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니라
탈출 11,10-12,14; 마태 12,1-8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2023.7.21.; 이기우 신부
불에 타지 않는 떨기를 모티브로 하여 하느님을 뵙고 나서 노예살이 하는 동족을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받은 모세는 파라오와 이집트인들과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인들을 계속해서 노예 노동력으로 삼아 이집트 제국의 기본질서와 종교질서의 위신을 세우려던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엄청나게 많이 세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의 영생을 위한 무덤으로 지은 거대한 피라밋과 이를 지키는 스핑크스, 자신들이 하늘과 통하는 태양의 후손임을 알리려던 높은 오벨리스크탑 등이 노예 노동력으로 건설하려던 이집트의 당면 목표였습니다. 산이 없는 사막 지형에 세워진 이집트 제국이 먼 거리에서 돌을 채굴하여 운반한 다음 가공하여 거대 석조건축물을 만들자면 그들은 히브리 노예들의 노동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아홉 번에 걸친 재앙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요지부동이었고 갈수록 마음이 완고해지고 강팍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내민 마지막 카드가 모든 이집트 가축의 맏배와 가정의 맏아들을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재앙에서 히브리인들이 구출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표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 년된 흠 없는 수컷의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탈출 전날 밤의 식사로 하고, 그 짐승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불칼을 든 하느님의 천사가 알아보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다’는 뜻의 파스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하였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해마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파스카 축제를 행해왔지만, 그 해방적 성격은 잊혀지고 있었던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당신의 죽음을 파스카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셨고, 따라서 축제 전날 밤에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심으로써 세세대대로 미사가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해방의 제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방의 대상은 히브리인들처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만이 아니라 평소에 자비와 정의가 베풀어져야 할 경제적 약자들, 그러니까 불평등과 양극화로 신음하며 일상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제사를 계승하는 미사의 주안점은 굶주림과 소득 불안정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을 염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바, 하느님의 관심사가 바로 힘 없는 다수 평범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꽂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미사는 해방을 위한 파스카 제사이며 또한 일상의 삶을 돕기 위한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유다인들이 지내던 파스카 축제는 물론 그 축소판인 안식일 제사와 이를 위한 계명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셨는지, 또 당신은 어떻게 이를 개혁하고 원 취지대로 회복시키고자 하셨는지가 오늘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던 예수님께서 열두 명이나 불러 함께 생활하시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틈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뒤따라가며 예수 일행을 염탐하던 바리사이들이 보기에 이러한 행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던 안식일 계명, 즉 십계명의 제3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위반행위였고 대죄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예수님께 제자들의 범죄행위를 고발했는데, 이 고발을 받으신 그분께서는 먼저 성서의 사례를 들어 차분하게 바리사이들의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시려 하셨습니다. 그들이 높이 떠받들던 다윗의 사례를 들어 말씀하셨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또한 사제들이 성전에서 지내던 안식일 관행을 상기시키고자 하셨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언 말씀(호세 6,6)까지 인용하시며 그들을 설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쯤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현실을 둘러봅니다. 개신교회들에서는 주일 예배 참석을 독려하고 참석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교회 운영 위기라는 후유증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고,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이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주일미사 참례율이 10%까지 떨어져서 전반적인 사목열기가 가라앉고 있는 가운데 소수의 신자들만이 미사와 신심단체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바리사이 유다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주일 미사에 빠지지 마라.”로 바뀌었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하느님의 법을 지킨다기보다는 종교적 전례로 초점이 옮겨진 이러한 경향이 많은 신앙인들에게는 십계명 내지 하느님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지까지 약화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교우 여러분!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서, 우상 숭배에 맞서 세상의 죄를 없애야 하는 파스카 제사의 해방적 성격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사를 떠난 제사는 하느님께 닿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