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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학업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를 나누실까요?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들이 힘들면 요즘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당 떨어졌나 보다 요즘 그 표현을 참 많이 쓰세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죠. 어떤 분은 에너지가 이제 방전됐다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배가 고프면 그냥 밥 먹자 그 한마디면 끝났는데 요즘은 다양한 수식어들 그리고 다양한 표현들이 마치 전문가의 수준에 이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표현하고 자라갑니다. 그래서 당 떨어졌다를 비롯해서 혈당 스파이크가 왔다느니 이런 표현들을 서슴지 않게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어른들의 가방을 한번 열어보시면 당 떨어짐을 예비하기 위한 사탕 하나씩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사탕이 아니라 초콜렛을 갖기도 하시고요. 어떤 분은 양갱이를 넣어 갖고 다니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찌하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분명하죠.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 살아 있기는 하지만 기운이 없기 때문에 기운을 불어넣기 위함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니죠. 영적인 것도 똑같은 원리로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예수 부활로 인해서 예수 생명 살아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모두에 있느냐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동차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외관상으로 볼 때 멀쩡합니다. 바퀴도 너무 멋있고 휠도 잘 닦아놨어요. 반질반질하게 이쁩니다. 팬들도 너무나 멋지게 교환해 놓고 있었습니다. 켜보면 불도 다 들어오죠. 그런데 여러분 엔진에 문제가 생기거나 엔진이 꺼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차일지라도 여러분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차가 되는 것이죠.
신앙도 그렇습니다.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신앙이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분은 신앙을 살아간다라고 표현하기보다 버티는 중이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겨우 버티도록 주신 선물일까요?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죠. 적어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 복된 복음의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 움직이는 신앙,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능력으로 살아가는 신앙, 세상을 살리는 신앙, 성령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자들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죠 적어도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 핏값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는 그냥 막 아이고 힘들어서 못 살겠네 이렇게 버티는 신앙이 아니라 힘 있고 강한 믿음의 소유자 이것이 삶으로 드러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전제 조건을 놓았어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 변화가 무엇입니까?
권능을 받을 것이고 그 권능을 통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그 귀가하고 정말 위대한 대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죠.
여러분 따라서 이 말씀을 잘 묵상해 보시면 예수님은 단순히 성령 받으면 은혜롭다 여기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고 말 수 있는데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것이죠. 성령이 임하면 사람 자체가 변화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쌓여 있던 사람들은 담대함으로 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말로 죽이는 말로 사용했다면 살리는 말로 모여만 있던 공동체였다면 흩어지는 공동체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성령은 단순히 우리에게 감동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능력으로 바꾸시는 분, 즉 부활 생명을 가졌는데 그 안에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니 이 부활 생명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한번 따라해 봅시다.
생명을 능력으로 바꾸시는 성령 생명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예수 부활의 생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능력은 모두에게 있는 것 아니죠? 그 능력은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성령 강림 주일에 우리 안에 식어져 있던 믿음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가 있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는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변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로 변화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교회만 단지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오늘 이 세 가지를 좀 살펴볼 텐데 성령이 임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첫 번째 성령은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무엇을 받는다고요?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는다. 권능이라는 이 단어 비나미스라는 헬라어지 하도 많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 단어에서 다이에나마이트가 나오게 된 것이죠. 어쨌든 그만큼 강력하다라는 것이죠. 권능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말이냐 하면 이 폭발적인 능력이 있다 그리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요 기적을 보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축복도 보았습니다. 경험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도 경험했죠. 더 나아가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한 사건까지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여전히 문을 잠그고 숨어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염려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부활 생명은 그들에게 임해졌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안에 성령의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성령의 능력이죠.
여러분 부활의 생명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 살아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신앙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면은 굉장히 멀쩡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요 하나님 앞에 신앙이 있어서 예배도 드립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기도 하죠. 그런데 막상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고 마는 우리의 모습 기도는 하는데 힘이 없어요. 예배는 드리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믿는다라고 고백은 하는데 세상을 이길 능력이 없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디모데후서 3장 5절의 말씀을 통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뭐가 없다고요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모양은 그럴듯하게 갖추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능력이 없을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배의 모양은 너무나 잘 갖춰져 있죠. 그렇죠 이 시간에 와서 하나님께 찬양도 드리고 다이슨 성가대의 찬양도 올려드리고 그렇게 우리의 예배의 모양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가는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이죠. 우리의 예배의 이 모양을 통해서 담대함이 나타나야 되는데 모양만 있고 그 능력이 사라진 것이죠.
여러분 두려움이라는 것을 한번 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원래의 모습보다 더 작게 만드는 것이 사실 두려움이죠.
여러분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먼저 입을 닫게 돼 있어요. 선뜻 이야기를 못하게 되는 것이죠. 또 두려움이 있으면 사람이요. 숨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게 된다는 것이죠. 또 두려움이 있으면 어떤 일이 있습니까?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인간의 두려움은 죄를 범하면서 시작이 되었다는 것.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이들이 숨지 않았어요. 그렇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담대함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죄를 짓고 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고백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죄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자리 잡고 나니 그들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지금 숨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더라는 것이죠. 결국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숨게 만든다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숨습니다. 사람 앞에서 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앞에서도 숨어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것뿐입니까?
어떤 사람은 관계가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 두려움 때문에 멈춰버린다는 것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여러분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고 고백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가 어떻게 이야기했습니까?
여종 앞에서 나는 주를 모릅니다. 부인했다는 것이죠. 그냥 부인했습니까? 나중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알지 못하노라 그렇게 그는 이야기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그런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천 명 앞에 서서 외치는 것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그 선포의 메시지를 듣고 수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라는 것 아니겠어요?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른 것 하나도 변한 것 없습니다. 그에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해 그의 삶을 다스리니 나 예수님 모릅니다. 나 예수님 모릅니다. 내가 저주하며 맹세하는데 예수 모릅니다고 외쳤던 그 입술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너희는 믿을지어다라고 선포했다는 것이죠.
성령 비나미스 움직이는 능력이 그의 심령 가운데 파고드는 것이죠. 그래서 성령 충만은 여러분 그냥 우리 성령 충만해 뜨거운 감정이 생깁니다. 단순히 그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이고, 문제보다는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이 시선의 변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진짜 강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사람.
할렐루야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두려움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외치는 자가 담대한 사람이 아니라 나 두렵지만 내 안에 두려움이 있지만 내 안에 성령께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보게 하시니 그 두려움보다 더 큰 담대함이 나에게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 이것이 진정한 담대함 진짜 강한 사람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은 떠나가고, 우리 안에 있던 죽이던 말들은 사라지고 살리는 말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담대해집니다. 성경의 인물들 좀 보십시오. 무서워서 숨었던 기도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여러분 기도원이 나가서 싸우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요. 두려움에 머물러 있었던 그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은혜 속에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들이 되었다라는 것이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 충만하여 오늘도 또한 이번 한 주간도 담대히 세상 속에서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성령 말의 능력을 바꾼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성령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죠.
여러분 증인은 뭡니까? 말하는 사람이죠. 말하는 사람 뭘 말합니까?
본 것을 말하고 들은 것을 말하고 경험한 것을 말하는 사람이 증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성령이 임하기 전 제자들의 말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어 앞서서 얘기했지만 베드로는요. 큰소리를 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담대했던 그가 결국 막상 위기 앞에 서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나 예수님 모른다라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된 것이죠. 즉 두려움이 들어오니까 말도 그렇게 나오더라는 거예요. 말도 그러니까 세상에 사로잡히니 이 말이 세상의 것으로 나가는 것이죠. 성령에 사로잡히면 성령이 주시는 말을 뿜을 텐데 세상의 것을 가지고 말하는 그래서 여러분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안에 무엇이 가득한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죠.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은 표현 속에 두려움이 묻어납니다. 그렇죠. 대화해 보면 알잖아요. 그리고 여러분 원망이 가득한 사람은 표현 속에서 원망이 묻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분노 가득한 사람들은요. 말하는 가운데 상처를 나도 모르게 이렇게 화살 하나씩 톡톡 쏘게 돼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말하니라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서 말하게 되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안 된다. 힘들다 큰일 났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나도 안 되고 나도 큰일 났지만 옆에 주변의 사람들도요. 무너집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진짜 안 되는가 보다. 진짜 큰일 났나 보다 그러면서 함께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마만큼 말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언에 말씀하잖아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그러니까 이 말로 인해서 죽이기도 하고 말로 인해서 살리기도 한다는 것이죠.
우리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말 한마디에 뭘 갚는다고 천냥빛도 걷는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말의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그렇죠 어떤 집은 계속 찌르는 말이 가정 하에서 없으면 좋겠는데 죽 나가라는 것이죠. 너는 왜 그러니부터 시작해서 또 그랬니 안 좋은 이야기들만 계속 흘러가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가정은 괜찮다 다시 해보자 힘내보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이렇게 위로하며 세워가는 가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모이면 다영아 이렇게 해서 되겠어. 부정적인 이야기만 달고 있는 교회가 있고요. 우리는 그래도 됩니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면 아멘도 크게 하시고 우리가 살리는 말로 함께 세워갈 때 하나님은 역사하게 된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따라서 성령은 주도적으로 성경에 보니까 방언을 주셨어요. 방원을.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방언만 주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게 주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죠 성령은요. 우리의 원망의 말을 감사의 말로 바꾸시는 분이시고, 정죄의 말을 축복의 말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운 말을 믿음의 말로 바꿔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내 안에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는 뭘로 할 수 있어요?
내가 지금 하는 말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거예요.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 안에 성령이 충만해서 감사의 말, 축복의 말, 살리는 말, 믿음의 말이 선포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만날 때마다 저분이 나를 위해서 축복해 주네. 저분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네. 저분이 나를 위해서 살리는 말 안에 여러분 만나고 싶지 않아요 행복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그런 우리 신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베드로가 그래서 그랬어요. 나는 예수님 모릅니다. 했던 그가 이제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성령을 받고 담대하게 선포했고, 그리고 성경은 뭐라고 얘기해요?
3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온 그렇게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니까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니까 역사가 나타나더라.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성령 충만하여 말이 달라지므로 우리 안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탄은요. 여러분 절대로 살리는 말을 우리에게 넣어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어떻게든 우리의 말을 바꿉니다. 왜 말이 바꾸면 무너지거든요. 그래서 불평의 말을 넣을 수도 없고 원망의 말을 넣어주고 정죄의 말을 넣어준단 말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성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시간 기도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내 안에 성령 충만하여 성령이 주시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내 입술을 통해서 누군가가 살아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이 성령 강림 주일에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여 그러는 중이 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여러분 성령은 모인 공동체를 흩어지는 공동체로 바꾸어 주셨다라는 거 여러분 오늘 이 본문에 보니까 뭐라고 되어 있어요?
이것은 성령이 임하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거였잖아요. 그런데 보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러니까 가라는 것이죠. 모여만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받은 사람은 움직여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 당시에 제자들은요. 성령이 임하기 전에 한 군데 모여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흩어지지 말고 예루살렘에 모여 있어라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 확신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어떤 방법을 써야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죠.
여러분 어떤 계획이 있어서 나간 게 아니잖아요. 성령이 임하니까 그들이 나간 거죠.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자신들도 도대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계셨다가 승천을 하셨는데 이제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나 갈 길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여 있어야만 했던 자들, 그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도 공존했을 것이고 어떤 길을 가야 될지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그들의 모습 어쩌면 그 안에서 그냥 서로만 위로하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야 그래도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렇지 우리가 그 과거에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내 안에 들려지긴 했지만 그거 믿지 못했는데 야 그래도 우리가 그 예수님 보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서로 위로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이 임하자 이 공동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죠. 숨어 있는 공동체, 모여 있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이제는 흩어지는 공동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이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로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다 그 말씀이 실제로 이들의 삶 가운데 녹아내려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은 사람들을 교회 안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모인 공동체를 세상으로 흐트리지는 역사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요 모이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흩어지면 전도하기에 힘을 썼던 것이죠. 함께 예배하고 흩어져서 사랑을 흘려보내버 함께 기도하고 흩어져서 사람을 세우는 함께 은혜 받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러한 자들로 이들이 쓰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요.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기도하면서 교제에 힘썼다. 거기에서 끝났다라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돼요. 우리 같이 모여서 우리 고기 구워 먹읍시다. 고기 구워 먹고 우리끼리 즐기고 그러면 돼요.
그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디에서나 먹는 것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잘 먹어야 돼요. 함께 모여서 먹으면서 교제해야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끝 하면 안 되고 그다음에 우리가 은혜 가지고 세상을 향해 침투해야 된다는 거 각자의 삶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거기까지 될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사람들은 그 공동체를 통해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들만 모여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흩어짐과 복음을 나눔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 공동체를 보면서 변화됩니다.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함께 모여 교제할 때에 이것이 우리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흩어짐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고 교회를 바라봄을 통해서 예수를 보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것이고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도 흐르지 않으면 썩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모르겠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 오늘 내 안에 부어주옵소서 우리 찬양 했잖아요. 기름 부으심이 내 안에만 있으면 썩어요. 흘려보내줘야 돼요. 흘려보내면 하나님께서 더 채워주십니다. 더 많이 채워주시는 거예요.
이 흐름이 정확하게 흘러가야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고 내가 받은 위로가 누군가에게 위로로 전달되어져야 하는 것이고 내가 받은 은혜가 세상을 살리는 은혜로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47장에 보면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물이었죠. 그런데 계속해서 흘러나오니까 어떻게 됩니까?
점점 강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그 강줄기를 따라서 주변에 있는 것들이 살아가려고 대단하다. 그렇게 이야기하 바닥에는 우리 신흥교회로부터 물줄기가 우리 삶의 자리로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가정도 살아나고 가정도 살아나고 직장도 살아나고 사업장도 살아나고 여러분 다른 데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성전에서 흘러가 나를 통해서 세워가는 아름다운 변화가 나타남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그 간증의 삶을 살아가는 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6년 우리 오이코스라는 표현을 써서 약간 어색하기도 했지만 목장입니다. 목장으로 연기를 보면은 함께 은혜를 나누는 거예요. 내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는 거예요. 여러분 2027년에는 아시다시피 우리는 리칭 아웃 쇼치 그래서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교회로 나가 그럼 우리 안에 충만해야 흘려보낼 것 아니에요 그래서 목장 모임을 통해서 우리 교재를 통해서 자꾸 채우고 채우고 가득 채워서 흘려보내는 사역들이 이제 2027년에 나타나게 되는 거죠.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러한 우리의 흐름이 성경 안에 있다. 교회가 그래야 된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먼저 모일 때 우리의 예배 가운데 우리 기도 가운데 우리의 찬양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아름답게 흘려보내서 세우는 귀한 사역의 놀라운 축복의 통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가운데 세워주는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