높이가 약 1,573m로,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며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중 하나입니다. 올라보면 주변의 산들이 겹겹이 겹쳐진
풍경이 거대한 패스추리를 연상시킵니다.
1,567m 높이의 태백산조차 발아래로 둘 수 있을 정도니 다양한 희귀식물이 곳곳에 숨어 있는 건 당연.
그걸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이곳의 식물만 연구하는 분들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만항재로 오르는 길의 터리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반갑게 만나는 꽃은 자주꽃방망이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꽃이다 보니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는 보셨을지 몰라도 야생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다 보니
입구에서부터 발걸음을 쉬이 옮길 수 없습니다. 자주꽃방망이는 이름처럼 보라색 꽃들이 한데 뭉쳐 달리는
점이 특징입니다.
야생화 축제 안내판
산솜방망이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 높은 산에서나 만나게 되는 귀한 꽃이라 그렇습니다.
산솜방망이도 꽃이 여러 개가 뭉쳐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름에 ‘방망이’가 들어갑니다. 실은 솜방망
이라는 식물과 비슷하고 산에서 자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요.
산솜방망이는 적황색 설상화가 아래로 젖혀지는 점이 특징입니다. 국화과 식물에서는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
각각 하나의 꽃이고, 혀처럼 생겼다 하여 혀모양꽃 또는 설상화라고 합니다. 그것이 여러 개가 모여 머리
모양의 꽃차례를 이루므로 두상화라고도 부르지만 꽃이 아니라 꽃차례이므로 정확하게는 두상화서
(머리모양꽃차례)라고 해야 맞습니다.
산솜방망이
이삭단엽란
꽃이 모기만큼 작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 이삭단엽란을 보러 갔을 때 그랬습니다. 이삭단엽란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면 질경이고, 이삭단엽란인가 싶어서 다가가 보면 또 질경이고 그랬습니다. 꽃차례가
길쭉하게 솟아오르는 게 어쩜 그렇게 질경이와 똑같은지⋯.
그러다 또 질경이겠구나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웬 모기 같은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기단엽란, 아니 이삭단엽란이 분명했습니다. 이름에 왜 ‘이삭’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체를 몰랐던 난초
식물학에서는 가늘고 긴 꽃대축에 꽃자루가 거의 없는 꽃이 여러 개가 붙은 것을 ‘이삭’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이삭단엽란의 꽃에는 꽃자루가 있긴 하지만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면
됩니다.단엽이라는 말은 잎이 하나만 달린다는 뜻이고요. 첫 만남 때 잘 익혀두긴 했지만 열매를 찍으러
다시 갔을 때도 질경이와 이삭단엽란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름제비란
5년 전에 이곳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키 큰 난초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만항재 쪽 계곡
사진 찍고 간 사람들의 흔적으로 주변이 어지러운 것으로 보아 귀한 난초임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열매만으로는 무슨 난초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곳에 계우옥잠난초라는 귀한 난초가 있다던데 혹시 그건
아닐까 하는 짐작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둔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지금보다도 제가 난초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게 많았으니까요. 사실 계우옥잠난초는 키가 작고 잎도 전혀 다른 난초라 그곳의 것은
계우옥잠난초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올해에 드디어 그 의문을 풀게 됐습니다. 함백산에서 우연히 만난 분으로부터 그곳에
있다는 구름제비란의 자생지 정보를 전해 듣고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구름제비란은 유사종인 산제비란에
비해 줄기 아래쪽의 잎이 타원형이고 줄기에 거의 직각으로 붙는 점이 특징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예전에 찍어두었던 이름 모를 난초의 사진을 살펴보니 잎이 줄기에 붙는 양상이
구름제비란과 똑같았습니다. 식물을 하다 보면 이렇게 케케묵은 의문이 우연히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또한 식물을 하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장마가 주춤하는 사이 낮에는 불볕더위가, 밤에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번 여름에는 시원한 고한의 함백산으로 피서를 떠나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여름은 없고 꽃만
잔뜩 있는 곳에서 수박 한 입 베어 물고 함박웃음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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