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연합국 입장에서는 독일은 전범국이었기에 이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이에 호응하듯이 서독 정부는 탈나치화denazification 작업은 해야 했다.
그렇지만 한국도 그랬듯이 재러드 생각에는 이에 대한 완전한 청산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 왜냐면 프랑스 경우 나치 협력자는 소수이지만 서독일 경우는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였던지 소극적으로 하였던지간에 너무 많은 인물이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45년 전후에 대다수의 정부 관리가 나치 정부에서 일한 경력자이기에 그들을 모두 내치고는 정부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서독의 초대 총리이었던 아데나워는 나치의 압력에 쫓겨난 인물이어서 총리가 가능했지만, 그의 모토는 “ 사면과 통합 ”이었다. 이러니 결론은 나치 범죄는 사악한 지도자로 이루어진 상위의 소규모 집단이고 그 밑에서 일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쩔수 없이 협력한 죄없는 인물이며 독일 평범한 병졸은 그저 시키는대로 전쟁에 이끌려나갔을 뿐이다고 해석을 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친일파 처리를 제대로 처리못한 점에서 비교적 유사하다. 이승만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하면서 친일파를 기용했던 것이다.
사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1961년에 독일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나치 시대에 30~40대를 보낸 현재의 노인들은 은밀하지만 나치를 찬양하였고 유태인을 수백만을 학살하였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듣곤 하였다고 한다. 역시 남한과도 유사하다.
이런 가운데 독일계 유태인이었고 나치 치하에 망명할 수 밖에 없었던 프리츠 바우어(1903~1968)란 인물만은 귀국한 후에 나치 범죄를 적극적으로 기소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바우어의 가장 유명한 기소는 동부 전선에 평범한 독일 병사를 잔혹한 죄를 행했다고 기소하여 독일 국민을 큰 충격을 주었으며 아르헨티나로 달아난 아이히만의 정보를 받고 독일의 경찰에는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넘긴 일이다.
수없이 기소를 하여 재판이 거듭되었지만 기소된 자의 변명은 한결같이 “ 그냥 명령에 따랐다…” “ 당시 사회의 규범과 법을 지켰다…” 등이었고 이에 대한 바우어의 대응은 “ 인류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는 것이며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과는 다르게 독일인은 스스로 심판을 받아야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우어의 기소는 대체로 패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바우어의 용감하고 양심적인 행동은 중요한 씨앗이 되어 후대의 세대에 영향을 주어 1968년대부터는 젊은 세대의 저항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재러드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치 강제 수용소는 아우슈비츠가 유명하지만 폴란드에 존재하고 독일 내에서는 “ 디하우 ”가 유명한데 그것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재러드의 생각에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나라들 중에 독일만큼 과거의 책임을 지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의 대학살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며 일본도 전쟁 범죄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국도 월남전에서의 범죄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노예(흑인)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역시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치는 것이 미국의 국가 정책이 아니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중에 독일은 가장 모범적이라는 것이 재러드의 견해이다.
witpo
프리츠 바우어( 1903~1968 )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였다.
이후에 판사를 거쳐 사회 민주당 당원으로 활약하였다. 1933년 5월,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바우어는 강제 수용소에 갖혔지만 젊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아니하여 석방이 되었지만 덴마크로 망명해야 하였다.
전쟁이 끝난 1949 년에 독일로 돌아와서 연방 공화국 (서독)이 설립되고 다시 사법 제도의 공무원에 들어갔다. 처음에 지방 법원의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지방 검사로 임명되었고 1968 년 사망 할 때까지이 직책에 있었다.
1957년에 바우어는 유명한 아이히만의 정보를 듣고 이스라엘에 정보를 주어 붙잡게 한 것은 아주 유명한 사실이다. 바우어는 또한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에 대한 정의와 보상을 얻기 위한 전후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64세 나이로 욕조에서 익사하였는데 술과 수면제를 과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2015년에 그의 생애에 대한 것이 영화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