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있다>오만이/사회복지사
일본에는 참 별의 별 일이 다 있다. 전교생이 160명밖에 안 되는 한국계 교토국제고(京都國際高)가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기적의 역사를 썼다.
엊그제 8월 23일,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도쿄도(東京都) 대표 간토다이이치고(關東第一高)에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하여 일본 전역이 난리다.
교토국제고등학교는 해방 직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이 자녀들에게 민족정신과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1947년 5월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시초다.
재일교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금을 모아 학교를 세웠는데, 1958년 한국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2003년 일본 정부도 공식 학교로 인가해 교토국제고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중.고등학생 160여 명이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공부하고 있다. 학생 모집을 위해 1999년 야구부를 창단했고,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 소속이 61명에 달한다. 재적학생의 30% 정도가 한국계 학생이고, 야구부의 현재 선수들은 대부분 일본 국적이다.
비록 야구부를 만들어 학생들이 야구 연습을 하지만 운동장이 좁아 장타나 외야 연습이 불가능하여 이웃 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외야 연습을 할 정도로 열악했다.
여름 고시엔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는 광역 자치 단체 47개에서 3715개 팀이 예선경기를 치룬 뒤 49개 학교(東京 2개교, 北海道 2개교)만 본선에 올랐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본선에 참가하더라도 한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 방식이라 실력도 중요하지만 매 경기 운도 따라야 한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고시엔 야구장에는 참가팀을 응원할 수 있는 좌석이 1200석 정도인데, 재학생은 160명밖에 안 되지만 학부형이나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지역 예선에서 경쟁 상대였던 교토 시내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역 대표를 응원하기 위해 참가했으며, 밴드를 동원시켜준 학교도 있었다.
결승전이 끝나고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일본전역에 생중계로 울려 퍼졌다. 가사가 멋지지 않은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일본의 다른 이름)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TV화면에 한글로 자막을 비춰주고, 괄호 안에 일본어로 번역한 가사를 보니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다.
한국을 싫어하는 일부가 “조선학교가 왜 고시엔에 나오느냐” “고시엔 결승전에서 한국어를 듣고 싶지 않다” “전통의 고시엔 100년을 더럽히는 한글 교가, 일본인으로서 참을 수 없다” 등의 반감도 있었으나 그들을 반박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욱일기만 보면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자가, 엉뚱하게도 NHK에 메일을 보내 왜 `동해(東海)` 를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한국의 학원`을 `한.일의 학원`이라 왜곡했느냐고 따졌다니 정말 한심하고 황당하다.
만약 우리나라 고교야구 시합에서 일본어 교가가 울려 퍼진다면 어땠을까.
개딸들 눈치 보느라 입도 벙긋 못하다가 일본을 향해 쌍욕을 하고 죽창가를 부르면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 아니던가.
최근 광복절을 맞아 광복회가 정부의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하고 독자적으로 기념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독립기념관장을 친일인사로 기용했다는 이유라는데, 행사 도중 `대통령 물러나라`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재일동포인 김태학 교감은 “학생들을 한.일 우호를 위한 인재로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할 것”이란 말이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
내친김에, 일본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일본에는 있다`에 걸맞은 얘기 몇 개를 소개하겠다.
도쿄 시내 우에노(上野)공원에 가면, 일본의 사무라이 동상,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일본인들, 그 사이에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하는 위인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왕인(王仁) 박사의 비가 있다. 그가 1600년 전 백제에서 건너와 천자문과 논어를 전래시킨 학자로 소개되어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가.
기타큐슈(北九州)의 고쿠라(小倉) 성(城)에 가면 전시관에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の一行)의 당당한 행차 모습을 밀랍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았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을 말하며, 통신사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규슈 사가(佐賀)현 아리타(有田)시에 가면 `도자기 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이삼평(李參平) 일가족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자기 생산의 길을 열었으며, 아리타 지역에서는 도자기의 시조(始祖)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받들고 있다. 1917년 아리타 도자기 창업 3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도조 이삼평 비(陶祖李參平碑)`가 세워졌으며 도잔 신사(神社)에 그를 제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일본은 세계 최대 도자기 수출국이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도
고려청자, 이조백자를 자랑만 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3대 성(城)인 구마모토성(熊本城)은 임진왜란 당시 악명 높기로 유명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울산 왜성 전투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포로를 동원하여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때 붕괴된 천수각을 2021년 다시 개장하였다기에 금년 3월 내부를 관람하였다.
전시실에는 조선에서 가지고 온 기술(朝鮮から持ち帰った技術)이란 타이틀과 함께 조선을 침략하고 돌아올 때 지붕 기와를 배에 싣고, 기와 기술자를 데리고 왔으며, 그 후 일본의 기와 생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써져 있다.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01년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당시 26세)의 아버지가 한일 간의 친선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해마다 1월 26일이 되면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이수현 씨 기림판 앞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이 외에도 나가사키(長崎)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희생된 한국인의 추모비와 위령탑이 `일본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