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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10:6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10: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10:8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
10: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10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10:11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도다
10:12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0: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10:14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0: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0: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0: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0: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0:19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 시작기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헛것과 그림자 같은 인생이라도 자식이기에 더욱 긍휼히 여기시고 기다려 주시는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언약백성이어도 끝까지 심판하심으로 교만과 완악한 마음을 파쇄하시는 주님이 옳습니다.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오니 성령께서 주님의 주권 앞에 엎드릴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보혈의 능력,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제 영혼을 감싸 안아 주시어, 십자가에 달림이 영예임을 알 수 있도록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 영생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사야의 말씀을 받아먹을 수 있도록 제 영혼을 먹이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심으로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갈릴리 지방은 이방의 갈릴리가 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게 된 백성들에게 빛이 비칠 것을 약속하신다.
멸망으로 끝나 마땅하나 완전히 황폐해진 이후에 아들을 주심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주신다.
- 그러나 지금은 심판의 때다. 멸시를 당하며, 고통을 받으며, 사망의 그늘진 땅으로 쫓겨 들어가야 할 때다.
-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어 백성들이 알 것인데 백성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며 계속해서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사 9:8-9)
- 어제 본문에서 4번이나 이스라엘에 심판을 집행하신 후에도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 왜냐하면 극심한 심판으로 비참해져도 교만하고 완악한 백성들은 자기들을 치시는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교만과 완악함의 극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 비참하나 완고한 백성과 영광스러우나 긍휼하신 하나님이 강대강으로 대치한다.
인간의 부패와 거짓은 하나님이 황폐하게 하실 때까지 가난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포하신 후에 하나님은 이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국제정세에서는 강대국으로 교만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이 선포된다.
1) 심판의 도구에 불과한 앗수르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만하였다.
2)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다까지 넘보는 교만한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이다.
2. 강대국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지팡이요 분노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에 불과하다.
1) 하나님을 배신한 백성을 치라고 하나님이 앗수르를 보내어 약탈하며 길바닥의 진흙덩이처럼 짓밟으라고 보내셨다.
2) 그러나 앗수르는 교만하여 많은 민족들을 멸망시키고 전멸시키려고 하였다.
-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것처럼 예루살렘을 자기 마음대로 정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3)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앗수르인데, 감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고 아직까지 긍휼로 보호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넘보았던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는 패역한 예루살렘이지만 앗수르가 감히 넘볼 예루살렘은 아니었다.
3. 하나님은 “나의 손, 나의 힘, 나의 지혜로 정복하였다”고 말하는 앗수르를 멸망시키신다.
사 10:12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이유는 그들의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 때문이다.
2) 앗수르가 멸망하는 것도 완악한 마음과 교만한 눈의 자랑 때문이다.
- 믿는 자던, 믿지 않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 다만 믿는 자는 교만하여 패망할지라도 그 심판을 통하여 다시 의를 기초로 세우신다.
사 10: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사 10:14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 교만이란 곧 “내가...했으며, 나는 총명한 자며 대단한 자라”며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
4. “내가 했다. 나는 이렇게 대단한 존재다”라고 말하면서 정복하고 높아진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반역이다. 이것은 마치 도끼인 앗수르가 도끼질을 하는 하나님에게 자랑하며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 10: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 도끼, 톱, 지팡이, 몽둥이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2) 힘, 지혜, 총명은 모두 도끼를 찍는 자, 톱을 켜는 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다. 즉 힘과 지혜와 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 감히 도구에 불과한 앗수르, 도끼와 톱게 불과한 우리이기에 자랑할 수 없다.
5. 10: 16-19절은 앗수르에 대한 형벌이 선포된다.
1) 열국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영화는 하루 사이에 불타서 사라질 것이다.
2) 하나님은 살찐 자를 병들게 하시고 화염이 타오르듯이 그의 영광 가운데 불이 일어나게 하시리라.
- 이스라엘의 빛은 불길이 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불꽃이 되어 그의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하루아침에 불사른다.
- 그 숲속 나무들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라도 그 수를 기록하리라!
6.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를 택하시고 앗수르를 높여 심판을 집행하셨다.
1) 우리는 범죄하여 심판을 받는 언약백성일 때도 있고, 앗수르처럼 징계의 통로로 사용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동시에 2가지 상태에 동시에 있다. 심판받으면서 심판의 통로가 된다.
2) 심판을 받을 때는 비참하며, 멸시당하는 위치에 놓인다.
- 심판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언약백성에게 심판은 계속된다.
3) 심판의 통로일 때는 비교적 높은 지위와 힘과 지혜를 가진 위치에 놓인다.
- 범죄한 언약백성보다 더 나아서 앗수르가 힘이 있고 높여진 것이 아니다.
- 그런데 심판의 도구가 된 우리는 나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소유를 자랑한다.
7.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가 도구 이상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앗수르만이 아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도구로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하고, 은사를 사용하게 하며,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고, 연약한 영혼들을 돕게 하신다.
2) 도구임을 아는 자는 바울처럼 “내가 다른 사도보다 더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중심으로 고백한다.
3)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임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앗수르처럼 내 힘과 위치와 소유와 은사와 섬김을 자랑하며 죄의 세력에 사로잡히며 사망에 처하게 된다.
4) 앗수르는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실제로 강대국이었고 힘과 지혜가 있었다.
- 얼마나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통하여 패권전쟁에서 이겨 강대국이 되었는지 모른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 노력과 경쟁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높이셨다고 하신다.
5)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모르니 하루아침에 패망하고 만다.
8. 그 교만은 “앗수르가 유다를 치러오는 외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1)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은 말과 행위로 드러난다.
2)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때를 기회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그를 패망시키신다.
-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한 도끼, 톱, 지팡이를 찍어 버리시고 불태워 버리신다.
3) B.C. 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바벨론, 메대, 스구디아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 당했다.
◈ 나의 묵상
심판의 통로인 강대국 앗수르나, 심판을 당하는 약소국 북이스라엘의 처지는 이렇게 다른데 그들은 교만함과 완악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잘난 자와 못난 자, 강한 자와 약한 자, 성공자와 실패자,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이, 부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자와 병든자로 나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자와 불신자,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로 나누신다.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 열심히 믿는 부류에 속하여 목회자까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전적인 은혜인데...그 안에 나의 열심과 분투와 치열함이 있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적용하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을 나의 노력의 결과로 착각하게 되었다. 번개를 맞아서 목회를 배웠다면 좀더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텐데...공부하고, 세미나를 다니고,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얻게 되니...마치 내 힘과 내 지혜인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하고 세미나를 다니고 적용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은혜인데....그것을 알 만큼 나는 겸손하지 못하다.
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사역의 열매를 경험한 나는 더욱 착각과 자만에 빠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으로 인해 나의 교만과 완악함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세리보다 낫다고 한 바리새인이 되었다. 바리새인은 실제로 십일조를 드리고 세리와 다르게 살았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될 줄을 바리새인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듯이, 남보다 열심히 믿고, 열심히 헌신한 것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 그 착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터위에 세워진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 때문에 교만이라는 올무에 여전히 걸려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알기에는 존재적 교만이 무너지지 않았고, 진실한 회개가 없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티끌이며 벌레임을 알지 못하기에 오직 주님이 깨닫게 하시며 회개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할 뿐이다.
나는 불신자보다 의롭고, 통속적인 목회자보다 잘낫고, 무능한 목회자보다 낫다고 여기며, 유능한 목회자를 시기하는 교만한 자다. 교만이라는 놈은 이스라엘도 앗수르도 이기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교만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 녀석의 정체와 전략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조차도 모르는 내 안의 교만과 완악한 마음을 아시고...나에게 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곳에서 힘들다, 낙심된다고 하지 말고 나의 교만을 보라고 하신다.
나의 교만과 완악함을 모르는 나는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저항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만을 원한다. 나의 교만과 완악함을 앎으로 심판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들을 수용하기를...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 복음의 영광과 교회의 영광은 무덤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자에게 허락된 것이다. 무덤 없는 영광은 앗수르의 영광처럼 하루아침에 불타 없어질 영광이다. 잠잠히 주님과 함께 무덤에 거하며, 분노의 말씀을 받아먹기를 원한다. 오직 심판을 통한 영광, 오직 무덤을 통한 성전, 오직 복음을 통한 생명만이 영원하고 영광스럽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곳에 이르기까지 가야할 길은 너무 멀고 아득하다. 그래도 목자되신 그분을 따라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원한다.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 묵상 기도
주님, 참으로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교만과 완악함이 한심합니다. 주님이 내 영혼을 보시면서 얼마나 한심할지요. 나의 죄와 부패와 거짓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아방어기제를 주의 보혈로 씻으시고 십자가로 멸하소서.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을 앎으로 저를 알게 하여 주십시오. 칼빈이 말한대로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구더기요 벌레임을 알게 하소서. 나의 헌신이 쓰레기와 같음을 알아 교만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옵소서. 존재적으로 하나님 노릇하도록 태어나서 살아온 인생이오니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진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심판하신 그 손그림자가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주님의 손안에 붙들리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