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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회의장에 바란다 ④
무소불위 국회사무처의 월권과 농단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테러방지법안에 무비판적인 검토보고, ‘아부’ 수준
‘테러방지법’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크게 논란을 빚었던 법이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대테러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인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어 대테러 업무에 대한 통제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무고·날조의 죄를 「형법」보다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마련되었다”면서 “테러방지를 위한 국가 등의 책무와 필요한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여 공공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이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당시 야당의 필사적인 반발에 부딪혀 의원들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방해 연설) 발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 상당히 높았었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검토보고가 비판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균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검토’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검토보고’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아부’의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전문위원 검토보고, ‘법원행정처’ 주장에 적극 동조
2014년 함진규 의원 대표발의로 대한변협, 지방변호사회 등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외부기관, 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사위에 회부되어 이에 대한 검토보고가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사실이 발견된다.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이 검토보고가 사법농단의 온상이던 법원행정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검토보고는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때에는 단체 구성원의 법관평가에 대한 참여도가 낮을 경우 전체 변호사의 총체적 평가가 아니라 소수 변호사의 편향된 평가가 마치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왜곡될 우려가 있음”이라면서 “법원행정처의 의견도 이와 같은 취지”라는 설명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붙이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축하 현수막이 걸리고 빨간등이 켜진 국회의사당의 모습. 연합뉴스
부정적인 이 검토보고에 의해 당연히도 이 법안은 입법의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법원행정처의 적극적인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을) 이 검토보고는 법원행정처의 의견대로 대한변협 등 비판세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시킨 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왕적 1인 체제 구축을 옹호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결국 법원행정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그릇된’ 검토보고였다.
우리 국회를 제외하고 세계의 어느 나라 의회든 법안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의원의 기본 임무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세계 의회에서 상임위에 상정된 법안마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검토보고 담당 의원을 두게 된다. 이 검토보고 담당 의원은 검토보고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하여 관련 기관 및 활동가들과 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이 검토보고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한다. 아울러 다른 교섭단체 검토보고 담당 의원과 심도 있는 토의 과정을 거치며 이 토의의 회의는 장시간의 토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종종 심야에 이르기도 한다. 검토보고 의원은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 소속 정책 전문위원의 밀접한 지원을 받으며 매주 교섭단체 의원들과 소그룹 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만은 전혀 다르다. 이 기본 임무를 의원 자신이 수행하지 않고 있다. 그 일을 국회 공무원이 대신하고 있다. 몇 년 전,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둘러싸고 커다란 사회장 파란이 발생하였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줄기차게 법안 처리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생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마칠 파장까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단순히 ‘전혀 전문적이지 못한’ 입법관료의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법률과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의 길목에 국회 입법관료는 법률안의 ‘준비’와 ‘검토’에 완전한 결정권을 보유하면서 사실상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관료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 거꾸로 된 국회
우리 국회에서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는 법률안의 심사 과정 중 전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제안 설명이 끝난 뒤 ‘반드시’ 전문위원이 낭독하도록 되어 있다. 그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안 내용도 전문위원의 검토 내용과 대개 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서 지적되지 않은 문제점은 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대체로 거론되지도 않게 된다.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 검토보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예⸱결산 검토보고는 이 분야에 대한 의원들의 전문성 및 시간 부족으로 법안 검토보고 경우보다 입법관료의 주도권이 더욱 강하다.
결국 이렇게 하여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상임위원회 심사의 대강의 범위와 차원을 ‘제시’해 주며, 논의의 초점과 방향을 ‘정립’해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실제 심의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내용 구성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더구나 의사 진행에 대한 세부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국회의 입법관료들이 제시하는 선례에 대한 해석에 의하여 의사 진행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는 한국 국회의 현실에서 결국 상임위원회 입법관료들이 위원회의 심사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커지게 되어 있다. 실제로 상임위원회 운영상의 시나리오가 위원회 입법관료들에 의하여 작성되고 있으며, 상임위원장은 이들이 준비한 각본에 따라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검토보고서를 토대로 회의를 진행하게 되므로 검토보고서는 입법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정적 변수일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이 선출하여 대의권을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철저하게 부정하고,반면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관료집단에게 입법권한을 온전하게 부여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매우 높다. 국회다운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부터 조속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의 위압적인 모습. 연합뉴스
‘국회 전문위원’? 용어부터 틀렸다!
현 국회 전문위원은 각 상임위원회마다 1명의 수석 전문위원 그리고 2명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용어는 과연 타당한 용어일까?
현 국회 전문위원이란 말 그대로 전문가(specialist)를 선발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한 공무원자격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 그것도 1, 2년마다 계속하여 순환근무를 하는 국회공무원 출신이다. 그러므로 ‘전문’이라는 용어는 이미 잘못되었다.
한편, 국회법에서 ‘위원’이라는 용어는 국회법 제48조 (위원의 선임과 개선, 改選) 및 동법 제60조(위원의 발언) 조항 등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본래 국회의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용어이다. 쉽게 말해, 각 상임위원회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것이지 국회 공무원이 ‘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할 수는 없다. 결국 국회의원 이외의 국회 조직 내부의 공무원이 ‘위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장 인사권 침해
국회 입법지원기구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과 위원회의 업무를 보좌하기 위한 기구로 오로지 의정활동의 지원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본래 국회공무원의 임용권은 국회의장에게 부여되어 있다. 국회 소속 기관의 5급 이상 공무원은 국회의장이 임면한다. 다만, 국가공무원법은 국회의장이 국회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용권의 일부를 소속 기관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회의장의 위임을 받은 자는 국회 사무총장, 국회도서관장, 국회예산처장, 국회입법조사처장이고, 이들이 각 소속기관의 임용권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각 입법지원기관이 각각 법률에 따라 설립된 독립기관이라는 본질적 성격에서 유래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장의 권한을 넘어서면서 국회의 모든 인사에 대해 전횡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사무처는 그간 협의라는 명목으로 인사를 농단해왔다. 그러나 인사교류에 동등한 협의는 없었고, 일방적인 통보로 사무처 행정직 인력의 전출을 강행해왔다. 예를 들어, 현 국회입법조사처장의 취임까지 8개월간의 공백기가 발생하였는데, 이 기간에 사무처의 전출인력 수요에 맞추어진 일방적 인사만 진행되었다. 사무처 인력의 유입은 입법조사처의 전문성 약화와 직결되고 그 전문성의 보완은 50%를 차지하는 입법조사처의 임기제 조사관들의 업무 증대로 이어진다. 국회사무처 간부들의 승진적체 해소와 인력 수급만을 위한 일방적인 전출로 소속기관들을 위성화시켜 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입법조사처(국회 예산정책처를 포함하여)의 핵심인력인 박사급 조사관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묶어 두고 핵심보직은 국회사무처에서 전출된 행정직이 장악해 왔다. 국회사무처는 최근 들어 아예 국회소속 각 기관에서 전담하던 개방형직위 임용을 국회사무처가 전담하도록 하면서 국회 전체의 인사위원회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회 입법지원기구의 역할을 넘어서는 과도한 월권이다.
국회소속 입법지원기관들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별 특성과 필요성에 따라 독립 기구의 위상으로서 설립되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국회사무처가 그 구성과 역할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국회의원 전체를 가장 잘 보좌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각 입법지원 기관이 어떻게 구성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는 국회의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소속 입법지원기관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종 인사 관행은 국회사무처의 완전한 헤게모니 하에 강행되고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는 국회의장의 인사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국회사무처가 지금까지 권한의 남용이나 오용이 없었는지 그리고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가 있었는지 국회의장 차원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출처 :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 위헌 소지 높다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국회의장의 임무는 ‘정치적 중립’이나 ‘중재’일 수 없다
새로운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 받들어야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2023.6.30 연합뉴스
이번 총선은 새로운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들의 명령이다. 국회는 반드시 이러한 민의를 반영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회의장이 나와야 한다.
존경받는, 아니 기억되는 국회의장이 없다
과연 우리 국회에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국회의장은 존재할까? 아마 십중팔구,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냉정하게 말한다면, 존경은 고사하고 국민들이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국회의장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만큼 이제껏 국회의장다운 국회의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국회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 의전서열 2위에 해당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장은 관행적으로 국회의원 중 다선 의원 우선, 구체적으로 5선 이상 의원이 선출된다. 하지만 다선 의원은 원래부터 보수적 인물이 많기도 하지만 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수를 거듭하면서 자연적으로 갈수록 ‘충분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양측 의견 산술적으로 중재하는 데 그쳐
여야 간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질적인 정쟁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가장 혐오하는 대상 중 으뜸이다. 그런데 이 여야 간 정쟁들은 적지 않은 경우, 국회의장의 ‘중재’에 의해 가까스로 해결된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여야 대표의 손을 잡고 3자가 같이 웃는 모습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하다. 그리고 국회의장의 그러한 ‘중재’ 행위는 언론에 의하여 상당히 높이 평가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모두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정치에서 ‘중재’와 타협은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회에서 여야 간 갈등이 발생할 때 역대 국회의장들이 확고한 원칙보다는 무조건 양측의 의견을 중간에서 산술적으로 ‘중재’하는 데만 골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의장의 ‘중재’란 극단적으로 버티는 정당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장의 당적보유 금지? 우리나라밖에 없다
예를 들어, 21대 국회에서 180석의 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은 ‘협치’를 명분으로 반드시 국힘과 합의해오라며 법안 상정을 하지 않으면서 이 법안 상정은 끝내 무산되었다. 국회의장의 무원칙한 ‘중재’는 민의에 역행하면서 극단적으로 끝까지 버티는 쪽을 편들어주게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여야 간 정쟁의 폐단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된다.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사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를 법률로 규정한 나라는 없다.
지나치게 잦은 ‘외국 출장’, 과연 국익 외교를 위한 것일까?
한편, 우리 국회의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지나칠 정도로 자주 외국으로 나간다. 국가 의전서열 2위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물론 모두 국가 차원의 외교와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매우 빈번하게 외국에 나간다. 그래서 과연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국익 외교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수많은 출국이 거꾸로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국회의장의 출국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장의 잦은 ‘외국 출장’은 최대한 지양되어야 마땅할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국회의 변화를 명령하고 있다. 국민들이 명령한 새로운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회의장이 필요하다. 이제 국회의장이란 의전이나 강조하고 여야 간 중립과 중재만 하는 그런 자리일 수 없다. 모쪼록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국회의장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출처 : 국회의장의 임무는 ‘정치적 중립’이나 ‘중재’일 수 없다 < 22대 국회에 바란다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상임위 배분과 법사위, 기본으로 돌아가라
[새 국회의장에 바란다 ②] 무엇보다 총선 민의가 우선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해결 방안들
“김진표 국회의장이 총선 직후인 4월15일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제위원회를 분리해 체계·자구 심사를 전담하도록 하자는 제안입니다. 지금까지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명분으로 법률안을 ‘붙잡고’ 있던 폐해를 없애는 것이 목적입니다. 과거 여야가 원 구성 협상 때마다 여러차례 약속했던 내용을 김진표 의장이 21대 국회 막바지에 국회법 개정안으로 발의한 것입니다. 저는 김진표 의장의 이러한 제안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법사위원장 확보 쟁탈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의 글이다. 성 선임기자는 김진표 의장 제안이 매우 타당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지는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전혀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폐단이 되고 만 ‘진보’ 언론의 슬픈 단면
김진표 의장이 제안한 방식은 법사위를 사법위와 법제위로 나눠 법제위에게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게 되면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보유한 ‘법제위’는 지금의 법사위와 똑같이 그 막강한 권한을 쥐고서 현재 법사위와 동일하게 “법률안을 ‘붙잡고’”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법제위’가 다시 모든 위원회들의 ‘상왕’으로 군림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니 법사위원장 확보 쟁탈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순진하다. 현실에 전혀 부합할 수 없고 해결이 아닌, 실패가 뻔한 임시미봉책에 불과하다.
폐단이 되고 만 언론, 그것도 진보라 자처하는 언론이 드러내주고 있는 슬픈 단면이다.
한편, 참여연대는 법사위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 사무처 소속인 법제실에 체계·자구 심사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류의 편의적인 접근 방식은 거의 예외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거꾸로 더욱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오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무처 소속 법제실에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주게 되면 이번에는 사무처 법제실을 상왕으로 군림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편의적인 방식으로 ‘관료’들에게 어떤 권한을 주게 되면, 반드시 그 ‘관료’들이 결정권을 쥐게 되어 주객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국회 전문위원에게 편의적으로 준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식으로 관료들에게 권한을 주다 보니 이 나라가 결국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는 ‘관료공화국’으로 완성된 것이다.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계획서 채택 안건 등을 의결했다. 2024.5.7
'땜빵식'은 반드시 더 큰 문제 발생
우리 국회의 치명적인 폐단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항상 임시미봉책, 근시안적으로 땜빵하는 식으로 그때그때 적당히 해결하려고 한 데 있었다. 아니 국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심각한 폐단이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고, 도리어 다른 문제로 번져 나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되고 더욱 복잡해졌으며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어떤 한 문제를 해결할 때는 모름지기 근본적인 방식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지만, 세계 어느 의회에도 우리와 같은 법사위의 ‘상왕’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체계·자구 심사는 세계 모든 의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 이것이 의회 상임위원회 입법 과정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의회에서는 각 상임위원회 내에 ‘축조심사회의(Mark up)’가 구성되어 여기에서 수정안 작업과 체계·자구 심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 국회도 충분히 각 상임위원회가 체계·자구 심사를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 이제 그 정도 수행할 역량은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각 상임위 법률안의 체계·자구에 문제가 있다면, 본회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2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은 당연히 다수당이 차지해야 한다. 만약 소수당인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가지게 된다면 21대 국회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법사위에서 모든 법안이 막혀 식물 국회가 될 뿐이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진 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각 상임위에 돌려주는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의장의 입장에서 이 방식은 상임위 배분 협상과정에서 소수 야당과의 협상에 활용할 수 있다.
상임위 배분은 민의에 따라야
22대 국회도 상임위 배분을 둘러싸고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가 이어져 원 구성이 또 몇 달 동안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다수당이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원칙에 의하여 모든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장의 위원장을 가져간다. 이렇게 다수당이 독점하는 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곧 ‘다수의 지배’ 원칙에 대한 인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국회도 본래 상임위원장을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기로 하면서 여야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정치적 타협 공간을 제공한 의미도 가진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국회에 협치가 이뤄지거나 정쟁이 감소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여야 간 갈등은 더욱 격렬해지고 정쟁은 더욱 가열되어왔다.
지금의 국회 상황에서 협치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국회의장의 분명한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만약 불가피하게 상임위 배분 협상이 필요하게 되는 경우,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그 마지노선은 압도적 다수를 만들어준 민의를 반영하여 의석수에 따른 배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상임위 배분과 법사위, 기본으로 돌아가라 < 22대 국회에 바란다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이게 말이 됩니까?…의원보다 힘이 센 국회 전문위원
새 국회의장에 바란다 ③
법안 전문위원 부정평가 땐 상임위 의제 못올라
의원들이 전문위원 대상 로비하는 본말전도 현상
이런 식의 국회는 국회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워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회의원은 존대말, 국회 공무원은 반말
소위원장: 〇〇〇 아니, 〇〇〇 위원님 말씀하신 그것…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은 우리가 자료 받은 게 없잖아.
소위원장: 〇〇〇 전자문서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 뽑는 것밖에 없는 거지…
소위원장: 〇〇〇 그러니까 공문 보낸 것을 달라고요.
17대 국회의 어느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잘 알다시피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이고 소위원장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위의 속기록을 보면, 국회의원은 존대말이고 수석전문위원은 약간 반말 투다. 이 속기록의 상황을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이 더 높아 보이고, 최소한 동등한 위상이다.
다음의 또 다른 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OOO 위원: 지금 수정안대로 하게 되면 기재부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수정안대로 하면 기재부에서…
수석전문위원: OOO 기재부 의견은 저희가 여기 비고에 적시한 것처럼 이걸 적극적으로 다 수용한다 그런 정도의 입장은 아니고요. 교육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기재부하고 협의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OOO 위원: 저도 잠깐만 말씀…
OOO 위원: 아니, 저도 질문 다 안 끝났는데요.
수석전문위원은 회의를 주재하다시피하며 의원의 발언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 심지어 교육부와 기재부 등 정부 부처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회의 장면. 2023.12.5 연합뉴스
“국회의 주인은 의원이 아니라 사무처 직원”
그런데 이들 국회 전문위원은 각종 법안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필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자기들 협회가 의원이 아니라 ‘실제로 힘을 가진’ 국회 전문위원에게 로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들은 여러 곳에서 적지 않게 들었다.
국회 전문위원은 특히 행정부에 대해 ‘갑 중의 갑’으로 군림한다. 즉, 행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닌 ‘검토보고 권한’을 가진 전문위원들에게 각종 법안과 정책, 예산 그리고 국정감사 등 보고하러 쫓아다녀야 하고,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검토보고서에서 좋지 않게 반영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전긍긍 로비를 해야만 한다. 장관이 밤에 양주를 들고 국회 공무원을 찾아오고, 상임위에 전문위원이 새로 임명되면 소관 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업무보고’를 한다는 것은 국회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얘기다.
2017년 11월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조응천 의원은 “국회 지원부서는 폐쇄적이다. 언터처블이다. 행정부의 감사감찰, 수사 기능이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 국회 입법고시 출신들이 강한 결속력으로 승진이나 혜택을 독점하고 비리는 서로 감춰준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하게, 문자 그대로 국회의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의회 시스템에서 행정 사무관리 업무를 보조,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연상하도록 하는 제2의 관료체제로 전환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바로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입법관료가 대표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국회사무처가 단지 국회의원을 보조하는 입법지원 기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의 행정을 지원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설치된 법원행정처가 실제로는 법원의 최고 권력을 장악한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국회사무처와 같이 본래 행정과 사무의 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어 전도본말의 행태가 나타나기 쉽다. 이 장면은 내시나 환관이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과거 역사 드라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법원행정처와 국회사무처를 연속 취재해 보도했던 MBC PD수첩 책임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사무처의 여러 행태는 법원행정처와 완전히 동일했다”고 밝혔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이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입법이라는 의회의 본연의 직무 수행에 있어 우리 국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왜곡과 비정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에 그 목적
이렇듯 국회 입법공무원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 조항이 완전히 오늘날처럼 국회공무원의 권한으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바뀌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즉,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초등학생을 의원으로 앉혀놔도 못할 게 전혀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싫어할 경우 마지막으로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뒤에 가려져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 ‘국회 전문위원’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반드시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본말전도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국회는 상임위 법률 심의에서 가장 먼저 법률안 취지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게 된다. 이때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발의자 혹은 제출자의 취지설명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과정에서 증인의 증언, 참고인의 의견 청취가 가능하고 보고서 및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뒤 그 의원과 1문 1답의 질의를 진행하고, 질의가 끝나면 토론에 들어가는데, 1인이라도 수정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우리 국회의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는 입법의 보수적 경향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하다. 일반적으로 관료집단은 그 보수적 조직문화와 신분적 조건 등의 요인에 의하여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보이며, 이에 따라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역시 보수적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은 검토보고의 벽을 넘지 못했고, 국회의원 52명이 서명하여 제출했던 「한일군사정보협정 효력정지 특별법안」역시 검토보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이 검토보고란 단순한 ‘검토’ 차원의 수준이 아니다. 사실상 결정문이고 판결문이다. 수많은 법안이 발의되지만, 검토보고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 법안은 거의 대부분 예외 없이 상임위원회 회의의 논의 대상에서 배제된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졌고 ‘규칙’이며 불문율로 되었다. 그래서 의원들이 자기가 발의한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에 부정적 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전문위원에게 잘 보이려고 로비하는 ‘본말전도’의 광경도 연출된다. 더구나 상임위원회 회의는 기본적으로 상임위의 입법관료들이 준비한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전문위원 검토보고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법안은 회의의 의제에도 오르지 않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대중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한두 가지 아주 간단한 내용만으로 법안을 ‘구상’해 발의한다. 법안에 대한 꼼꼼하고 힘든 ‘검토’ 과정도 의원이 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런 부담감 없이 발의할 수 있다. 자연히 법안은 남발된다. 그래서 이렇게 오직 법안 발의에만 급급한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이 서로 다른 취지의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만약 법안에 대한 검토를 의원이 수행한다면 최소한 같은 정당 의원의 법안 발의는 교통정리가 되어 이러한 법안발의 남발 현상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회 입법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덕성을 지닌 사람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왕성한 의욕에 넘치는 사람이 국회에 진입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니 “초등학생을 국회의원으로 앉혀놔도 못할 게 전혀 없다” 혹은 “완전히 날로 먹는 국회”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 과정 중 대부분의 과정을 의원이 아니라 국회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상황이다. 특히 ‘법안 검토’는 입법 과정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이 과정을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국회의원은 자신의 본업인 입법 업무를 사실상 ‘방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으로서 명백한 직무유기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은 기껏 법안발의에서 멈추는 것이며, 이후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통과 절차만 남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가진 의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국회를 국회라 말하기도 쑥스럽게 된다. 이는 전에 커다란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던 ‘사무장 병원’ 혹은 ‘사무장 약국’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미국 의회의 각 상임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인력인 스태프(Staff)는 18명의 전문위원을 포함하여 위원회당 평균 75명으로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하여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일 의회의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은 각 교섭단체 정책위원에 의하여 운영된다.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사실은 우리 국회처럼 입법관료가 개입, 주도할 여지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제 상임위 회의에서 전문위원 등 국회 공무원이 회의를 주도하는 왜곡과 비정상 상태는 이제 바로잡혀야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국회법이 모델로 삼았던 일본 국회의 경우에도 일본 국회 ‘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별도로 국회의원들과 다른 자리에서 대기하면서 회의 진행에 필요한 경우 발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독일 의회 사무처의 역할은 회의 준비 혹은 회의장 정리 등 그야말로 보조적인 차원의 업무를 수행하고 직원 역시 대부분 실무자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사무처가 명실상부한 ‘국회사무처’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분명한 역할을 기대한다
다음은 2019년 3월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제1차 소위원회 회의록이다.
◯ 수석전문위원 000
그것은 제가 확인하고 난 뒤에 위원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우원식 위원
확인이 아니고 이 두 검토보고서를 다 000 수석전문위원이 쓴 건데 처벌하자고 할 때는 처벌하자고 해 놓고 이번에 금지하자고 그러니까 금지하지 말자고 하고.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검토보고서라고 하는 게 정말 신중하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지 이런 것들을 잘 감안해서 신중하게 써야 되는데 법을 낼 때마다 달라요, 이게. 특허청에 의견 물어봐 갖고 특허청 의견대로 해 주는 겁니까?
◯ 수석전문위원 000
그렇지 않습니다.
◯ 우원식 위원
그런데 어떻게 같은 법안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입장을 한 사람이 낼 수 있느냐 이거예요.
국회 전문위원들이 법안에 대해서 검토보고 내는 것 이게 사실은 다른 나라에 별로 없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생긴 제도인데, 국회 전문위원들이 내는 법안의 검토보고서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런데 이렇게 신중하지 않게 그리고 과거에 또 냈던 것하고는 정반대 입장으로 이렇게 내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정말 개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전문위원 검토보고 문제에 대해서도 우 의원과 같은 시각을 가진 국회의원은 대단히 드물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20년 가까이 국회에 근무했던 필자의 눈에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은 극히 소수였다. 그런 중에 우원식 의원은 외부로 알려진 명성과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고자 노력했던 국회의원으로 기억한다. 특히 국회 관료에 대한 입장에서 우 의원만큼 분명하고도 단호한 태도를 견지했던 의원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간 이승만 독재를 거쳐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을 짓밟으면서 입법부를 극단적으로 무력화하고 왜곡시켜 놓았다. 우리 입법부는 외적으로는 권력, 내적으로는 관료집단에 의해 고착된 왜곡과 비정상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회는 진정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 과제의 수행을 위해 입법부 수장으로서 입법부의 최고 권한을 지닌 차기 국회의장의 책임은 실로 중차대하다. 엄중한 이 시기에 ‘우원식 국회의장’의 분명하고도 현명한 역할을 기대한다.
출처 : 이게 말이 됩니까?…의원보다 힘이 센 국회 전문위원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허울뿐인 의회 입법…실무는 공무원들 몫
[관료의 나라 ⑮] 근본을 잃으면 모든 게 흔들린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관료를 통제해야 할 정치권, 거꾸로 관료에 통제받고 있다
관료의 나라, 우리 사회에서 관료집단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집단이 과연 존재하는가? 근본적으로 관료집단을 통제할 수 있고 또 견제해야 할 곳은 바로 정치권이다. 의회란 본래부터 민의를 대표한 기관으로서 행정권력,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정치권은 관료를 통제하고 견제하기는커녕 거꾸로 관료집단에 사실상 통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관료를 통제하고 견제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실력을 갖춰야 할 터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두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하듯 정치권은 실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아니 관료를 통제할 ‘의지’마저 철저하게 결여된 모습이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지만, 실제로는 관료집단에 끌려다니는 상황이다. 실력과 의지의 부재 탓이다.
한편, 정당이란 국가기관을 조직하고 정치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은 국민의 혈세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선거 때 반짝 장이 서는 ‘떴다방’에 지나지 않는다. 그간 사라진 정당만 해도 수십 수백 개다. 그저 출세와 한탕만 노리는 정치모리배들의 이합집산일 뿐이다.
정치권 그리고 정당이 골몰하는 건 오직 눈앞의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민’과 ‘국가’를 부르짖지만, 습관적으로 내뱉는 입에 발린 수식(修飾)이요 공염불의 헛된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들의 머릿속은 온통 권력욕으로 충만되어 있을 뿐이며, 오직 자신들의 출세와 공천 그리고 재선에만 ‘치열’하다. 여당을 기웃거리다 기회를 잃으면 야당을 기웃거린다. 이들에게 여당, 야당이란 단지 국회의원 자리를 위한 두 개의 기회 제공처일 뿐이다. 본디 마땅히 치열하게 연구하고 골몰해야 할 국리민복을 위한 국가 정책이란 단지 그들의 입과 구두선으로만 있을 뿐, 그들의 머리와 안중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 활동’이란 오직 재선을 향한 겉치레 인기영합에 있고, 그저 매일 같이 상대당을 비난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정치권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미래의 적으로 간주하여 아예 싹을 자르거나 아예 정치권 진입을 봉쇄한다. 오직 자신들에게 아부하고 줄서기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만 무릎을 꿇려서 하부로 진입시킨다. 그러니 국회에 ‘입성’한 그들은 이제 단지 직업이 국회의원인 생활인일 뿐이다. 이렇게 패거리된 악화(惡貨)들이 양화(良貨)를 철저히 차단하고 구축한다. 이렇게 하여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정치권은 패거리 정치와 탐욕 그리고 무능의 극치로 치닫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오늘 이 나라가 이토록 혼돈을 겪는 근본적 요인과 관련하여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회의 난맥상 역시 동시에 지적되어야 한다.
관료들 역시 오로지 자신의 승진과 출세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권과의 인맥쌓기와 줄서기에만 몰두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2023년 국회 국정감사 모습. 2023.10.27 연합뉴스
국회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
국회는 갑질의 대명사로 꼽힌다. 불신 대상 부동의 1위는 늘 국회가 맡아놓고 차지한다. 항상 거들먹거리고 큰소리치는 것이 오늘 우리 국회의 이미지다. 일반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입법 과정은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국회는 거꾸로 국회 내의 관료집단에 많은 부분 장악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매일 같이 시끄럽게 내는 큰소리들은 빈 깡통으로부터 나오는 공허한 메아리일 경우가 허다하게 된다.
현재 국회의 입법 과정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의 입법 프로세스에서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된다. 국회 공무원의 ‘검토보고’에서 부정적으로 결론이 나면 그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법안 검토 단계부터 모두 국회의원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아니 배제된 채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국회 입법관료는 비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오히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이 검토보고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보다 그 위력이 강하게 발휘되며, 사실상 독주하게 된다.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도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그래서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 한 명이 초선 5, 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를 견제하고 관료들을 통제해야 할 국회가 이러한 상황이니 이 ‘관료의 나라’는 더욱 철옹성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입법, 의원 스스로 ‘검토’하고 ‘낭독’하라
- 국회가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 거듭나기 위하여
몇 년 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국회 특수활동비를 공개한 바 있었다. 당시 언론들은 법사위 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 원씩 수령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언론도 예를 들어, 국회사무처의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의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 즉 ‘권한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훨씬 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수령액보다 세 배 많다는 팩트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사위 소속 의원 월 50만 원,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 월 150만 원, 이는 정확히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전직 의원은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 전문위원의 말에 속으로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러한 막강한 권력의 원천은 바로 그들이 갖는 ‘검토보고’ 권한이다. 실제 상임위 소속 입법관료들 스스로도 검토보고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관료 121명을 대상으로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 결과, 이들 입법관료 중 무려 90.8%가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감춰진 권력’이 언제나 가장 위험한 법이다. 박용진 의원은 국회의 한 수석 전문위원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에게 보낸 민원 문자메시지 사건을 언급한 바 있었다. 그는 “로비에 의해 검토보고서가 편향되거나 일부 재벌, 아니면 로비 대상 단체에 의해 왜곡된 검토보고서가 올라가는 것이 확인된 것 같다”고 지적하고 관련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였다.
오늘날 국회 공무원은 이러한 ‘검토보고 권한’을 바탕으로 이미 가장 힘이 센 집단으로 그 위상이 변모하였다. 실제 행정부 고시(5급 공채)와 국회 ‘입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한 경우 대부분 국회 쪽을 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분명하게 반증해주고 있다.
최저임금법과 검토보고
문재인 정부 시기 큰 논란을 빚은 최저임금법의 일부법률개정안에서 이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은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실제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이 발생하고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이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을 미리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이 최저임금법의 문제처럼, 결코 입법관료의 단순한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될 수 없는 법률들과 문제가 이 나라에 너무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라고 국민들이 자신의 대표로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며, 의원들의 이러한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정당이 존재하고 또 그 정당 소속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회 전문위원’이라 하면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외부에서 공채하여 임용된 사람들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이란 공무원 시험을 통해 수십 년 국회 조직에서만 근무해온 공무원이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공직사회의 잦은 순환보직 근무 관행으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어느 수석 전문위원은 세 곳 상임위원회의 전문위원을 거쳤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에 그 목적
국회 입법관료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 조항이 오늘날처럼 국회 공무원의 권한으로 바뀐 것은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바뀌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개정의 목표와 기본방향에 대하여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되어 있고, 개정의 ‘주요 골자’에서는 “직업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다.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이후 1981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의 명문화와 결합되어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관료를 매개로 하여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여 관료집단을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국회가 정작 역으로 관료집단의 ‘관리’를 받는 존재로 된 현실이다.
전문성을 보유한 독일 정당을 본받아라
독일 정당의 정책 전문성은 정당의 전문성에 의해 좌우된다. 독일 의회는 입법 활동과 정책전문성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즉, 위원회에서 정당 간 협상을 하기 전에 각 정당이 상임위원회별로 특정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의 진행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며, 의원들은 각 분야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정당 소속 정책 전문위원들과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당연히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각 교섭단체는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각 정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소속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교섭단체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 의원들에게 표결 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킹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원회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검토보고를 맡은 이 ‘위원’이 의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검토보고는 각 원내 교섭단체 의원의 직무로서 이 검토보고 의원은 상임위원회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킹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 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한편, 독일 의회의 경우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은 주로 각 교섭단체 정책위원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어 그 총수는 2004년 현재 837명에 이른다. 이 837명 중에는 행정인력, 기술인력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정책전문가와 비정책전문가 비율은 4 : 6 정도이다(참고로, 미국 의회에서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전문 인력은 18명의 전문위원을 포함하여 위원회당 평균 75명이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하여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6년 현재, 독일 의회의 의원 정수는 598명이다. 각 교섭단체의 정책연구위원은 연방의회 소속 직원에 포함되는데, 이들의 채용, 계약, 보수는 각 교섭단체가 관할하며, 인원 배정은 교섭단체별 의원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는 별도로 각 위원회에는 우리나라의 4, 5급 상당 행정지원팀 공무원이 있는데, 위원회당 약 5명에 불과하다.
의회 입법이 철저히 실종된 ‘상표 사기’의 빈 깡통 가짜 국회
필자가 국회 기관에 근무하던 당시 한 중진 국회의원을 만나 국회 전문위원 제도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그는 국회의원들이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제도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상임위에서 법률안을 낭독하는 그런 일까지 우리 국회의원이 해야 하느냐”라는 ‘짜증’도 나온다고 했다. 그야말로 오늘 우리 국회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국회의원이란 국민들이 이 나라 입법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라고 선출한 것이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직접 낭독하고 토론하고 심의한다. 그런 업무를 의원 본인이 하지 않는다면 ‘사무장 병원’과 같은 ‘가짜 병원’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의회는 의원에 의하여 법안이 제출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의하여 소위원회에 넘겨지는데, 소위원회는 꼼꼼히 조문 하나하나를 검토, 심사하는 축조(逐條)심사를 수행한다. 물론 상임위원회에서의 이 모든 활동은 의원들 자신들이 직접 수행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하여 직접 수행된다. 법률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검토하며, 심의한 법률안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된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들 스스로가 법안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 업무로서 곧 본업이다. 그리고 당연히 의원들이 그에 따른 보고서도 작성하고 심의하며 표결한다. 지금처럼 우리 국회에서 공무원에게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검토 권한’을 부여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다. 이는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제2의 군대조직’으로서 권력의 충견으로 양육해온 관료집단에게 ‘실권’을 넘겨주면서 관행화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전근대성과 비정상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비정상은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 발전과 민주주의의 큰 장애물이다.
근본이 흔들리고 본령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의회란 모름지기 입법을 근본으로 하며, 입법이 곧 의회의 본령이다.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아닌 다른 자들이 입법을 장악하게 된다면, 의회라는 존재 의미는 크게 동요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은 당연히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국회의원이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진정한 대표로서의 자격이 없다.
지금처럼 입법과정이 입법관료에 의해 사실상 장악된 상황에서 국회의원이란 허울 좋은 ‘상표 사기’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으며, 소리만 요란한 속빈 강정, 빈 깡통의 ‘가짜 국회’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국회는 허다한 문제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많은 경우 임기응변의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머물고 있다. 필자는 오늘 국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는 상기한 바 입법과정에서의 국회의원 직무유기가 자리잡고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오늘날 정치권 풍토에 대한 근본적 혁신과 아울러 입법과정의 이러한 문제 해결 없이 ‘국회 문제’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 입법, 의원들 스스로 ‘검토’하고 ‘낭독’하라. 만약 그럴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원 스스로 입법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는 진정한 국회일 수 없다.
출처 : 허울뿐인 의회 입법…실무는 공무원들 몫 < 민들레 들판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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