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14] 해강海岡김규진金圭鎭 휘호도[揮毫圖]
1.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4-1933)이 1920년 무렵,
금강산 구룡폭포 옆 바위에 새길 '미륵불彌勒佛' 석 자를
써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보통 큰 글자가 아니었으므로,
해강은 특별히 거대한 붓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먹을 묻혀 글씨를 썼다.
근데 이쯤 되면 쓴다기보다는 그린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2. 해강의 대스승격인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1772-1840)이
평양 연광정練光亭에서 "먹물을 적시니 두께가 소의 허리만해진" 붓으로 전위서예를 선보였던 적이 있다.
아마 해강도 그 얘기를 분명 들어 알고 있었으리라.
3. 지금도 구룡폭 옆에는 해강의 거대한 '미륵불' 세 글자가
또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100년 전 그 대단했을 퍼포먼스에 쓰인 붓이
오늘날까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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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국립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과 그림이다.
강 선생이 말하는 대필大筆은 말한 대로
성균관대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아래 사진들이 그것이라, 하도 커서 거필巨筆이라 한다.
마지막 사진을 보면 이 대필이
해강이 금강산에다가
미륵불彌勒佛이라는 세 글자를
쓸 적에 사용한 것이라는 명문이 있다.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고종 5) - 1933
서화가. 본관 남평(南平), 자 용삼(容三), 호 해강(海岡). 백운거사(白雲居士),
취옹(醉翁),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 동해어부(東海漁夫), 지공학인(至空學人 ),
지창노초(至窓老樵), 수정도인(守靜道人), 석전경수(石田耕叟), 무기옹(無己翁),
청허재주인(淸虛齋主人), 삼각산인(三角山人), 포옹(圃翁), 동교(東橋) 등.
시종원 부경 김기범(金起範)의 아들로 평남 중화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외삼촌인 이소남(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장인인 이희수(李喜秀)에게 서예를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885년부터 8년간 청나라에,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머물며
그 곳의 서화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이후 1915년에 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문인화, 서화, 사군자 등을 가르쳐
후진 양성에 나섰고, 이때 서화교습용 교과서로서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를
발간하여 당대 묵죽과 묵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모두 잘 썼고,
금강산 바위의 ‘미륵불(彌勒佛)’, ‘천하기절(天下奇節) 등의 대자(大字)가 유명하다.
영친왕 이은에게 서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림에서는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를 즐겼으며, 특히 묵죽도가 절묘하였다.
사진술을 도입하여 천연당 사진관을 개업했고, 어전(御前)사진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