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축제예배 만남
노안이 생기고 백내장에 녹내장도 자리를 잡았다. 안질이 있었다는 바울도 그랬지 싶다. 120세 죽을 때도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다는 모세가 마냥 부럽다.
축제예배 강단에서 확연히 보이던 성도들의 눈빛을 이제는 한참 보아야 알아본다. 그러다보니 종종 시선은 얼굴 근처를 지나 허공을 돌아온다. 좋은 점은 성령님을 더 의지함이요, 아쉬운 점은 축복해야할 성도들을 간혹 놓친다.
지난 주일 축제예배는 더욱 그랬다. 명절에 고향에 온 이들이 여럿 있었다. 모두 반갑고 고마운 이들이다. 결혼식 주례했던 때가 엊그제이지 싶은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을 데려왔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한참 기억을 더듬는다. 시력만 아니라 기억력도 약해진 게다. 물어서라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명절에야 간혹 만나는 교인들의 가족이지만 우리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휠체어를 타고 축제예배에 나와 앉은 J권사를 예배를 마친 후에야 보았다. 퇴원하려면 한 달은 더 남은 그녀가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너무 반갑고 놀라왔다. “어떻게? 오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명절 외출이란다. 두 손을 꼭 잡아 축복한다. 겨드랑이에 두 팔을 넣어 조심스레 휠체어에 앉히는 남편의 헌신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거울을 보듯 희미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고 알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 만날 때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들, 기억 못했던 이들, 너무 보고팠던 이들, 가슴 속 깊이 고마움을 품고 멀어진 이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는 이름을 또렷이 부르게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