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당신과의 이런 추억도 만들지 못했겠지요. 나는 그 무엇과도 이 시간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후회하고 남 탓만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힘든 날들이 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진정성을 가지고 더욱 공고하게 다져지는 겁니다. 험난한 길이 있기에 스스로 성숙해지듯이 사랑도 아픔을 딛고 강하게 여물어가는 것이지요. 혼자서 멋대로 만들어가는 삶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자신의 반응도 생성되고 성장해갑니다. 사랑이 두 사람 이상의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포기하려는 순간에도 새롭게 희망의 끈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혼자서도 강인한 의지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 어느 동기보다 강하고 진지합니다.
두 사람이 모두 자기만의 삶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섰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만납니다. 남자는 자기 배를 육지에 대려고 하고 여자는 다른 사람의 배를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도움을 청하고 들어주며 두 사람이 만납니다. 어쩌면 추구하는 삶이 서로 비슷하지요. ‘태미’는 집을 멀리 떠나 돌아다닙니다. 이제 남태평양 한가운데 타히티까지 왔습니다. 여행할 경비를 벌고 나면 또 어디론가 떠나겠지요. 그렇게 벌고 쓰고 세상 구경을 다닙니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그런 식입니다. ‘리차드’도 세상 구경 다니느라 요트를 타고 기나긴 항해를 합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 타히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이 두 남녀가 만납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편하기도 하지만 외롭기도 합니다. 거기까지 오면서 아마도 각자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살아온 환경과 사고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울릴 수 있는가 봅니다. 리차드의 요트에 저녁식사로 초대하고 첫 데이트가 시작됩니다. 타이티에서의 생활은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길을 만듭니다. 아마도 외롭게 지내왔던 시간들 때문에 더 빨리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 곧 사랑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리차드가 지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람으로부터 제의를 받습니다. 자기 부부가 가정사로 인하여 급히 영국으로 가야 한답니다. 문제는 자기네 소유인 요트를 옮기는 것입니다. 함부로 맡길 수가 없는 일이지요. 마침 유능한 항해사를 만났으니 일단 부탁해보는 것입니다.
조건이 매우 좋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도착시켜주면 사례비 1만 불과 돌아오는 항공권은 1등석으로 주겠다는 것이지요. 1년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경비가 생기는 일입니다. 이것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제 흠뻑 빠진 사랑을 놓치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1등석을 두 장으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승낙을 받습니다. 그런데 태미는 바로 그곳이 고향이고 엄마가 계신 곳입니다. 어렵게 떠나왔는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태미에게 이러한 조건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태미는 부담 갖지 말라 하고 리차드는 태미가 동행하지 않으면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조합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구경하는 데 돈 들랴!
그 사람의 요트에 들어옵니다. 와 - 탄성이 절로 나지요. 이렇게 멋진 요트로 항해를 한다니! 더구나 그곳에 도착하면 둘이서 1년은 거저 여행할 수 있는 경비가 생깁니다. 돌아올 때는 항공권 1등석, 언제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자기에게 청혼한 이 멋진 남자와 떨어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사람도 여행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가자! 둘이서 어디는 못 가랴! 가장 행복한 여행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막말로 그곳이 지옥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타히티에서부터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너 산호세로 향합니다. 무려 6,500 km나 됩니다. 그래도 어쩌면 미리 맛보는 신혼여행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시간입니다. 사방천지가 오로지 바다와 하늘뿐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일엽편주. 두 사람만의 세상이지요. 날마다 시간마다 천국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럴 수만은 없는 법.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을 만납니다. 돛대는 꺾어지고 배안에는 물이 차고 몸은 엉망입니다. 무엇보다 리차드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충 정리하고 바깥을 확인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넘실대는 파도뿐입니다. 어느 정도 잔잔해지기는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널빤지에 의지한 리차드를 발견하여 간신히 배까지 데려옵니다. 부상이 심합니다.
사랑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은 언제나 세상 속에 상존하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상하면 치료를 해야 하지요.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 시간 싸움입니다. 사랑이 생명까지 지키지는 못합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이제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남은 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희망이 삶의 에너지입니다. 영화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