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 TV 드라마에서 사업가 골퍼가 여성 캐디에게 "오늘 밤 어떠냐? 네가 좀 비싸다며?"하고 말하는 대사를 내보냈다. 골프장 노조가 바로 들고 일어났다. 방송사는 드라마 설정일 뿐이라고 해명하다가 나중에 사과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남성 골퍼들은 라운딩 도중 틈만 나면 '와이단(猥談)'이라고 이죽대며 질 낮은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젊은 여성 캐디가 듣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캐디에게도 "하나 해보라"며 추근대는 사람도 있었다.
▶캐디 비하 발언이나 신체 접촉은 '범죄'가 된다는 것을 배우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90년대 이미 여성 캐디를 끌어안았다가 긴급 구속된 골퍼가 있었다. 그 뒤로도 캐디 성추행은 끊이지 않았다. 껴안고, 끌어당기고, 강제로 추행하다 고발됐다. 그러나 상대는 '회원님'이고, 캐디는 노동법상 개별 사업자인 약자다. 대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잘해야 불구속 입건이었다. 골프장 측도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척 어물쩍 넘어갔다.
▶지난 목요일 국회의장까지 지낸 일흔여섯 원로 정치인이 골프장 여성 캐디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한때 총명과 촌철살인으로 성가를 날렸던 사람이다. 주말 골퍼들의 화제에 이 '국회의장과 캐디'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사건은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벌어졌다. 9번 홀에서 캐디는 "신체 접촉이 심하다"는 내용으로 무전 연락을 했고, 골프장 캐디 마스터는 곧바로 캐디를 바꿨다. 이 정치인은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번 툭 찔렀는데 그걸 어떻게 만졌다고 표현하느냐"고 항변한 모양이다.
▶그러나 캐디는 경찰서에 신고했고, 피해자 진술까지 했다. 경찰은 수사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성추행이냐 아니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판단한다는 것을 원로 정치인도 몰랐을리 없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번 툭 찔렀다'는 것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말투도 납득이 안된다. "손녀 같아서 귀여웠다"는 변명은 '국회의장'과 '원로'의 명예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정계에 '노추(老醜)'라는 말이 떠돌던 때가 있었다. 90년대 중반 2선으로 물러났던 두 김씨가 'DJP 연대'를 하자 반대 진영에서 '노추'라고 몰아세웠다. 그 정치인 노추 논란이 엉뚱하게도 골프장에서 터졌다. 소설가 이청준은 "곱게 늙는다는 것 자체가 인생 경험의 총화(總和)"라고 했다. 변명이 더 꼬였다. '손녀 같아서 그랬다'는 말은 변호사조차 변론을 포기하고 싶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