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토요일 아침
쌀쌀맞은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필요한것 없어요?"
"봉다리커피 다 먹어 가는데"
"고기는 다 드셨어요?"
"응 쇠고기는 다 먹고 삼겹살 조금 남았어"
보통때 같으면
영상통화로 손주들도 바꿔주고
최소 5분 정도는 통화를 하였는데
그 날은 30초 정도 간단하게 통화를 하였다.
전화를 끊고서 혼자 생각하기로
시골에서 궁핍하게 생활하는 애비에게
필요한 물건 택배로 보내 줄려고 전화를 하였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애비를 챙겨주는 마음씨가 고마워 속으론 흐뭇하였다.
오후 3시쯤
강아지들일랑 산책코스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오는 도중 딸한테서 또 전화가 와서
"아빠! 어디세요? 집에 오니 안계시네요"
"응 지금 강아지들일랑 산책왔다가 집에 가고 있어"
4시쯤 집에 도착하여 나의 첫마디
"아침에 전화했을때 온다고 했으면
장에 가서 해산물이라도 사다 놓았을텐데 먹을게 없네"
"괜찮아요. 곧 바로 영암으로 가야해요"
"영암은 왜?"
"송서방 영암으로 3개월 파견근무 났어요"
"그래! 저녁이라도 먹고 출발해"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빡빡 씻고 있는데
딸이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한다
"아빠 쌀 그렇게 안씻어도 되요"
"주걱으로 헹구기만 하면 되요"
"그렇게 박박 문지르면 영양가 다 떨어져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옅은 생각을 하며
"응 알았어" 대답을 하고 나서 변명아닌 변명을 하였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끓일때
쌀 씻은 뜨물 넣으면 국물이 찰지고 고소해"
어릴때부터 보아 온 어머님의 쌀 씻는 방법과
딸 아이의 쌀을 문지르지 않고 헹구는 방법중
어느 것이 옳은지? 헷갈리기만 하다.
사위가 영암으로 같이 가서
목포 구경도 하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고 권하지만
일요일 이곳에서 첫 미사 참석하는 날이라 거절하고
딸래미 식솔들은 저녁 9시쯤 영암 숙소로 향하였다.
딸이 떠난 후
미사 핑계로 따라가지 못한게 딸에게 미안하지만
애비의 약해진 마음을 이해 해 주길 바랄뿐이다.
3년전 어머님의 장례미사를 끝으로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 댕기느라
냉담자가 되어 평화와 용서의 기도를 게을리 하다가
참사람으로 되살아 나고파 저번주 목요일 성당을 찾았다.
"냉담자인데 교적을 옮길려고 왔습니다"
이전 성당에 등재된 나의 이름을 확인한 사무장님이
"가족 모두 옮기는건가요?"
"아뇨 저 혼자만 옮겨주시면 됩니다"
사무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요일 10시 교중미사에 참석하세요
주보에 전입신고가 공지되며
공지사항때 형제자매님들께 전입신고식 하시면 됩니다.
어제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 수녀님 형제 자매님들의 환영에 행복하였습니다.
딸과 함께 하지 못한 사연을 딸이 이해 해주길 바라며
딸이 냉장고에 가득 넣어둔 물건들을 바라보니
그동안 멀리만 느껴졌던 딸에 대한 감정이 달라집니다.
여태까진 딸이 반 정도 남으로 느껴졌는데
이번에 애비 겨울나기 점검차 불쑥 찾아온 것을 보니
반에 반정도 남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내년 이맘때 쯤에는
애비 걱정에 대한 불심검문 없이 편한 마음으로 찾아
딸이 남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해 보길 기대하여 본다.
첫댓글 아들은 몽이와 탄이를
딸은 사랑이 담뿍 담긴 선물을...
부자 부녀간의 가족 사랑이 진동합니다.
참 잘 먹고 잘 사십니다. ㅎ
요즘 쌀은 정미소에서 정제가 잘 되어
따님 말이 맞습니다.
살살 부드럽게 하세요.
여자같이....
저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홑샘 님보다는
덜 부드럽지만요.ㅎㅎㅎ
따님을 위해 쌀을 씻는다니
부녀의 정이 무척 깊어 보입니다
그런데 딸이 반 정도 남이라 느껴졌다는 대목에도 눈에 가구요
홀로 겨울나기란 쉽지 않을테니
따님 마음에 들게 보여지도록 해야되지 않을까요~ ㅎ
그동안
서로 무관심하였는데
딸의 입장에서는
애비가 물가에서
서성이는것처럼 느껴져
불안스러운가 봅니다.ㅎㅎ
저도
이제 아집을 내려놓고
딸의 마음을 헤아려 볼려고
노력중입니다.
살그러운 따님이시네요.
시집간 딸들은 집에
엄마가 없으면 뜸하지요.
아버지를 위해
찬꺼리 준비하는 딸은
효녀 입니다.
못난 딸래미를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아가시면 점점 딸이 가장 살가운 친구이며 의지자가 될것입니다
이젤 님
말씀처럼
그렇게 될것 같습니다.
딸의 불심검문은 관심이자 사랑입니다.^^
진즉
월영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어야 하는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며 홀로 귀촌이지만 부럽기도 한 일상이라는
생각이 언듯 들었습니다.
멍멍이 있어 덜 외롭고 챙겨주는 알뜰한 따님과
더우기 마음 의지 할 신앙도 다시 찾으신다니
적적한 산골생활도 할만 하지요.
지금처럼 마음 고운 주변 이들과 더불어
평안한 일상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운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고국에 계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즐건 시간 되십시요
따님이 아버님께 참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그런 딸 많지 않습니다.
손수 밥도 하시고 반찬도 만드시는 아버지가 안스럽게 보일 겁니다.
그런 불심검문이야 많이 받을수록 좋지요. 효녀 따님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화암 님의
깊이 있는 말씀
고맙습니다.
보슬비님께서 사시는 모습이
참 정겹고 귀여우십니다.ㅎㅎ
쌀씻는 모습도 그렇고
강아지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도 그러네요.
저는 여자라도 뜨물을 안 받아요.
게으른 할망이거든요.
딸이 준 고기 맛나게 뽁아 드십시요.^^
볼품 없는
초짜 할배를
귀엽게 봐 주시는
지언님
고맙습니다.
따님이 불심검문에 잘 통과 되신것으로
생각됩니다.
냉장고의 재고 파악 , 쌀 씻는 모습 ,
쌀뜨물 사용법 ..제 검문으로 그렇습니다.
너무 잘하시면 검문이 없을 수 있으니
검문 걸릴일도 만드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냉담을 풀으셨다니
제게 더 없이 기쁜 소식으로 들립니다.
어젠
사제관에서
판공성사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하여 주실런지......